10년 뒤에도 게임 기획을 할 수 있을까: 30대의 불안감

10년 뒤에도 게임 기획을 할 수 있을까: 30대의 불안감

10년 뒤에도 게임 기획을 할 수 있을까: 30대의 불안감 새벽 3시, 엑셀을 닫지 못한다 오늘도 밸런스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경험치 획득량 5% 조정. 레벨업 구간 재설계. 보상 밸류 재계산. 숫자를 바꾸고, 수식을 고치고, 다시 돌린다. 5년째 이 짓을 하고 있다. 처음엔 재밌었다. "내가 만든 시스템으로 사람들이 게임을 한다"는 게 신기했다. 밤을 새워도 즐거웠다. 게임 출시하고 유저 반응 보는 날, 손 떨렸다. 지금은 그냥 숫자다. 엑셀 셀이다. 함수다. 어느 순간부터 이 생각이 든다. "10년 뒤에도 나 이러고 있을까?" 40살에도 밤 10시까지 회사에서 밸런스 잡고 있을까. 50살엔 뭐하지. 게임 기획 감독? PD? 아니면 그냥 나간 상태?주변을 봤다. 40대 기획자가 거의 없다. 회사에 딱 두 명. 둘 다 PD 아니면 본부장. 평 기획자로 남은 사람은 없다. 30대 중반 넘으면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퇴사한 선배한테 물어봤다. "형, 게임 기획 오래 할 수 있어요?" 대답이 명확했다. "너 PD 될 자신 있으면 남고, 아니면 나가." 그게 5개월 전이다. 그 선배는 지금 IT 기업에서 서비스 기획한다. 야근은 없다고 했다. 연봉은 비슷하다고. "게임보다 재미는 없는데, 살 만하다"고. 경력 5년, 번아웃은 언제부터였나 정확히 언제부턴지 모르겠다. 서서히 왔다. 3년차까지는 괜찮았다. 프로젝트마다 새로웠다. 전투 시스템, 성장 구조, 콘텐츠 설계. 배울 게 많았다. 실력이 느는 게 보였다. 4년차부터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거 저번 프로젝트에서 해봤는데." RPG 밸런스 공식은 다 비슷하다. 레벨 디자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게 없었다. 5년차인 지금. 반복이다. 기획서 쓰고, 개발팀한테 설명하고, QA 이슈 대응하고, 패치하고, 또 기획서 쓰고. 재미가 없다. 게임 만드는 게 재미없다니. 이게 맞나.더 문제는 체력이다. 5년 전엔 3일 밤샘도 했다. 지금은 밤 12시만 넘어가면 다음 날 못 쓴다. 손목은 항상 아프다. 허리도 안 좋다. 거북목은 기본. 병원 갔다. 의사가 말했다. "자세 교정하고 스트레칭 하세요." 웃겼다. 런칭 일주일 전에 스트레칭할 시간이 어딨어. 체력이 떨어지니까 효율도 떨어진다. 같은 일을 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집중력도 예전 같지 않다. 30살인데 벌써 이러면, 35살엔? 40살엔? 주변 동기들 봤다. 한 명은 프로그래머에서 백엔드 개발자로 이직했다. 연봉 7천. 야근 거의 없음. 한 명은 게임 그만두고 웹툰 PD 됐다. "게임보다 미래가 보인다"고. 나만 남았다. 게임 기획. 5년째. 숫자에 지친 사람의 고백 밸런스 기획자의 삶은 숫자다. 경험치 테이블. 레벨별 스탯 증가량. 몬스터 체력. 공격력. 방어력. 드랍률. 강화 확률. 재화 획득량. 과금 밸류. BM 설계. 하루종일 엑셀이다. VLOOKUP, INDEX-MATCH, 피벗 테이블. 함수 짜고, 시뮬레이션 돌리고, 그래프 그리고. 처음엔 퍼즐 푸는 느낌이었다. "이 숫자를 이렇게 조정하면 밸런스가 맞겠네!" 성취감 있었다. 지금은 노가다다. 창의적인 게 아니다. 그냥 정해진 공식에 숫자 넣는 거다. 유저들은 모른다. 이 숫자 하나 바꾸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지. "밸런스 똥겜" 댓글 본다. 아프다. 3주 동안 밤새워서 잡은 밸런스다. 근거도 있다. 데이터도 있다. 시뮬레이션도 100번 돌렸다. 그래도 욕먹는다. "기획자 뭐함?" 나 여기 있는데. PD는 말한다. "유저 반응 보고 조정하면 되지." 쉽게 말한다. 숫자 하나 바꾸면 전체 밸런스가 흔들린다. 경험치 10% 올리면 레벨업 속도 바뀌고, 콘텐츠 소비 속도 달라지고, 과금 유도 시점도 틀어진다. 근데 PD는 모른다. 그냥 "더 재밌게"래. 재미가 뭔데. 재미의 정의가 뭔데. 숫자로 어떻게 재미를 만드는데. 5년 했는데도 답이 없다. 10년 해도 답 없을 것 같다. 게임 업계의 현실: 나이 들면 어디로 가나 솔직히 말하자면, 게임 업계는 젊은 사람들 거다. 회사 보면 평균 연령 32살. 40대는 임원급 아니면 없다. 평 기획자, 평 프로그래머로 40대 본 적 없다. 왜일까. 생각해봤다. 첫째, 체력. 게임 업계는 야근이 기본이다. 런칭 전엔 밤 12시까지는 기본. 주말 출근도 많다. 40대 몸으로 이걸 버틸 수 있을까. 둘째, 트렌드. 게임은 빠르다. 2년 전 유행하던 장르가 지금은 망한다. 계속 배워야 한다. 새 엔진, 새 시스템, 새 BM. 40대가 20대만큼 빠르게 배울 수 있을까. 셋째, 연봉. 경력 10년 넘으면 연봉 7천~8천 넘어간다. 회사 입장에선 그 돈으로 신입 2명 뽑는 게 낫다. 실무는 신입도 한다. 그래서 다들 나간다. 30대 중반에. PD 못 되면 이직한다. 어디로? IT 기업, 스타트업, 컨설팅, 교육. 게임 기획 경험은 어디서든 쓸모 있다. 근데 게임은 못 만든다. 선배 한 명은 게임 회사 나와서 금융 앱 기획한다. "재미는 없는데 야근도 없어. 연봉은 비슷해. 나쁘지 않아." 또 다른 선배는 프리랜서 됐다. 게임 컨설팅. "프로젝트 단위로 일해. 자유로워. 돈은 들쭉날쭉." 한 명은 게임 학원 강사. "학생들 가르치는 게 나아. 밤샐 일 없어." 다들 게임을 떠났다. 게임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게임 때문에 나갔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언젠가. 번아웃의 징후들 요즘 월요일 아침이 제일 힘들다. 알람 울린다. 손이 안 간다. "5분만 더"가 30분 된다. 겨우 일어난다. 씻는데도 힘들다. 출근길. 지하철 타면서 생각한다. "오늘도 밸런스 시뮬 돌리겠네. 기획서 쓰겠네. 개발팀이랑 싸우겠네." 회사 도착. 자리에 앉는다. 노트북 켠다. Confluence 열린다. 하기 싫다. 점심시간. 밥 먹으면서 폰 본다. 게임 커뮤니티. 또 밸런스 욕. 보기 싫은데 본다. 직업병. 오후. 회의. 2시간. "이 시스템 더 재밌게 할 수 없을까요?" PD가 묻는다. 3번째 물어본다. 답은 같다. "시뮬레이션 돌려보겠습니다." 저녁 7시. 동료들 하나둘 퇴근한다. 나는 남는다. 내일까지 기획서 마감. 밤 10시. 겨우 끝났다. 저장. 전송. 퇴근. 집 도착. 씻고 침대에 눕는다. 폰 켠다. 경쟁사 게임 켠다. 분석해야지. 게임이 재미없다. 예전엔 재밌었는데. 이제는 시스템만 보인다. "아 이거 우리 게임이랑 비슷한데. 저 밸런스는 어떻게 잡았지." 일이다. 게임도 일이 됐다. 주말. 침대에서 하루 보낸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게임도 안 한다. 그냥 유튜브 본다. 멍 때린다. 친구가 연락 온다. "밥 먹자." "다음에." 거절한다. 사람 만나기 싫다. 이게 번아웃이다. 확실하다. 30대, 불안의 정체 정확히 뭐가 불안한지 정리해봤다. 첫째, 미래가 안 보인다. 5년 뒤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PD가 될 수 있을까? 자신 없다. PD는 정치다. 사람 관리다. 나는 숫자 파는 사람이다. PD 못 되면? 이직? 어디로? 게임 기획 경험만 10년이면 다른 데서 뭐할 수 있나. 나이는 40. 신입처럼 배울 수 있을까. 둘째, 체력이 한계다. 지금도 벅차다. 5년 뒤엔 더 힘들 거다. 게임 업계는 야근이 줄지 않는다. 계속 이렇게 일할 수 없다. 셋째, 성장이 멈췄다. 더 배울 게 없다. 밸런스 공식은 다 안다. 시스템 설계도 익숙하다. 이제는 반복이다. 5년 차나 7년 차나 하는 일 똑같다. 차이는 속도뿐. 넷째, 돈. 연봉 5200. 나쁘지 않다. 근데 올라갈까? PD 되면 7천8천. 안 되면 56천 구간에서 정체. 결혼하면? 애 낳으면? 집 사면? 이 돈으로 가능할까. 다섯째, 의미. 왜 이 일을 하나. 처음엔 명확했다. "게임 만들고 싶어서." 지금은? 그냥 월급받으려고. 게임 출시해도 뿌듯함이 없다. "끝났다"는 안도감만 있다.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인가. 동료들의 선택 작년에 같이 일했던 기획자가 퇴사했다. 경력 7년. 나보다 2년 선배. "형, 왜 나가요?" 물었다. "더 이상 못 버티겠어. 몸도 안 좋고, 미래도 안 보이고." 그 형은 지금 에듀테크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기획한다. 연봉은 조금 낮아졌다. 6000에서 5500으로. 대신 야근이 없다. 6시 퇴근. 주말은 무조건 쉰다. "후회 안 해요?" 물었다. "전혀. 진작 나갈걸." 다른 동기는 대기업 IT 계열사로 이직했다. 게임 서비스 기획. "게임 만드는 건 아니지만, 게임 관련 일이긴 해. 복지는 좋아." 또 다른 선배는 아예 업계를 떠났다. 카페 차렸다. "돈은 적게 벌어도 행복해. 내 시간이 생겼어." 다들 떠난다. 게임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게임이 싫어서 떠난다. 나도 떠날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근데 게임 말고 뭘 하지. 10년 가까이 게임만 했다.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없다. 이게 제일 무섭다. 떠나고 싶은데 갈 곳이 없다. 그래도 못 떠나는 이유 이상하게도 퇴사 메일은 안 쓴다. 왜일까. 생각해봤다. 하나, 아직 애정이 남았다. 게임이 싫어졌다고 했지만, 완전히 식진 않았다. 가끔 유저가 "이 시스템 재밌어요" 댓글 달면 기분 좋다. "이거 만든 사람 천재" 보면 웃는다. 내가 만든 시스템으로 누군가 즐거워한다. 이게 아직 의미 있다. 둘, 동료들. 같이 밤새우는 사람들. 프로그래머, 아티스트, 다른 기획자들. 이 사람들이랑 일하는 게 좋다. 퇴사하면 이 사람들 못 본다. 그게 아쉽다. 셋, 두려움. 새로운 곳 가서 적응할 자신이 없다. 게임 업계는 익숙하다. 언어도 통한다. 문화도 안다. 다른 업계는 모른다. 거기서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신입처럼 배워야 하나. 30살에? 넷, 미련. "조금만 더 버티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 PD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좋은 프로젝트 만날 수도 있다. 대박 게임 만들 수도 있다. 그럼 모든 게 해결된다. 연봉도, 커리어도, 의미도. 근데 확률이 얼마나 될까. 10%? 5%? 그래도 0%는 아니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10년 뒤의 나에게 솔직히 모르겠다. 10년 뒤에 나 뭐하고 있을까. 40살. 게임 기획자? PD? 아니면 다른 업계? 지금 선택에 따라 달라질 거다. 근데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버틸까? 떠날까? 버티면: PD 될 수도 있다. 못 될 수도 있다. 체력은 더 떨어진다. 번아웃은 심해진다. 떠나면: 새로운 환경. 적은 야근. 다만 게임은 못 만든다. 게임 기획 커리어는 끝. 어느 쪽이 정답일까. 정답은 없다. 각자 선택이다. 나는 아직 못 정했다. 조금 더 버텨볼까 싶기도 하고, 지금 나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확실한 건, 이 상태로는 10년 못 간다는 거다. 뭔가 바꿔야 한다. 일하는 방식이든, 회사든, 아니면 직업 자체든.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그래도 오늘은 결론은 안 났다. 내일도 출근한다. 엑셀 켜고, 밸런스 시뮬 돌리고, 기획서 쓰고, 회의하고. 똑같은 하루.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안다는 거다. 이게 영원하지 않다는 걸. 언젠가 끝난다는 걸. 그게 5년 뒤든, 10년 뒤든. 게임 기획은 좋은 직업이다. 재밌다. 의미 있다. 근데 평생 직업은 아니다. 적어도 나한텐. 언젠가 떠날 거다. 준비해야 한다. 근데 오늘은 아니다. 내일도 아니다. 다음 주 월요일, 또 출근한다. 엑셀 켜고 숫자 만진다. 10년 뒤까지는 아니어도, 당분간은.10년은 아니어도, 내일은 출근한다. 그게 지금의 답이다.

게임이 너무 쉬워졌다는 유저 vs 너무 어렵다는 유저

게임이 너무 쉬워졌다는 유저 vs 너무 어렵다는 유저

오늘도 양쪽에서 두들겨 맞았다 아침 9시 50분. 출근 10분 전에 커뮤니티 들어가 본 게 실수였다. "이번 패치로 게임 개꿀됐네요 ㅋㅋ 이제 초등학생도 하겠다" 바로 아래 댓글. "아니 나만 어려워진 거임? 진짜 못 깨겠는데" 같은 패치. 같은 던전. 정반대 반응. 커피 한 모금 넘기고 사무실 들어갔다. 모니터 켰다. 슬랙에 PD 멘션. "기획팀 회의 10시 30분, 난이도 이슈 논의" 또 시작이다.회의실에서 또 싸운다 회의 시작 5분 만에 싸움 시작. "유저들 너무 쉽다고 난리예요. 코어 유저층 이탈할 것 같은데." 커뮤니티 담당자가 말했다. "CS에는 어렵다는 민원이 더 많아요. 환불 요청도 늘었고요." CS팀장이 받아쳤다. PD가 나를 봤다. "데이터는?" 준비해 간 엑셀 파일 열었다.전체 유저 클리어율: 42% → 38% (4%p 하락) 상위 10% 유저 클리어 시간: 평균 8분 → 6분 (25% 단축) 하위 50% 유저 클리어 시도 횟수: 3.2회 → 5.1회 (59% 증가) 던전 포기율: 15% → 23% (8%p 증가)"난이도 낮췄는데 클리어율이 떨어졌어요." 다들 멍했다. "어떻게 쉽게 만들었는데 클리어율이 떨어져요?" PD가 물었다. "상위 유저는 더 쉬워졌고, 하위 유저는 더 어려워졌어요."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점심 먹고 데이터 더 파봤다. 패치 전후 비교. 던전 보스 HP 20% 감소. 유저 데미지 15% 증가. 계산상으로는 분명히 쉬워졌다. 그런데. 상위 10% 유저 장비 점수: 평균 12,500 하위 50% 유저 장비 점수: 평균 6,800 패치 전 보스 체력: 500,000 상위 유저 DPS: 2,100 (클리어 시간 4분) 하위 유저 DPS: 850 (클리어 시간 10분) 패치 후 보스 체력: 400,000 상위 유저 DPS: 2,415 (클리어 시간 2.7분) ← 15% 증가 하위 유저 DPS: 977 (클리어 시간 6.8분) ← 15% 증가 문제는 보스 패턴이었다. 패치로 보스 체력이 줄면서 페이즈 전환이 빨라졌다. 상위 유저: 보스를 순삭해서 위험 패턴 보기 전에 끝. 하위 유저: 여전히 모든 패턴 다 봄. 근데 패턴 속도는 그대로. 결과. 상위 유저: "너무 쉬워서 재미없어요" 하위 유저: "여전히 못 깨겠어요" 엑셀 시트 보면서 한숨 나왔다. 숫자로는 쉬워졌는데, 체감은 양극화됐다.정답이 없는 싸움 오후 3시. PD한테 보고 들어갔다. "그래서 해결책이 뭐예요?" 세 가지 시뮬레이션 돌려봤다고 설명했다. 옵션 1: 보스 체력 원복, 유저 데미지만 유지예상 결과: 상위 유저 만족, 하위 유저 여전히 불만 전체 클리어율: 41% (1%p 증가) 커뮤니티 반응: "결국 롤백이네 ㅋㅋ"옵션 2: 난이도 선택 시스템 추가 (이지/노말/하드)개발 기간: 3주 보상 차등화 필요 예상 결과: 상위 유저는 하드만 하고, 하위 유저는 이지 보상 불만 커뮤니티 반응: "보상 차별 심하네"옵션 3: 보스 패턴 단순화 + 체력/데미지 조정개발 기간: 2주 아티스트 리소스 필요 예상 결과: 모두가 조금씩 불만족 커뮤니티 반응: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밸런스"PD가 물었다. "추천은?" "옵션 3이요. 완벽하진 않지만, 양쪽 다 '참을 만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어요." "완벽한 방법은 없어요?" "네. 없어요." 5초 침묵. "진행하세요." 커뮤니티는 여전히 싸운다 저녁 7시. 패치 노트 초안 올라왔다. "보스 패턴 일부 단순화 및 난이도 조정" 예상 반응 시뮬레이션 돌려봤다. (머릿속으로) 상위 유저: "왜 패턴까지 바꿔요? 그냥 원복하세요" 하위 유저: "이 정도로 되겠어요? 더 쉽게 해주세요" 중간층: "..." 댓글창은 전쟁터가 될 거다. 슬랙에 기획서 공유했다. "보스 패턴 수정안 - 3단계 페이즈를 2단계로 통합, 광역기 삭제, 돌진 패턴 예비 동작 0.3초 추가" 프로그래머한테 답장 왔다. "이거 2주 안에 되려나..." 아티스트한테도 왔다. "이펙트 다시 만들어야 해요?" 된다. 해야 하니까. 밸런싱은 정치다 밤 9시. 혼자 남아서 데이터 정리했다. 게임 밸런싱은 수학이 아니다. 정치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참을 만하게' 만드는 게 목표다. 상위 10%는 항상 더 어렵길 원한다. 하위 30%는 항상 더 쉽길 원한다. 중간 60%는 조용히 게임만 한다. 커뮤니티에서 목소리 큰 건 양 극단이다. 데이터에서 중요한 건 침묵하는 중간층이다. 지난 3년간 배운 것.완벽한 밸런스는 환상이다 모든 유저를 만족시킬 수 없다 데이터와 피드백, 둘 다 봐야 한다 빠른 대응이 완벽한 밸런스보다 낫다 유저는 '공정함'을 원한다. '쉬움'이 아니라.마지막이 제일 중요하다. "너무 어려워요" 뒤에 숨은 진짜 뜻. "내 노력으로 극복 가능하게 해주세요" "너무 쉬워요" 뒤에 숨은 진짜 뜻. "내 실력을 증명할 콘텐츠 주세요" 양쪽 다 맞다. 근데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방법은 없다. 내일은 또 다른 싸움 퇴근 전에 슬랙 마지막 확인. 개발팀: "패턴 수정 작업 내일부터 시작합니다" QA팀: "테스트 케이스 작성 중입니다" 커뮤니티팀: "유저 공지 문구 검토 부탁드려요" 내일도 싸울 준비 끝. 패치 나가면 또 난리 날 거다. "이게 해결책이에요?" "여전히 어려운데요" "이제 재미없어요" 그래도 데이터는 조금 나아질 거다. 클리어율 42%, 포기율 18%, 평균 시도 횟수 3.8회.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조금 덜 불만족할 거다. 그게 내 일이다. 모니터 껐다. 가방 챙겼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생각했다. 게임 밸런싱은 언제쯤 쉬워질까. 5년 차인데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10년 차가 돼도 모를 거다. 정답이 없는 문제는 풀 수가 없다. 그냥 '가장 나은 오답'을 찾을 뿐이다. 집 가는 지하철 안에서 커뮤니티 또 열었다. "다음 패치 때는 제발 제대로 해주세요" ...제대로가 뭔데. 결국 선택의 문제 새벽 1시. 집에서 경쟁사 게임 켰다. 던전 들어가 봤다. 죽었다. 다시 시작했다. 또 죽었다. 세 번째 시도에서 클리어했다. "아 이 정도면 적당한데." 그 순간 깨달았다. 나도 유저 입장에선 '내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걸. 기획자 입장에선 데이터 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결국 최종 결정은 '감'이다. 숫자는 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떤 숫자가 '좋은 게임'인지는 못 알려준다. 클리어율 70%가 좋은 게임일까? 클리어율 30%가 좋은 게임일까? 둘 다 맞고, 둘 다 틀리다. 다크소울은 어렵지만 명작이다. 쿠키런은 쉽지만 명작이다. 결국 게임의 정체성 문제다. 우리 게임은 뭘 추구하는가. 도전인가, 접근성인가. 하드코어인가, 캐주얼인가. 그걸 정하면 난이도 방향이 나온다. 문제는 회사가 둘 다 원한다는 거다. "하드코어 유저도 잡고, 라이트 유저도 잡고" 불가능하다. 근데 해야 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 노트북 덮었다. 침대에 누웠다. 내일 회의에서 또 물어볼 거다. "그래서 정답이 뭐예요?" "정답은 없어요. 선택만 있을 뿐이에요." 그 말 하면 PD 표정 벌써 보인다. 잠들기 전에 마지막 생각. 게임 기획자가 제일 자주 듣는 말. "왜 이렇게 만들었어요?" 대답은 항상 같다. "그게 제일 나은 선택이었어요." 완벽하지 않다. 근데 그게 최선이었다. 양쪽의 진실 다음 날 아침. 출근해서 기획서 마무리했다. 난이도 조정 철학 우리는 모든 유저를 만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유저에게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다.하위 유저: 연습으로 극복 가능한 난이도 중간 유저: 적당한 도전과 성취감 상위 유저: 실력 차이를 증명할 콘텐츠세 그룹의 경험을 모두 존중하되, 게임의 정체성은 지킨다. 우리 게임은 '노력하면 보상받는' 게임이다.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이번 패치의 목표.전체 클리어율 45% 달성 포기율 20% 이하 유지 상위 유저 평균 클리어 시간 8분 (도전적 콘텐츠 유지) 하위 유저 3회 이내 클리어 가능 (학습 곡선 개선)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전보다 낫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PD한테 보냈다. 10분 뒤 답장. "진행하세요. 패치 후 데이터 모니터링 부탁합니다." 시작이다. 2주 후, 패치 당일 D-Day. 패치 오픈 오후 2시. 모니터 5개 켜놨다.실시간 플레이 데이터 커뮤니티 반응 CS 접수 현황 서버 로그 슬랙 단체방손에 땀났다. 2시 5분. 첫 클리어 나왔다. 상위 유저. 7분 42초. 2시 18분. 라이트 유저 첫 클리어. 시도 2회. 12분 35초. 좋은 신호다. 커뮤니티 새로고침. "오 이번엔 괜찮은데?" "패턴 단순해져서 좀 쉬워졌네요" "그래도 여전히 어렵긴 함 ㅋㅋ" 아직까지는 괜찮다. 2시 47분. 슬랙 알람. "클리어율 실시간 43.2%" 목표치 45%까지 1.8%p 차이. 오차범위 안이다. 3시 20분. 커뮤니티에 긴 글 올라왔다. "이번 패치 평가합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예전보단 낫네요. 하위 유저 입장에서 연습하면 깰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상위 유저 입장에선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챌린지 콘텐츠는 남아있고요. 기획팀 고생했습니다." 스크린샷 찍었다. 저장했다. 이런 글 귀하다. 5시. 오늘 데이터 1차 집계.전체 클리어율: 44.1% 포기율: 19.3% 평균 시도 횟수: 3.6회 상위 유저 평균 클리어 시간: 7분 52초 하위 유저 3회 이내 클리어: 68%목표 거의 달성. PD한테 보고 들어갔다. "수고했어요. 이번엔 잘 풀렸네요." "운이 좋았어요." "다음엔 또 어려울 거예요." "알아요." 끝나지 않는 전쟁 저녁 8시. 퇴근 준비하는데 슬랙 알람. "신규 던전 기획 회의 - 내일 오전 10시" 또 시작이다. 난이도 설정부터 싸울 거다. "이번엔 좀 어렵게" "아니 접근성 좋게" 그리고 나한테 물을 거다. "데이터상 적정 난이도가 어느 정도예요?" 답할 거다. "유저층에 따라 다릅니다." 그럼 또 물을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선택해야죠. 누구를 우선할 건지." 완벽한 대답은 아니다. 근데 정직한 대답이다. 가방 챙기면서 오늘 커뮤니티 마지막 확인. "쉽다" 30% "적당하다" 45% "어렵다" 25% 완벽한 분포는 아니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모두가 만족하는 게임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이 수긍하는 게임은 만들 수 있다. 그게 오늘 배운 거다. 엘리베이터 타면서 생각했다. 5년 차에 깨달은 진실. 게임 밸런싱은 싸움이 아니다. 협상이다. 유저와 협상하고, 팀과 협상하고, 데이터와 협상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협상. 나 자신과의 협상. "이 정도면 됐어." "완벽하진 않지만, 괜찮아." 완벽주의 내려놓는 게 제일 어렵다. 집 가는 지하철 안에서 또 생각했다. 10년 차 되면 이 고민 없어질까. 아니다. 더 심해질 거다. 경험이 쌓일수록 '정답 없음'이 더 확실해지니까. 그래도 괜찮다. 정답 없는 문제 푸는 게 내 일이니까.양쪽 다 맞는데 누구 편을 들까 고민하지 마. 둘 다 들어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 그게 시작이야.

목요일 저녁 6시, QA팀의 '심각도 높음' 리포트

목요일 저녁 6시, QA팀의 '심각도 높음' 리포트

목요일 저녁 6시 30분 슬랙이 울린다. QA팀장 메시지다. "이번 주 빌드 이슈 리스트 공유드립니다. 심각도 높음 17건입니다." 17건. 배포 D-3인데 17건. 커피 식었다. 다시 마신다. 쓰다.엑셀을 연다. QA 이슈 시트가 빨갛다. 심각도 높음. 게임 플레이 불가능하거나 진행 막히는 것들. 중간은 중요하지만 플레이는 되는 것. 낮음은 UI 어색하거나 텍스트 오타. 17건이면 많은 거다. 보통은 5건 이하. 첫 번째 이슈: 전투 스킵 버그 "전투 스킵 시 보상 2배 지급됨" 아. 이건 진짜 심각하다. 유저가 스킵으로 보상 파밍하면 경제 다 무너진다. 프로그래머한테 메시지 보낸다. "형 이거 급한데 오늘 안에 가능?" 답장 온다. "로직 확인 중. 1시간 뒤에 알려드림." 1시간. 기다린다.두 번째부터 다섯 번째: UI 겹침 "상점 팝업 위에 메일 알림 겹침" "던전 입장 시 파티 정보 안 보임" "설정 창에서 뒤로가기 안 됨" "튜토리얼 손가락이 버튼 벗어남" UI팀 일이다. 기획은 확인만 한다. 하나씩 재현해본다. 상점 팝업은 진짜 겹친다. 메일 숫자가 결제 버튼 가린다. 던전은... 아 파티원 4명일 때만 안 보이네. 설정 창은 뒤로가기 버튼이 비활성화됐다. 이건 왜? 튜토리얼은 해상도 문제다. 갤럭시 A시리즈에서만. 스샷 찍는다. UI 디자이너한테 공유. "확인했습니다. 내일 오전에 수정본 올릴게요." 내일 오전. 배포 D-2. 빡빡하다. 여섯 번째: 밸런스 이슈 "5성 캐릭터 '아리엘' 스킬 데미지 과다" 이건 내 파트다. 데이터 시트 연다. 아리엘 스킬 계수 확인. 기본 공격력 850, 스킬 계수 320%. 850 × 3.2 = 2720. 여기에 치명타까지. 같은 등급 다른 캐릭터는 평균 2000. 20% 높다. 의도한 건데. 아리엘은 신규 픽업 캐릭터. 좀 세게 만들었다. 근데 QA 코멘트 본다. "일반 던전 보스 5초 컷. 다른 캐릭터 무의미해짐." 5초. 그건 너무한데.시뮬 돌려본다. 무기 +10, 특성 풀강, 파티 버프까지 받으면. 초당 데미지 8500. 보스 체력 40000. 5초 맞네. 문제는 이게 의도인지 버그인지다. PD한테 메시지 보낸다. "아리엘 데미지 20% 상향이 의도 맞죠?" 답장 온다. "네. 픽업이라 강하게." "근데 QA에서 너무 세다고 올라왔는데요." "얼마나?" "보스 5초 컷이요." "..." "계수 280으로 낮출까요? 그럼 15초 정도." "그럼 욕먹는데. 픽업인데 약하다고." "지금은 다른 캐릭 의미 없다고 할 거 같은데요." "일단 그대로 가고 유저 반응 보자." 알겠다고 답한다. 이슈 시트에 적는다. "PD 확인. 현 수치 유지. 런칭 후 모니터링." 일곱 번째부터 열 번째: 서버 이슈 "동접 200명 이상 시 렉 발생" "친구 목록 100명 넘으면 로딩 10초" "길드 채팅 30초마다 끊김" "보상 수령 시 간헐적 오류" 서버팀 일이다. 근데 기획도 알아야 한다. 동접 200명은 테스트 서버 기준이다. 실섭은 동접 5만 예상. 200명에서 렉이면 5만 명은 터진다. 친구 목록은 왜 100명 제한 안 걸었지. 기획서 확인한다. 아 제한 없다고 써놨네. 내가 썼다. 3개월 전에. 그때는 몰랐다. 100명 넘으면 로딩 10초인 줄. 길드 채팅은 서버 부하 때문이다. 최적화 필요. 보상 오류는 동시 요청 처리 문제. 서버 개발자한테 메시지. "형 이거 배포 전에 다 되나요?" "동접이랑 채팅은 어렵고요. 나머지는 해볼게요." "동접이랑 채팅 안 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오픈 첫날 서버 터질 수도." 망했다. PD한테 보고한다. "서버 이슈 2건 배포 전 해결 어렵대요." "그럼?" "오픈 동접 제한하거나 사전예약 줄여야 할 듯." "마케팅팀이랑 얘기해봐." 마케팅팀장한테 메시지. "사전예약 8만 명인데 동접 제한 필요할 수도 있어요." "뭔 소리?" 상황 설명한다. "그럼 광고비 날린 건데?" "서버 터지는 것보단 낫지 않나요." "일단 회의 잡자." 회의. 또 회의다. 열한 번째부터 열다섯 번째: 자잘한 것들 "스킬 이펙트 소리 안 남" "상점 아이템 정렬 이상함" "업적 달성 시 알림 2번 뜸" "캐릭터 대사 자막 안 맞음" "로비 배경음악 반복 시 끊김" 이건 심각도 높음은 아닌데. QA가 높음으로 올렸다. 하나씩 확인한다. 스킬 소리는 사운드 파일 누락. 사운드팀 전달. 상점 정렬은 최신순이 아니라 ID순으로 돼있다. 코드 수정 필요. 업적 알림은 로컬/서버 이중 체크 때문. 서버만 남기면 됨. 대사 자막은 번역팀 실수. 텍스트 교체. 배경음악은 루프 지점 설정 오류. 사운드팀. 각 팀한테 전달한다. 답장 온다. "확인", "수정", "내일 오전". 열여섯 번째: 결제 테스트 실패 "인앱 결제 샌드박스 환경 오류" 이건 진짜 심각하다. 결제가 안 되면 게임 못 낸다. 클라이언트 문제인지 스토어 문제인지. 프로그래머랑 같이 확인한다. 샌드박스 계정으로 테스트. 결제 팝업까지는 뜬다. 근데 결제 완료 후 아이템이 안 들어온다. 로그 본다. 영수증 검증 실패. 서버에서 애플/구글 영수증을 확인 못 하고 있다. "형 이거 뭐가 문젠데요?" "서버 인증서 갱신 안 됐나봐요." "언제 되는데요?" "내일 확인해볼게요." 내일. 또 내일. 열일곱 번째: 치명적 크래시 "특정 조건에서 앱 강제 종료" 재현 조건 본다.던전 입장 전투 중 홈버튼 5분 뒤 복귀 스킬 사용 시 크래시재현해본다. 던전 들어간다. 전투 시작. 홈버튼 누른다. 타이머 맞춘다. 5분. 유튜브 본다. 밸런스 패치 욕하는 영상. 재밌다. 5분 지났다. 게임 복귀. 스킬 누른다. 앱이 꺼진다. 재현됐다. 로그 본다. 메모리 오버플로우. 백그라운드에서 리소스 해제 안 됐다. 5분간 쌓이다가 복귀 시 터진다. 프로그래머한테 보낸다. "형 이거 재현됐어요. 메모리 이슈 같은데." "아 그거. 알고는 있었는데." "배포 전에 고쳐야죠?" "해볼게요. 근데 시간 빡빡해요." "이거 심각도 높음인데." "알아요. 근데 구조 수정이라 리스크 있어요." "안 고치면요?" "백그라운드 5분 이상 있다가 복귀하면 터져요." "그럼 유저들 욕하는데?" "고치다가 다른 데 터지면 더 욕먹는데?" 둘 다 맞는 말이다. PD한테 보고. "크래시 이슈 수정이 리스크 있대요." "어느 정도?" "백그라운드 5분 이상 시 앱 종료. 근데 고치면 전투 시스템 전체 불안." "확률은?" "백그라운드 5분 이상 유저가 얼마나 될까요?" "모르지. 근데 앱 터지는 건 치명적이잖아." "그래도 고치다 더 큰 버그 생기면요?" "..." "일단 알려진 이슈로 공지하고 다음 패치에서 수정은요?" "그것도 욕먹는다." "안 고치고 터지는 것도 욕먹는데요." "둘 다 욕먹으면 덜 욕먹는 쪽 가자." "어느 쪽이요?" "알려진 이슈로 간다. 고치다 더 터지면 안 되니까." 결정 났다. 이슈 시트에 적는다. "다음 패치 예정. 오픈 시 알려진 이슈 공지." 저녁 8시 20분 17건 정리 끝났다. 수정 확정: 11건 다음 패치: 4건 현 상태 유지: 2건 내일 오전까지 11건 수정본 올라온다. 내일 오후에 다시 QA 돌린다. 또 이슈 나오면 또 판단한다. 배포는 모레. 일요일 오후 2시. 주말 출근이다. 슬랙에 정리 내용 공유한다. PD: "수고" QA팀장: "내일 오전 빌드 기다릴게요" 프로그래머: "ㅠㅠ" 컴퓨터 끈다. 가방 챙긴다. 내일 또 온다. 배포 전은 언제나 이렇다.이슈 리스트는 우선순위가 아니라 정치다. 누구 의견이 더 센지.

유저 커뮤니티에서 '이건 의도적 설계인가?'라는 질문

유저 커뮤니티에서 '이건 의도적 설계인가?'라는 질문

이건 의도한 건가요? 월요일 아침, 커뮤니티 폭발 출근했다. 커피 뽑기 전에 디스코드부터 켰다. 유저 커뮤니티가 난리다. 주말 사이 300개 댓글. "이거 버그냐 너프냐", "의도한 설계 맞냐", "기획자 나와"가 반복된다. 문제는 전사 캐릭터다. 특정 스킬 두 개를 연계하면 쿨타임이 0.5초 줄어든다. 이게 3번 반복되면 1.5초 단축. DPS가 15% 뛴다. 유저들은 두 진영으로 갈렸다. "이거 컨셉이잖아. 숙련도 보상이라고" "버그 아니냐. 다른 캐릭은 안 되는데" 나는 안다. 둘 다 아니라는 걸. 이건 그냥... 생각 못 했다.의도한 설계의 영역 기획서를 열었다. 전사 스킬 파트. "스킬A: 쿨타임 8초, 대미지 150%" "스킬B: 쿨타임 12초, 버프 15초 지속" 연계 보너스는 적혀 있다. "같은 대상에게 5초 내 사용 시 크리티컬 확률 +10%". 이건 의도했다. 하지만 쿨타임 감소는 없다. 프로그래머한테 물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아, 스킬 버프가 쿨타임 회복 속도에 영향 주게 설정돼 있어요. 전투 템포 올리려고 작년에 넣었던 시스템인데." 작년. 내가 오기 전이다. 시스템은 의도했다. 전사 연계는 의도했다. 근데 둘이 만나면 이렇게 되는 건 몰랐다. 이게 게임이다. 레고처럼 쌓아올린 시스템이 예상 못 한 방식으로 얽힌다. 의도의 경계가 흐릿하다. "100% 의도"부터 "전혀 몰랐음"까지 스펙트럼이다. 버그와 피처의 경계 점심 먹으면서 QA팀이랑 얘기했다. "이거 버그 등록할까요?" "잠깐만." 버그의 정의가 뭔가. 의도하지 않은 동작? 그럼 이건 버그다. 근데 게임을 망가뜨리나? 아직 모른다. 데이터를 뽑았다. 전사 유저 1200명. 이 연계 쓰는 사람 83명. 7%. 대부분은 모른다. 저 83명의 승률. 일반 전사 대비 4% 높다. 유의미하지만 압도적은 아니다. "이거 고치면 난리 날 텐데." 시니어 기획자가 말했다. "유저들이 찾아낸 '고급 기술'처럼 됐잖아. 삭제하면 '재미 빼간다'고 할 거야." 맞다. 이미 공략 영상이 5개 올라왔다. "전사 고수들만 아는 연계 타이밍", "이거 모르면 뉴비". 조회수 합치면 15만. 버그를 고치는 게 맞나, 피처로 인정하는 게 맞나. 답이 없다.유저가 발견한 플레이 방식 오후 3시. 긴급 회의. PD가 물었다. "이거 냅둬도 돼?" "지금 당장은 밸런스 괜찮습니다. 근데..." "근데?" "다른 캐릭터들도 똑같이 작동해요. 아직 안 알려졌을 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마법사는 스킬 3개 연계하면 쿨타임 2.5초 줄어든다. 암살자는 백스탭 연계로 3초. 계산해보니 전사보다 더 강하다. "유저들이 아직 못 찾았네." "네. 전사가 제일 쉬워서 먼저 발견된 것뿐이에요." 선택지가 생겼다.시스템 자체를 삭제한다: 전사 유저 폭발, "재미 빼간다" 모든 캐릭터 밸런싱: 작업 2주, 다른 업무 밀림 냅둔다: 다른 캐릭터 조합 발견되면 메타 붕괴PD가 말했다. "이거 원래 왜 넣었어?" 전임 기획자 자료를 찾았다. "전투 템포 개선. 숙련도 보상 체계." 의도 자체는 좋았다. 근데 구현 과정에서 누구도 전체 연계를 시뮬레이션 안 했다. 우리는 개별 스킬을 본다. 유저는 조합을 본다. 커뮤니티 답변 작성 퇴근 전. 공식 답변을 써야 한다. 초안을 썼다. "안녕하세요. 해당 현상은 의도된 시스템입니다만, 일부 밸런스 조정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웠다. 이렇게 쓰면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의도한 게 아니니까. 다시 썼다. "해당 현상은 버그가 아닌 시스템 간 상호작용입니다. 다만 기획 단계에서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이것도 애매하다. 시니어가 어깨를 두드렸다. "솔직하게 써. 유저들 바보 아니야." 최종 답변. "전투 템포 시스템과 스킬 연계가 예상보다 강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의도한 시스템이지만 조합 효과는 미처 체크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데이터 분석 중이며, 급격한 변경보다는 전체 캐릭터 밸런스를 고려해 조정하겠습니다." 올렸다. 10분 만에 댓글 50개. "인정하네 ㅋㅋ" "솔직해서 좋다" "그래도 너프는 하지 마" "다른 캐릭도 강화해줘" 반응이 나쁘지 않다. 솔직함이 통했다.의도와 발견 사이 저녁 8시. 혼자 남아서 정리했다. 게임 기획에는 세 가지 레이어가 있다. 의도한 것: 기획서에 적힌 것. "스킬A는 DPS 증가용." 예상한 것: 기획서엔 없지만 머릿속에 있던 것. "이거랑 저거 같이 쓰면 좋겠지." 발견되는 것: 유저들이 찾아내는 것. "A+B+C를 0.3초 간격으로 누르면..." 문제는 세 번째다. 우리는 스킬 100개를 만든다. 유저는 10만 가지 조합을 시도한다. 우리가 다 테스트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나온다. "이거 의도한 거예요?" 대답은 복잡하다. 시스템은 의도했다. 조합은 몰랐다. 근데 결과가 나쁘지 않으면? 그건 "해피 액시던트"다. 마인크래프트의 크리퍼. 버그로 태어나서 아이콘이 됐다. 다크소울의 패링. 원래는 보조 기능인데 플레이의 핵심이 됐다. 게임은 설계자와 플레이어가 같이 만든다. 우리는 재료를 준다. 유저는 요리를 한다. 때로는 우리가 상상 못 한 요리가 나온다. 다음 패치 준비 결론이 났다. 시스템은 유지. 대신 모든 캐릭터에 "숙련 보너스"로 공식화한다. 수치는 조정. 전사 15% → 10%, 마법사 잠재력 활성화 12%, 암살자 8%. 기획서를 다시 썼다. 이번엔 조합까지 문서화했다. "2-스킬 연계 시 쿨타임 감소 0.3초" "3-스킬 연계 시 추가 0.5초" "최대 누적 1.5초" 이제 의도가 명확하다. 다음에 누가 물어보면 "네, 의도한 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버그를 피처로 승격시켰다. 패치노트 초안. "숙련 시스템 공식화: 연계 플레이 보상 체계 도입" "버그 수정"이 아니라 "신규 기능"이 됐다. 유저들은 너프라고 생각 안 할 것이다. 이게 게임 기획이다. 의도를 사후에 정의하기도 한다. 금요일 저녁, 패치 후 패치가 나갔다. 반응을 봤다. "오 이거 정식 기능이었네" "다른 캐릭터도 되는 거 신기하다" "전사 약간 너프됐는데 괜찮음" "암살자 이거 ㅅㅌㅊ" 성공이다. 시니어가 맥주를 건넸다. "잘했어. 위기를 기회로." "운 좋았죠." "아니야. 대응을 잘한 거야. 숨기거나 무시했으면 더 커졌어." 맞다. 이런 상황은 또 온다. 유저는 항상 우리보다 많다. 100명 기획자보다 100만 명 유저가 더 많이 발견한다. "이거 의도한 거예요?"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때로는 "지금은 아니지만, 이제 의도입니다"가 답이다. 게임은 유기체다. 살아 움직이고 변한다. 기획자는 정원사다. 예상 못 한 방향으로 자란 나무를 다듬고, 때로는 그대로 둔다. 중요한 건 정직함이다. "몰랐습니다, 근데 괜찮습니다"가 "의도했습니다"보다 낫다. 퇴근했다. 이번 주도 무사히. 월요일에는 또 다른 "의도한 거냐" 질문이 올라올 것이다.의도는 고정이 아니다. 발견과 협상한다.

Confluence에 썼던 기획서를 다시 읽으면서

Confluence에 썼던 기획서를 다시 읽으면서

Confluence에 썼던 기획서를 다시 읽으면서 6개월 전의 나 오늘 새 콘텐츠 기획서를 쓰다가 레퍼런스를 찾았다. Confluence를 뒤지니까 6개월 전 기획서가 나왔다. "무한의 탑 시스템 기획서 v1.0". 그때 처음 입사하고 메인으로 맡았던 프로젝트다. 클릭했다. 읽기 시작했다. 5분 만에 얼굴이 뜨거워졌다.뭘 이렇게 썼지 "플레이어는 도전 의식을 느낄 것이다." 근거가 없다. 왜 느끼는데. 무슨 데이터로. "난이도 곡선은 적절하게 설계한다." 적절의 기준이 뭔데. 숫자는 어디 있고. "보상은 플레이어의 기대치를 충족시킨다." 기대치를 어떻게 측정했는데. 설문이라도 했나. 전체가 이런 식이다. 추상적인 단어로 가득하다. "재미있게", "적절하게", "만족스럽게". 구체적인 건 하나도 없다. 표도 엉망이다. 층수별 난이도 테이블인데 1층부터 10층까지만 있다. 11층부터는 "추후 설계"라고 써놨다. 그럼 100층짜리 탑은 어떻게 만들 생각이었는지. 보상 밸런스는 더하다. "골드 1000~5000 지급". 범위가 5배 차이다. 기준이 뭔데. 그냥 감으로 쓴 거다. 당시 개발팀이 이걸 보고 뭐라고 했을지 상상이 간다. "이거 구현하려면 수치가 필요한데요." "아, 네. 제가 추가로 드릴게요." 결국 개발 중간에 기획서를 세 번 갈아엎었다. 그래도 방향은 맞았다 허술한 건 맞다. 하지만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기획 의도를 다시 읽었다. "플레이어가 매일 접속할 이유를 만든다. 단발성이 아닌 지속 콘텐츠로 설계한다. 난이도는 점진적으로 상승하되, 벽이 생기지 않게 한다." 지금 봐도 맞는 말이다. 실제로 무한의 탑은 게임에서 가장 플레이율이 높은 콘텐츠가 됐다. DAU의 82%가 매일 들어간다. 코어 루프도 괜찮았다. "입장 → 전투 → 보상 획득 → 성장 → 다음 층 도전" 이 구조 자체는 출시 후에도 안 바뀌었다. 지금도 똑같다. 문제는 디테일이었다. 숫자를 어떻게 잡을지, 보상을 어떻게 분배할지, 난이도를 어떻게 조절할지. 그게 다 빠져 있었다. 그래도 큰 그림은 맞았다. 그게 다행이다. 만약 방향 자체가 틀렸으면 지금쯤 폐기됐을 거다.숫자를 채워넣는 과정 기획서를 고치기 시작한 건 개발 2주 차였다. 프로그래머가 물었다. "1층 몬스터 체력이 얼마예요?" "아... 잠깐만요." 엑셀을 켰다. 플레이어 평균 공격력을 기준으로 역산했다. 10레벨 기준 공격력 150. 스킬 평균 배율 200%. 크리티컬 확률 15%. 계산기를 두드렸다. "3000입니다." "100층은요?" "...지금 계산할게요." 그날 밤 11시까지 남아서 엑셀 작업했다. 층수별 난이도 곡선을 그렸다. 지수 함수로 증가하되, 10층마다 보스를 넣어서 리듬을 만들었다. 보상 테이블도 다시 짰다. 골드, 경험치, 아이템 드랍률. 전부 플레이어 성장 속도에 맞춰서 계산했다. 3일 동안 숫자만 만졌다. 함수 100개 넘게 썼다. VLOOKUP, IF, INDEX MATCH, 난수 시뮬레이션. 결과물은 10페이지짜리 엑셀 파일이었다. 기획서에 표를 전부 붙였다. Confluence가 느려질 정도로. 개발팀에 공유했다. "이제 구현 가능합니다." 그때부터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테스트와 수정 빌드가 나왔다. QA가 시작됐다. 2일 만에 문제가 터졌다. "30층부터 난이도가 너무 높아요. 진행이 안 됩니다." 데이터를 확인했다. 클리어율이 30층에서 12%로 떨어졌다. 29층까지는 70% 이상이었는데. 문제를 찾았다. 30층 보스 체력이 너무 높았다. 공식에서 계수를 잘못 입력했다. 1.5를 넣어야 하는데 2.5를 넣었다. 수정했다. 다시 테스트했다. 이번엔 50층에서 문제가 생겼다. "보상이 너무 짜요. 노력 대비 효율이 안 나옵니다." 보상 테이블을 다시 봤다. 50층 보상이 40층이랑 거의 차이가 없었다. 증가율을 잘못 계산했다. 또 수정했다. 이런 식으로 3주 동안 계속 고쳤다. 숫자를 바꾸고, 테스트하고, 피드백 받고, 또 바꾸고. 버전이 v3.7까지 갔다. 출시 전날 밤 마지막 점검을 했다. 1층부터 100층까지 직접 플레이했다. 6시간 걸렸다. 밸런스는 맞았다. 난이도 곡선이 자연스러웠다. 보상도 적절했다. 새벽 4시에 퇴근했다.출시 후 3개월 런칭했다. 반응은 좋았다. "무한의 탑 개꿀잼" "매일 할 거 생겨서 좋음" "보상이 쏠쏠함" 유저 리텐션이 올라갔다. 1일 차 90%, 3일 차 75%, 7일 차 68%. 목표치를 넘었다. PD가 만족했다. "이거 잘 만들었어요. 다음 콘텐츠도 부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계속 나왔다. 출시 2주 차. 상위 유저들이 100층을 다 깼다. "이제 뭐 해요? 콘텐츠 끝났는데." 급하게 150층까지 확장했다. 기존 공식을 연장해서 숫자를 뽑았다. 2일 만에 기획서 쓰고 개발 들어갔다. 출시 1개월 차. 신규 유저가 30층에서 막혔다. "초반 난이도 너무 높음" "과금 유도하냐" 데이터를 봤다. 신규 유저 30층 클리어율 18%. 기존 유저는 85%인데. 문제를 찾았다. 신규 유저는 장비가 없다. 기존 유저 기준으로 밸런스를 잡았던 게 문제였다. 1~50층 난이도를 전부 하향했다. 긴급 패치로 나갔다. 출시 3개월 차. 보상 인플레이션이 시작됐다. 무한의 탑 보상이 너무 좋아서 다른 콘텐츠를 안 한다는 피드백이 왔다. 전체 밸런스를 다시 봤다. 무한의 탑만 너프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콘텐츠 보상을 올려야 했다. 경제 밸런스 회의가 3번 열렸다. 결국 전체 재화 수급을 20% 상향 조정했다. 그때 깨달았다. 하나의 콘텐츠는 절대 독립적이지 않다. 전부 연결돼 있다. 지금 다시 쓴다면 오늘 읽은 6개월 전 기획서. 지금 다시 쓴다면 완전히 다르게 쓸 것 같다. 먼저 경쟁사 분석부터 한다. 비슷한 시스템이 있는 게임 5개를 뜯어본다. 난이도 곡선, 보상 구조, 플레이 타임을 전부 분석한다. 그다음 유저 페르소나를 정의한다. 신규, 중수, 고수로 나눈다. 각각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 정리한다. 숫자는 처음부터 다 채워 넣는다. 1층부터 150층까지. 난이도, 보상, 소요 시간. 엑셀 시뮬레이션을 100번 돌린다. 다른 콘텐츠와의 균형도 처음부터 고려한다. 무한의 탑이 전체 재화 수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정한다. 30%로 잡는다. 나머지 콘텐츠도 함께 조정한다. 리스크도 먼저 생각한다. 상위 유저가 너무 빨리 깨면? 신규 유저가 막히면? 보상 밸런스가 무너지면? 각 상황별 대응 방안을 미리 써놓는다. 그렇게 쓰면 기획서가 30페이지는 넘을 것 같다. 6개월 전에는 10페이지도 안 썼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경험이 없었다. 뭘 고려해야 하는지 몰랐다. 숫자 감각도 없었다. 지금은 안다. 뭘 놓쳤는지, 뭘 더 봐야 하는지. 그래서 다음 기획서는 더 잘 쓸 수 있다. 허술해도 괜찮다 6개월 전 기획서는 허술하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그 기획서가 없었으면 무한의 탑도 없었다. 지금 DAU 82%가 플레이하는 콘텐츠도 없었다. 완벽한 기획서는 없다. 처음부터 모든 걸 예측할 수 없다. 유저 반응도, 밸런스 문제도, 다른 시스템과의 충돌도. 중요한 건 방향이다. 코어가 맞으면 나머지는 고칠 수 있다. 숫자는 계속 바뀐다. 밸런스는 계속 조정한다. 런칭 후에도, 3개월 후에도, 6개월 후에도. 기획서는 완성되는 게 아니다. 계속 업데이트된다. v1.0은 시작일 뿐이다. 지금 무한의 탑 기획서는 v8.3이다. 앞으로 v20까지 갈 수도 있다. 그게 게임 기획이다. Confluence 창을 닫았다. 새 기획서를 열었다. 이번엔 더 잘 쓸 수 있다. 6개월 전보다.허술한 기획서도 시작은 된다. 고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