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너무 쉬워졌다는 유저 vs 너무 어렵다는 유저

게임이 너무 쉬워졌다는 유저 vs 너무 어렵다는 유저

오늘도 양쪽에서 두들겨 맞았다

아침 9시 50분. 출근 10분 전에 커뮤니티 들어가 본 게 실수였다.

“이번 패치로 게임 개꿀됐네요 ㅋㅋ 이제 초등학생도 하겠다” 바로 아래 댓글. “아니 나만 어려워진 거임? 진짜 못 깨겠는데”

같은 패치. 같은 던전. 정반대 반응.

커피 한 모금 넘기고 사무실 들어갔다. 모니터 켰다. 슬랙에 PD 멘션. “기획팀 회의 10시 30분, 난이도 이슈 논의”

또 시작이다.

회의실에서 또 싸운다

회의 시작 5분 만에 싸움 시작.

“유저들 너무 쉽다고 난리예요. 코어 유저층 이탈할 것 같은데.” 커뮤니티 담당자가 말했다.

“CS에는 어렵다는 민원이 더 많아요. 환불 요청도 늘었고요.” CS팀장이 받아쳤다.

PD가 나를 봤다. “데이터는?”

준비해 간 엑셀 파일 열었다.

  • 전체 유저 클리어율: 42% → 38% (4%p 하락)
  • 상위 10% 유저 클리어 시간: 평균 8분 → 6분 (25% 단축)
  • 하위 50% 유저 클리어 시도 횟수: 3.2회 → 5.1회 (59% 증가)
  • 던전 포기율: 15% → 23% (8%p 증가)

“난이도 낮췄는데 클리어율이 떨어졌어요.” 다들 멍했다.

“어떻게 쉽게 만들었는데 클리어율이 떨어져요?” PD가 물었다.

“상위 유저는 더 쉬워졌고, 하위 유저는 더 어려워졌어요.”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점심 먹고 데이터 더 파봤다.

패치 전후 비교. 던전 보스 HP 20% 감소. 유저 데미지 15% 증가. 계산상으로는 분명히 쉬워졌다.

그런데.

상위 10% 유저 장비 점수: 평균 12,500 하위 50% 유저 장비 점수: 평균 6,800

패치 전 보스 체력: 500,000 상위 유저 DPS: 2,100 (클리어 시간 4분) 하위 유저 DPS: 850 (클리어 시간 10분)

패치 후 보스 체력: 400,000 상위 유저 DPS: 2,415 (클리어 시간 2.7분) ← 15% 증가 하위 유저 DPS: 977 (클리어 시간 6.8분) ← 15% 증가

문제는 보스 패턴이었다.

패치로 보스 체력이 줄면서 페이즈 전환이 빨라졌다. 상위 유저: 보스를 순삭해서 위험 패턴 보기 전에 끝. 하위 유저: 여전히 모든 패턴 다 봄. 근데 패턴 속도는 그대로.

결과. 상위 유저: “너무 쉬워서 재미없어요” 하위 유저: “여전히 못 깨겠어요”

엑셀 시트 보면서 한숨 나왔다. 숫자로는 쉬워졌는데, 체감은 양극화됐다.

정답이 없는 싸움

오후 3시. PD한테 보고 들어갔다.

“그래서 해결책이 뭐예요?”

세 가지 시뮬레이션 돌려봤다고 설명했다.

옵션 1: 보스 체력 원복, 유저 데미지만 유지

  • 예상 결과: 상위 유저 만족, 하위 유저 여전히 불만
  • 전체 클리어율: 41% (1%p 증가)
  • 커뮤니티 반응: “결국 롤백이네 ㅋㅋ”

옵션 2: 난이도 선택 시스템 추가 (이지/노말/하드)

  • 개발 기간: 3주
  • 보상 차등화 필요
  • 예상 결과: 상위 유저는 하드만 하고, 하위 유저는 이지 보상 불만
  • 커뮤니티 반응: “보상 차별 심하네”

옵션 3: 보스 패턴 단순화 + 체력/데미지 조정

  • 개발 기간: 2주
  • 아티스트 리소스 필요
  • 예상 결과: 모두가 조금씩 불만족
  • 커뮤니티 반응: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밸런스”

PD가 물었다. “추천은?”

“옵션 3이요. 완벽하진 않지만, 양쪽 다 ‘참을 만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어요.”

“완벽한 방법은 없어요?”

“네. 없어요.”

5초 침묵.

“진행하세요.”

커뮤니티는 여전히 싸운다

저녁 7시. 패치 노트 초안 올라왔다.

“보스 패턴 일부 단순화 및 난이도 조정”

예상 반응 시뮬레이션 돌려봤다. (머릿속으로)

상위 유저: “왜 패턴까지 바꿔요? 그냥 원복하세요” 하위 유저: “이 정도로 되겠어요? 더 쉽게 해주세요” 중간층: ”…”

댓글창은 전쟁터가 될 거다.

슬랙에 기획서 공유했다. “보스 패턴 수정안 - 3단계 페이즈를 2단계로 통합, 광역기 삭제, 돌진 패턴 예비 동작 0.3초 추가”

프로그래머한테 답장 왔다. “이거 2주 안에 되려나…”

아티스트한테도 왔다. “이펙트 다시 만들어야 해요?”

된다. 해야 하니까.

밸런싱은 정치다

밤 9시. 혼자 남아서 데이터 정리했다.

게임 밸런싱은 수학이 아니다. 정치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참을 만하게’ 만드는 게 목표다.

상위 10%는 항상 더 어렵길 원한다. 하위 30%는 항상 더 쉽길 원한다. 중간 60%는 조용히 게임만 한다.

커뮤니티에서 목소리 큰 건 양 극단이다. 데이터에서 중요한 건 침묵하는 중간층이다.

지난 3년간 배운 것.

  • 완벽한 밸런스는 환상이다
  • 모든 유저를 만족시킬 수 없다
  • 데이터와 피드백, 둘 다 봐야 한다
  • 빠른 대응이 완벽한 밸런스보다 낫다
  • 유저는 ‘공정함’을 원한다. ‘쉬움’이 아니라.

마지막이 제일 중요하다.

“너무 어려워요” 뒤에 숨은 진짜 뜻. “내 노력으로 극복 가능하게 해주세요”

“너무 쉬워요” 뒤에 숨은 진짜 뜻. “내 실력을 증명할 콘텐츠 주세요”

양쪽 다 맞다. 근데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방법은 없다.

내일은 또 다른 싸움

퇴근 전에 슬랙 마지막 확인.

개발팀: “패턴 수정 작업 내일부터 시작합니다” QA팀: “테스트 케이스 작성 중입니다” 커뮤니티팀: “유저 공지 문구 검토 부탁드려요”

내일도 싸울 준비 끝.

패치 나가면 또 난리 날 거다. “이게 해결책이에요?” “여전히 어려운데요” “이제 재미없어요”

그래도 데이터는 조금 나아질 거다. 클리어율 42%, 포기율 18%, 평균 시도 횟수 3.8회.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조금 덜 불만족할 거다.

그게 내 일이다.

모니터 껐다. 가방 챙겼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생각했다. 게임 밸런싱은 언제쯤 쉬워질까.

5년 차인데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10년 차가 돼도 모를 거다.

정답이 없는 문제는 풀 수가 없다. 그냥 ‘가장 나은 오답’을 찾을 뿐이다.

집 가는 지하철 안에서 커뮤니티 또 열었다.

“다음 패치 때는 제발 제대로 해주세요”

…제대로가 뭔데.

결국 선택의 문제

새벽 1시. 집에서 경쟁사 게임 켰다.

던전 들어가 봤다. 죽었다. 다시 시작했다. 또 죽었다. 세 번째 시도에서 클리어했다.

“아 이 정도면 적당한데.”

그 순간 깨달았다. 나도 유저 입장에선 ‘내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걸.

기획자 입장에선 데이터 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결국 최종 결정은 ‘감’이다.

숫자는 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떤 숫자가 ‘좋은 게임’인지는 못 알려준다.

클리어율 70%가 좋은 게임일까? 클리어율 30%가 좋은 게임일까?

둘 다 맞고, 둘 다 틀리다.

다크소울은 어렵지만 명작이다. 쿠키런은 쉽지만 명작이다.

결국 게임의 정체성 문제다.

우리 게임은 뭘 추구하는가. 도전인가, 접근성인가. 하드코어인가, 캐주얼인가.

그걸 정하면 난이도 방향이 나온다. 문제는 회사가 둘 다 원한다는 거다.

“하드코어 유저도 잡고, 라이트 유저도 잡고”

불가능하다. 근데 해야 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

노트북 덮었다. 침대에 누웠다.

내일 회의에서 또 물어볼 거다. “그래서 정답이 뭐예요?”

“정답은 없어요. 선택만 있을 뿐이에요.”

그 말 하면 PD 표정 벌써 보인다.

잠들기 전에 마지막 생각. 게임 기획자가 제일 자주 듣는 말.

“왜 이렇게 만들었어요?”

대답은 항상 같다. “그게 제일 나은 선택이었어요.”

완벽하지 않다. 근데 그게 최선이었다.

양쪽의 진실

다음 날 아침. 출근해서 기획서 마무리했다.

난이도 조정 철학

우리는 모든 유저를 만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유저에게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다.

  • 하위 유저: 연습으로 극복 가능한 난이도
  • 중간 유저: 적당한 도전과 성취감
  • 상위 유저: 실력 차이를 증명할 콘텐츠

세 그룹의 경험을 모두 존중하되, 게임의 정체성은 지킨다.

우리 게임은 ‘노력하면 보상받는’ 게임이다.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이번 패치의 목표.

  • 전체 클리어율 45% 달성
  • 포기율 20% 이하 유지
  • 상위 유저 평균 클리어 시간 8분 (도전적 콘텐츠 유지)
  • 하위 유저 3회 이내 클리어 가능 (학습 곡선 개선)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전보다 낫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PD한테 보냈다. 10분 뒤 답장. “진행하세요. 패치 후 데이터 모니터링 부탁합니다.”

시작이다.

2주 후, 패치 당일

D-Day. 패치 오픈 오후 2시.

모니터 5개 켜놨다.

  • 실시간 플레이 데이터
  • 커뮤니티 반응
  • CS 접수 현황
  • 서버 로그
  • 슬랙 단체방

손에 땀났다.

2시 5분. 첫 클리어 나왔다. 상위 유저. 7분 42초. 2시 18분. 라이트 유저 첫 클리어. 시도 2회. 12분 35초.

좋은 신호다.

커뮤니티 새로고침.

“오 이번엔 괜찮은데?” “패턴 단순해져서 좀 쉬워졌네요” “그래도 여전히 어렵긴 함 ㅋㅋ”

아직까지는 괜찮다.

2시 47분. 슬랙 알람. “클리어율 실시간 43.2%”

목표치 45%까지 1.8%p 차이. 오차범위 안이다.

3시 20분. 커뮤니티에 긴 글 올라왔다.

“이번 패치 평가합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예전보단 낫네요. 하위 유저 입장에서 연습하면 깰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상위 유저 입장에선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챌린지 콘텐츠는 남아있고요. 기획팀 고생했습니다.”

스크린샷 찍었다. 저장했다. 이런 글 귀하다.

5시. 오늘 데이터 1차 집계.

  • 전체 클리어율: 44.1%
  • 포기율: 19.3%
  • 평균 시도 횟수: 3.6회
  • 상위 유저 평균 클리어 시간: 7분 52초
  • 하위 유저 3회 이내 클리어: 68%

목표 거의 달성.

PD한테 보고 들어갔다. “수고했어요. 이번엔 잘 풀렸네요.”

“운이 좋았어요.”

“다음엔 또 어려울 거예요.”

“알아요.”

끝나지 않는 전쟁

저녁 8시. 퇴근 준비하는데 슬랙 알람.

“신규 던전 기획 회의 - 내일 오전 10시”

또 시작이다.

난이도 설정부터 싸울 거다. “이번엔 좀 어렵게” “아니 접근성 좋게”

그리고 나한테 물을 거다. “데이터상 적정 난이도가 어느 정도예요?”

답할 거다. “유저층에 따라 다릅니다.”

그럼 또 물을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선택해야죠. 누구를 우선할 건지.”

완벽한 대답은 아니다. 근데 정직한 대답이다.

가방 챙기면서 오늘 커뮤니티 마지막 확인.

“쉽다” 30% “적당하다” 45% “어렵다” 25%

완벽한 분포는 아니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모두가 만족하는 게임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이 수긍하는 게임은 만들 수 있다.

그게 오늘 배운 거다.

엘리베이터 타면서 생각했다. 5년 차에 깨달은 진실.

게임 밸런싱은 싸움이 아니다. 협상이다.

유저와 협상하고, 팀과 협상하고, 데이터와 협상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협상. 나 자신과의 협상.

“이 정도면 됐어.” “완벽하진 않지만, 괜찮아.”

완벽주의 내려놓는 게 제일 어렵다.

집 가는 지하철 안에서 또 생각했다. 10년 차 되면 이 고민 없어질까.

아니다. 더 심해질 거다. 경험이 쌓일수록 ‘정답 없음’이 더 확실해지니까.

그래도 괜찮다. 정답 없는 문제 푸는 게 내 일이니까.


양쪽 다 맞는데 누구 편을 들까 고민하지 마. 둘 다 들어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 그게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