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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칭
- 05 Jan, 2026
아트가 나오고 난 후에야 보이는 기획의 허점
아트가 나오고 난 후에야 보이는 기획의 허점 프로토타입 단계의 착각 프로토타입 단계에서는 모든 게 괜찮아 보였다. 회색 박스에 숫자만 띄워놓고 밸런스 잡았다. 10발 쏘면 죽는다. 쿨타임 3초. 데미지 500. 모션 시간 0.8초. 엑셀에 정리된 숫자는 완벽했다. PD한테 보고했다. "밸런스 잡았습니다." 승인 받았다. QA 테스트도 통과. 프로그래머도 "구현 완료"라고 했다. 문제없었다. 그때까지는.아트 작업이 시작됐다. 캐릭터 원화 나왔다. 이펙트 들어갔다. 애니메이션 붙었다. UI 디자인 완성됐다. 그리고 빌드를 받았다. 실행했다. "어...?" 뭔가 이상했다. 프로토타입이랑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숫자는 똑같은데 게임이 달라 보였다. 시각적 피드백의 배신 가장 먼저 터진 건 타격감이었다. 회색 박스 때는 괜찮았다. 박스가 빨갛게 깜빡이고, 데미지 숫자 튀어나오고, 그걸로 충분했다. QA 테스터들도 "괜찮은데요?"라고 했다. 근데 최종 캐릭터 모델이 들어가니까 완전히 달랐다. 칼로 베는데 상대가 안 밀려난다. 그냥 서 있다. 피 튀는 이펙트는 화려한데 몸은 꿈쩍도 안 한다. 죽을 때도 그냥 스르륵 사라진다. "이거 맞은 거 맞아?" 유저 입장에서 그렇게 보일 게 뻔했다.TA한테 갔다. "적 밀려나게 해주세요." "기획서에 넉백 없던데요?" "...넣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럼 밸런스 다시 잡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넉백 거리, 시간, 그거 다 수치잖아요." 맞다. 넉백이 들어가면 공격 딜레이가 달라진다. 콤보 타이밍이 바뀐다. 밸런스 전체를 다시 봐야 한다. 프로토타입 단계에서는 생각도 못 했던 일이다. UI 배치의 함정 UI도 문제였다. 기획서에 UI 배치도 그렸다. 와이어프레임 깔끔하게 정리했다. 체력바 위쪽, 스킬 아이콘 아래쪽, 미니맵 오른쪽 위. 논리적으로 완벽했다. 프로토타입 빌드에서는 괜찮았다. 단순한 도형이랑 텍스트니까. 시야 방해 안 됐다. 최종 UI 디자인 들어갔다. 화려했다. 예뻤다. 아트팀이 정성 들여서 만들었다. 근데 게임이 안 보였다. 체력바가 너무 화려해서 적 공격 모션이 안 보였다. 스킬 아이콘이 반짝거려서 정작 쿨타임이 안 보였다. 미니맵 테두리가 두꺼워서 적 위치 파악이 늦었다. "디자인은 이쁜데 게임이 안 되는데요?" UI 디자이너한테 말했다. "좀 단순하게 해주세요." "기획서대로 만든 건데요?" "...기획서를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 작업 돌아간다. 일정 밀린다. 캐릭터 크기 문제 제일 황당했던 건 캐릭터 크기였다. 기획서에 썼다. "캐릭터 키 1.8m 기준". 캡슐 콜라이더로 테스트했다. 맵 디자인도 그 크기 기준으로 했다. 최종 캐릭터 모델이 들어왔다. 원화가 너무 멋있었다. 갑옷 디테일 미쳤다. 망토 휘날리는 것도 완벽했다. 무기도 간지 났다. 근데 게임에 넣으니까 화면을 다 먹었다. 아니, 실제 크기는 1.8m 맞다. 근데 갑옷 어깨 장식이 튀어나왔다. 망토가 퍼졌다. 무기가 길었다. 시각적으로 훨씬 커 보였다. 좁은 통로 지나갈 때 벽이랑 겹쳐 보였다. 카메라 각도 바꾸면 망토가 화면 가렸다. 2명만 모여도 복잡했다."캐릭터 크기 줄여야 할 것 같은데요." "모델링 다시 해야 해요?" "...일단 스케일만 줄여보고요." 스케일 90%로 줄였다. 맵이랑 밸런스가 안 맞았다. 공격 사거리가 이상해졌다. 점프 높이가 달라 보였다. 프로토타입 단계에서는 예상 못 했다. 캡슐 콜라이더는 그냥 캡슐이니까. 모션 타이밍의 배신 공격 모션도 재작업이었다. 기획서에 썼다. "공격 속도 0.8초". 프로토타입에서 테스트했다. 타이밍 괜찮았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최종 모션 들어갔다. 애니메이터가 멋있게 만들었다. 칼 휘두르기 전에 준비 동작. 휘두른 후에 여운 동작. 무게감 있게. 총 시간은 0.8초 맞다. 근데 실제로 데미지 들어가는 순간은 0.4초 지점이었다. 나머지 0.4초는 준비랑 여운이었다. 유저 입장에서는 느렸다. "왜 이렇게 답답해?" 프로그래머한테 물었다. "데미지 타이밍 앞당길 수 있어요?" "그럼 모션이랑 안 맞는데요? 칼이 적한테 닿기도 전에 데미지 들어가요." "...모션 다시 받아야 하나요?" "애니메이터 스케줄이..." 결국 타협했다. 모션 속도 120%로 올렸다. 0.67초로 줄었다. 밸런스 다시 잡았다. 모든 적 공격 패턴 다시 조정했다. 프로토타입에서는 숫자만 바꾸면 됐는데. 이펙트와 가독성 이펙트 작업도 문제였다. "화려하게 해주세요." 기획 의도였다. 타격감 살려야 했다. 이펙트 아티스트가 진짜 화려하게 만들었다. 불꽃 튄다. 번개 친다. 빛난다. 폭발한다. 테스트 빌드 받았다. 1:1 전투는 괜찮았다. 이펙트 보기 좋았다. 3:3 전투는 난리였다. 화면이 온통 이펙트였다. 내 캐릭터가 어딨는지 모르겠다. 적 공격 패턴이 안 보인다. 회피 타이밍 놓쳤다. QA 리포트 올라왔다. "다수 전투 시 가독성 문제". 이펙트 톤 다운 요청했다. "좀 줄여주세요." "어느 정도요?" "...플레이해보면서 조절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일주일 동안 이펙트 강도 조절했다. 0.1씩 줄이면서 테스트했다. 최종적으로 50%까지 내렸다. 아트팀은 아쉬워했다. "이렇게 줄이면 임팩트가..." "게임이 되려면 어쩔 수 없어요." 프로토타입 단계에서는 이펙트가 없어서 몰랐다. 색감과 명도 문제 맵 라이팅도 다시 잡았다. 컨셉 아트는 분위기 좋았다. 어두운 던전, 횃불 빛, 그림자 깊게. 무드 있었다. 실제 게임에 적용했다. 너무 어두웠다. 적이 안 보였다. 바닥 함정이 안 보였다. 아이템 드랍됐는지도 모르겠다. "밝기 올려주세요." "컨셉이랑 달라지는데요?" "유저가 게임을 못 하는데요?" 명도 올렸다. 컨셉 아트 느낌 사라졌다. 아트 디렉터 안타까워했다. 근데 어쩌나. 게임이 먼저다. 적 캐릭터 색감도 문제였다. 배경이랑 비슷한 색이었다. "자연스럽게" 하려고 그렇게 했는데, 자연스러워서 안 보였다. 적 외곽선 추가했다. 아트 스타일이랑 안 맞았다. 근데 넣어야 했다. 프로토타입에서는 빨간 박스였으니까 잘 보였다. 사운드와 타이밍 사운드도 변수였다. 타격음 들어갔다. 멋있었다. 중후했다. 근데 타이밍이 안 맞았다. 칼이 적한테 닿는 순간이랑 소리 나는 순간이 0.1초 차이 났다. "사운드 타이밍 맞춰주세요." "모션이랑 이펙트 타이밍이 다 달라서..." 결국 타이밍 맞추는 데만 3일 걸렸다. 모션, 이펙트, 사운드, 데미지 판정 타이밍 다 싱크 맞췄다. 프로토타입에서는 '띠링' 소리 하나였는데. 재작업의 악순환 결국 한 달 일정이 밀렸다. 밸런스 다시 잡았다. 넉백, 모션 속도, 이펙트 타이밍 반영해서. 엑셀 시트 전부 수정했다. UI 배치 재조정했다. 가독성 우선으로. 기획서 다시 썼다. 맵 디자인 일부 수정했다. 캐릭터 크기 변경 반영해서. QA 다시 돌렸다. 버그 또 나왔다. PD한테 보고했다. "일정 지연 보고드립니다."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왜 못 봤어?" "...프로토타입에서는 안 보였습니다."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회색 박스로는 정말 안 보였다. 다음 프로젝트를 위한 교훈 이제 안다.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최대한 실제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 회색 박스로만 테스트하면 안 된다. 레퍼런스 아트 일찍 받는다. 캐릭터 크기, 모션 길이, 이펙트 규모 미리 가늠한다. UI 와이어프레임만 보지 않는다. 실제 게임 화면 가독성 시뮬레이션 한다. 타격감, 템포감은 숫자만으로 기획 못 한다. 시각적, 청각적 요소 고려해야 한다. 일정 산정할 때 '아트 적용 후 재조정' 기간 넣는다. 무조건 필요하다. 근데 현실은.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아트 리소스가 없다. 아트팀은 다른 프로젝트 중이다. 레퍼런스 찾아서 대충 맞춰봐야 한다. 그래도 실제랑은 다르다. 결국 아트 나오고 나면 또 놀랄 것이다. "어...?" 그게 게임 개발이다.오늘도 아트 컨펌 기다린다. 이번엔 또 뭐가 달라 보일까.
- 28 Dec, 2025
콘퍼런스 룸에서 숫자가 안 맞을 때: 누가 틀렸나
콘퍼런스 룸에서 숫자가 안 맞을 때: 누가 틀렸나 오전 10시, 회의실회의실에 들어갔다. PD, 마케팅팀, 나. "이번 패키지, 얼마나 팔릴까요?" PD가 물었다. 마케팅팀이 자료를 켰다. "월 매출 3억 예상합니다." 나는 엑셀을 열었다. 어젯밤에 시뮬 돌린 거. "플레이 타임 분석하면 2억 2천이 한계입니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근거가 뭔데요?" "유저 1인당 플레이 타임이 일 2시간이고, 패키지 소진까지 14일 걸립니다. 재구매 주기 고려하면..." PD가 끼어들었다. "마케팅 데이터는요?" "신규 유입 30% 증가 예상이고, 전환율 8%면..." 둘 다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숫자는 안 맞았다. 숫자가 다른 이유회의가 끝났다. 내 자리로 돌아왔다. 엑셀을 다시 봤다. 내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유저 플레이 타임: 일 평균 2시간 3분 패키지 완료까지: 13.8일 재구매율: 24% 예상 매출: 2억 2400만원PD 자료도 다시 봤다. 이것도 틀리지 않았다.신규 유입: 기존 대비 32% 증가 전환율: 8.2% 객단가: 15,000원 예상 매출: 3억 100만원문제는 이거였다. 우리가 다른 걸 보고 있었다. 나는 '기존 유저가 얼마나 살까'를 봤다. PD는 '신규 유저가 얼마나 들어올까'를 봤다. 둘 다 맞았다. 그런데 합치면 숫자가 이상했다. 누가 틀렸나 점심시간이었다. 프로그래머 민수가 물었다. "회의 어땠어?" "숫자 싸움." "누가 이겼어?" "모르겠어. 둘 다 맞는 것 같은데 합치면 틀렸어." 민수가 웃었다. "그럼 둘 다 틀린 거 아냐?" 그 말이 맞았다. 문제는 변수였다. 내가 못 본 변수, PD가 못 본 변수. 내가 못 본 거:신규 유입이 기존 유저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커뮤니티 분위기가 구매를 부추긴다 이벤트 타이밍이 재구매를 앞당긴다PD가 못 본 거:신규 유저는 패키지를 바로 안 산다 플레이 타임이 짧으면 재구매가 늦어진다 기존 유저 이탈이 신규 유입을 상쇄한다오후 3시, 다시 회의PD가 다시 불렀다. "숫자 다시 봤어요?" "네. 제 계산에 신규 유입 변수 넣으니까 2억 7천 나왔습니다." "저도 플레이 타임 고려하니까 2억 8천 나왔어요." 가까워졌다. 2억 7500만원으로 정리했다. "그럼 이걸로 갑시다." 회의가 끝났다. 그런데 찝찝했다. 이게 맞나? 아니면 또 다른 변수가 있나? 2주 후, 패키지 출시 런칭 당일이었다. 모니터를 켰다. 매출 대시보드를 띄웠다. 1시간마다 새로고침했다.1일차: 8200만원 2일차: 6700만원 3일차: 5100만원일주일 합계: 2억 9300만원. 우리 예상: 2억 7500만원. 틀렸다. 그런데 좋은 쪽으로 틀렸다. PD가 슬랙에 썼다. "숫자 잘 맞췄네요 ㅎㅎ" 아니었다. 우리가 못 본 변수가 또 있었다.경쟁작이 서버 터짐 스트리머가 우리 게임 방송함 커뮤니티에서 입소문 탐운이 좋았다. 숫자가 맞은 게 아니라.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퇴근길이었다.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콘퍼런스 룸에서 숫자가 안 맞을 때, 누가 틀렸나? 정답은 '둘 다 틀렸고 둘 다 맞았다'. 게임은 변수가 너무 많다.유저 행동은 예측 불가 커뮤니티는 통제 불가 경쟁 상황은 변수 시장 분위기는 랜덤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뿐이다.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본다. 최대한 많은 변수를 고려한다. 그리고 틀릴 준비를 한다. PD도 마찬가지다. 마케팅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 같이 틀린다. 그리고 다 같이 맞춘다. 다음 패키지 회의 한 달 후, 또 회의실에 들어갔다. "이번엔 얼마 예상하세요?" PD가 물었다. 나는 엑셀을 켰다. "3억 5천입니다. 근데 변수가 20개 정도 있습니다." "어떤 변수요?" 쭉 읽어줬다. 유저 이탈률, 경쟁작 스케줄, 커뮤니티 분위기, 시즌 종료 타이밍, 밸런스 패치 영향, 날씨... PD가 웃었다. "날씨요?" "비 오는 날 접속자 12% 늘어납니다. 여름이라 변수에 넣었습니다." "미쳤네요." 미친 게 아니다. 이게 게임 기획이다. 숫자는 항상 틀린다. 그래서 계속 본다. 회의가 끝났다. 자리로 돌아와서 엑셀을 다시 켰다. 변수를 하나 더 추가했다. '예상 밖의 변수: ±30%' 이게 제일 정확한 변수다. 밤 11시, 퇴근 전 모니터를 끄기 전에 슬랙을 봤다. PD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회의 고생했어요. 근데 진짜 궁금한 게, 숫자가 안 맞을 때 스트레스 안 받아요?" 답장을 쳤다. "받죠. 근데 숫자가 딱 맞으면 더 무섭습니다. 뭔가 놓친 것 같아서요." 읽음 표시가 떴다. 답장이 왔다. "그것도 그렇네요 ㅋㅋ" 컴퓨터를 껐다. 가방을 챙겼다. 콘퍼런스 룸에서 숫자가 안 맞는 건 일상이다. 누가 틀렸나? 우리 다 틀렸다. 그래서 다음에 또 맞춰본다.숫자가 맞으면 의심하고, 틀리면 배운다.
- 26 Dec, 2025
팀원끼리 '이 게임은 정말 재미있을까?'라는 의심
회의실에서 나온 질문 회의실을 나왔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거 정말 재미있나?" 3개월째 만들고 있는 게임이다. 시스템 기획서는 완성됐다. 전투 밸런스도 7번 조정했다. 코어 루프는 명확하다. 그런데 매일 테스트하는 우리는 재미를 못 느낀다. 프로그래머 민수가 먼저 물어봤다. "형, 솔직히 이거 재미있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기획서에는 재미있다고 썼다. 근거도 있다. 경쟁작 분석도 했다. 유저 페르소나도 만들었다. 그런데 직접 플레이하면 재미가 안 느껴진다.테스트 빌드를 열었다. 튜토리얼부터 해봤다. 10분 플레이했다. 껐다. 뭔가 이상하다. 시스템은 돌아간다. 버그도 없다. 근데 재미가 없다. "우리가 너무 많이 해봐서 그런가?" 아티스트 지영이 말했다. "유저는 처음 할 텐데 괜찮을 거야." 그 말이 위로가 됐다. 1시간 정도. 저녁에 다시 플레이했다. 역시 재미없다. 3개월 동안 같은 컨텐츠만 반복했다. 밸런스 체크하려고 같은 스테이지를 500번은 깬 것 같다. 이제 눈 감고도 클리어할 수 있다. 그래서 재미가 없는 건가. 아니면 게임 자체가 재미없는 건가. 엑셀 시트가 말해주지 않는 것 숫자는 괜찮았다. 유저 1명이 하루에 접속하는 시간: 45분 예상. 첫 과금까지 걸리는 시간: 3일. 이탈률: 30% 예상. 경쟁작보다 낮다. 스프레드시트에는 다 있다. 레벨별 경험치 커브. 재화 획득량. 가챠 확률. 던전 난이도. 보상 밸런스. 모든 수치가 시뮬레이션 통과했다. 그런데 재미는 시뮬레이션할 수 없다.PD가 물어봤다. "기획 의도대로 구현됐어?" "네." "밸런스는 문제없어?" "없습니다." "그럼 됐어. 유저 반응 보면 알아." 유저 반응 보면 안다. 그 말이 제일 무섭다. 베타 테스트 전까지 3주 남았다. 3주 동안 우리는 이 게임이 재미있는지 모른 채 만든다. 나는 매일 밸런스 시트를 본다. 숫자를 조정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숫자가 재미를 만들어줄까?" 경험치를 10% 올리면 재미있어질까. 보상을 20% 늘리면. 던전을 더 어렵게 하면. 더 쉽게 하면. 가챠 확률을 올리면. 엑셀은 대답하지 않는다. 다른 팀 이야기 복도에서 옆 팀 기획자를 만났다. 그 팀도 막바지다. "너희 게임은 재미있어?" 내가 물었다. "모르겠어. 우린 매일 해서." 같은 고민이었다. 그 팀은 작년에 게임을 출시했다. 첫 주 매출 예상: 3억. 실제 매출: 8천만원. 두 달 만에 서비스 종료했다. "개발할 때는 다들 확신했어. 재미있을 거라고." 그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회사 옆에 있는 편의점에 갔다. 컵라면을 끓였다. 편의점 의자에 앉아서 먹었다. 옆에서 고등학생 둘이 게임하고 있었다. 모바일 RPG다. 우리 경쟁작이다. "이거 개꿀잼이야." "인정. 밸런스 지린다." 나는 그 게임을 분석했다. 엑셀 시트에 다 정리했다. 시스템 구조도 이해한다. 밸런스 테이블도 역설계했다. 그런데 직접 플레이하면 재미가 없다. 왜냐면 나는 분석하면서 플레이하니까.고등학생들은 분석하지 않는다. 그냥 즐긴다. 숫자를 보지 않는다. 밸런스를 생각하지 않는다. 경험치 커브가 어떻든 상관없다. 재미있으면 한다. 편의점을 나왔다. 회사로 돌아갔다. 테스트 빌드를 켰다. 10분 플레이했다. 여전히 재미없다. 유저는 다를까. 베타 테스트 2주 전 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다들 말을 아낀다. 회의 시간이 줄었다. 각자 작업만 한다. 테스트는 안 한다. 왜냐면 테스트할 때마다 불안해지니까. 민수가 말했다. "형, 우리 게임 망하면 어떡해?" "데이터 보고 빠르게 수정하지 뭐." "근데 근본적으로 재미없으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재미없는 게임은 고칠 수 없다. 밸런스로 커버 안 된다. 시스템을 갈아엎어야 한다. 그럴 시간은 없다. 베타 테스트 일정은 확정됐다. 마케팅 예산도 잡혔다. 사전예약 이벤트도 기획됐다. 이제 멈출 수 없다. 불안한 채로 가는 수밖에. PD가 전체 회의를 열었다. "우리 게임 재미있습니다. 확신 가지세요. 유저 반응 좋을 겁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PD도 확신이 없어 보였다. 그날 밤 집에서 경쟁작을 했다. 3시간 플레이했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 게임은 이거보다 재미있나?" 모르겠다. 베타 오픈 당일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잠이 안 왔다. 베타 테스트는 오전 11시 시작이다. 7시간 남았다. 회사에 일찍 갔다. 아무도 없다. 테스트 서버를 확인했다. 빌드 체크했다. 데이터 동기화 확인했다. 이상 없다. 9시에 팀원들이 출근했다. 다들 피곤해 보인다. 어제 밤 늦게까지 최종 점검했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없다. 11시. 서버 오픈했다. 유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시간 모니터링 화면을 켰다. 동접자 수가 올라간다. 50명. 100명. 500명.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다들 모니터만 본다. 첫 던전 클리어율을 봤다. 85%. 예상은 80%. 괜찮다. 튜토리얼 이탈률. 12%. 예상은 15%. 좋다. 평균 플레이 타임. 35분. 예상은 45분. 좀 짧다. 숫자는 괜찮다. 그런데 재미는. 민수가 유저 채팅을 띄웠다. 커뮤니티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그래픽 괜찮은데?" "시스템은 좀 복잡하네." "이거 뭐하는 게임이야?" "재미는 있는데 뭔가 아쉬워." 재미는 있는데 뭔가 아쉽다. 그 코멘트가 제일 무서웠다. 베타 테스트 3일차 데이터가 쌓였다. 숫자는 예상보다 좋았다. 평균 플레이 타임: 42분. 재접속률: 68%. 첫 과금 전환율: 4.2%. 경쟁작보다 높다. 그런데 유저 반응은 애매했다. "잘 만들긴 했는데 뭔가 빠진 느낌." "시스템은 탄탄한데 재미는 보통." "할 만은 한데 계속 할지는 모르겠음." 지영이 물었다. "이거 긍정이야 부정이야?" "애매한 거지." "그럼 망한 거야?"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망한 건 아니다. 그런데 대박도 아니다. 그냥 그런 게임. 숫자는 괜찮은데 뭔가 부족한 게임. PD가 말했다. "출시 전에 재미 더 끌어올립시다." 어떻게? "밸런스 조정하고, 컨텐츠 추가하고." 그게 재미를 만들까? 나는 밸런스 시트를 열었다. 어디를 만져야 할까. 경험치? 보상? 난이도? 스킬? 가챠? 숫자를 바꾸면 재미가 생길까. 피드백을 뜯어보는 시간 베타 테스터 인터뷰를 했다. 10명. 각자 30분씩. 게임에 대해 물어봤다. "재미있었어요?" "응 그냥 그런 거 같은데." "어떤 부분이 아쉬웠어요?" "음... 뭐랄까, 다 괜찮은데 확 끌리지는 않아요." 확 끌리지 않는다. 다른 테스터에게도 물었다. "이 게임 친구한테 추천할 거예요?" "글쎄요. 할 만하긴 한데 꼭 추천할 정도는." "왜요?" "그냥요. 특별한 게 없어요." 특별한 게 없다. 인터뷰를 정리했다. 공통 피드백:시스템은 잘 만들어짐 그래픽 괜찮음 밸런스 무난함 그런데 특별하지 않음 기억에 남는 순간이 없음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듦우리는 잘 만들었다. 그런데 특별하지 않다. 기획서를 다시 봤다. 코어 컨셉: 전략적 덱 빌딩 RPG. 타겟: 20-30대 남성. 레퍼런스: A게임 + B게임. 차별점: C 시스템. 차별점이 약했다. 레퍼런스 게임들의 조합일 뿐이다. 새로운 경험은 없다. 우리는 안전하게 만들었다. 검증된 시스템. 검증된 밸런스. 검증된 재미. 그래서 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뜨지도 않는다. 민수가 물었다. "형, 이거 어떻게 고쳐?" "모르겠어." "정말?" "응. 근본을 바꿔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출시는 2개월 뒤다. 불안을 견디는 방법 결국 우리는 출시하기로 했다. 베타 피드백 반영해서. 밸런스 조정하고. 컨텐츠 추가하고. UI 개선하고. 근본은 안 바뀐다. 특별해지지 않는다. 그냥 괜찮은 게임으로 출시한다. 그게 현실이다. 회사 옥상에 올라갔다. 담배 피우는 곳이다. 나는 안 피우지만 가끔 올라온다. 민수가 와 있었다. "형도 왔네." "응." 한강이 보였다. 늦은 밤이라 조용하다. 민수가 말했다. "우리 게임 망하면 어떡하지." "망하진 않을 거야." "대박도 아니잖아." "응." 침묵이 흘렀다. "형, 게임 기획 계속할 거야?" "모르겠어. 너는?" "나도 모르겠어." 우리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래도 만들긴 하잖아." 민수가 말했다. "응." "재미있는지 모르는 게임을." "그래도 만들어." 그게 답이다. 재미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도 만든다. 불안한 채로 만든다. 출시한다. 유저 반응 본다. 데이터 분석한다. 업데이트한다. 그리고 다음 게임을 만든다. 또 불안한 채로. 옥상을 내려왔다. 자리로 돌아왔다. 밸런스 시트를 열었다. 경험치 커브를 수정했다. 던전 보상을 조정했다. 스킬 데미지를 올렸다. 이게 재미를 만들까. 모르겠다. 그래도 한다. 출시 한 달 전 팀 분위기가 조금 나아졌다. 베타 데이터가 나쁘지 않아서. 망하지는 않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대박은 아니어도 괜찮다. 흥행은 아니어도 괜찮다. 서비스는 유지된다. 다음 업데이트를 준비한다. 그게 우리 일이다. PD가 회의에서 말했다. "출시 후 3개월 로드맵 짭시다. 유저 이탈 막으려면 신규 컨텐츠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미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출시도 안 했는데. 집에 가는 길. 지하철에서 게임했다. 우리 베타 빌드가 아니라 다른 게임. 신작 RPG다. 평점 4.5. 다운로드 50만. 30분 플레이했다. 재미있었다. 시스템은 단순하다. 밸런스는 평범하다. 그래픽도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뭔가 있다. 확 끄는 순간이 있다. 다시 하고 싶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이게 뭐지. 우리 게임과 뭐가 다르지. 숫자로 설명할 수 없다. 기획서에 쓸 수 없다. 엑셀 시트에 넣을 수 없다. 그냥 재미다. 그래도 만든다 오늘도 출근했다. 오늘도 밸런스 시트를 연다. 오늘도 숫자를 만진다. 출시까지 4주 남았다. 우리 게임이 재미있을까. 여전히 모르겠다. 유저가 좋아할까. 확신 없다. 대박 칠까. 아니. 그래도 만든다. 출시한다. 데이터 본다. 업데이트한다. 이게 게임 기획자의 일이다. 불안을 견디는 게 일이다. 확신 없이 만드는 게 일이다. 재미는 출시 후에 알게 된다. 유저 반응으로. 숫자로. 리뷰로. 매출로. 그 전까지는 모른다. 그냥 믿는다. 우리가 잘 만들었다고. 괜찮을 거라고. 밸런스 시트를 저장했다. 슬랙에 업데이트를 공유했다. 민수가 확인 이모지를 달았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간다. 출시는 가까워진다. 불안도 커진다. 그래도 만든다.재미는 숫자가 아니라 순간이다. 그 순간은 출시 후에야 알게 된다.
- 22 Dec, 2025
게임이 너무 쉬워졌다는 유저 vs 너무 어렵다는 유저
오늘도 양쪽에서 두들겨 맞았다 아침 9시 50분. 출근 10분 전에 커뮤니티 들어가 본 게 실수였다. "이번 패치로 게임 개꿀됐네요 ㅋㅋ 이제 초등학생도 하겠다" 바로 아래 댓글. "아니 나만 어려워진 거임? 진짜 못 깨겠는데" 같은 패치. 같은 던전. 정반대 반응. 커피 한 모금 넘기고 사무실 들어갔다. 모니터 켰다. 슬랙에 PD 멘션. "기획팀 회의 10시 30분, 난이도 이슈 논의" 또 시작이다.회의실에서 또 싸운다 회의 시작 5분 만에 싸움 시작. "유저들 너무 쉽다고 난리예요. 코어 유저층 이탈할 것 같은데." 커뮤니티 담당자가 말했다. "CS에는 어렵다는 민원이 더 많아요. 환불 요청도 늘었고요." CS팀장이 받아쳤다. PD가 나를 봤다. "데이터는?" 준비해 간 엑셀 파일 열었다.전체 유저 클리어율: 42% → 38% (4%p 하락) 상위 10% 유저 클리어 시간: 평균 8분 → 6분 (25% 단축) 하위 50% 유저 클리어 시도 횟수: 3.2회 → 5.1회 (59% 증가) 던전 포기율: 15% → 23% (8%p 증가)"난이도 낮췄는데 클리어율이 떨어졌어요." 다들 멍했다. "어떻게 쉽게 만들었는데 클리어율이 떨어져요?" PD가 물었다. "상위 유저는 더 쉬워졌고, 하위 유저는 더 어려워졌어요."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점심 먹고 데이터 더 파봤다. 패치 전후 비교. 던전 보스 HP 20% 감소. 유저 데미지 15% 증가. 계산상으로는 분명히 쉬워졌다. 그런데. 상위 10% 유저 장비 점수: 평균 12,500 하위 50% 유저 장비 점수: 평균 6,800 패치 전 보스 체력: 500,000 상위 유저 DPS: 2,100 (클리어 시간 4분) 하위 유저 DPS: 850 (클리어 시간 10분) 패치 후 보스 체력: 400,000 상위 유저 DPS: 2,415 (클리어 시간 2.7분) ← 15% 증가 하위 유저 DPS: 977 (클리어 시간 6.8분) ← 15% 증가 문제는 보스 패턴이었다. 패치로 보스 체력이 줄면서 페이즈 전환이 빨라졌다. 상위 유저: 보스를 순삭해서 위험 패턴 보기 전에 끝. 하위 유저: 여전히 모든 패턴 다 봄. 근데 패턴 속도는 그대로. 결과. 상위 유저: "너무 쉬워서 재미없어요" 하위 유저: "여전히 못 깨겠어요" 엑셀 시트 보면서 한숨 나왔다. 숫자로는 쉬워졌는데, 체감은 양극화됐다.정답이 없는 싸움 오후 3시. PD한테 보고 들어갔다. "그래서 해결책이 뭐예요?" 세 가지 시뮬레이션 돌려봤다고 설명했다. 옵션 1: 보스 체력 원복, 유저 데미지만 유지예상 결과: 상위 유저 만족, 하위 유저 여전히 불만 전체 클리어율: 41% (1%p 증가) 커뮤니티 반응: "결국 롤백이네 ㅋㅋ"옵션 2: 난이도 선택 시스템 추가 (이지/노말/하드)개발 기간: 3주 보상 차등화 필요 예상 결과: 상위 유저는 하드만 하고, 하위 유저는 이지 보상 불만 커뮤니티 반응: "보상 차별 심하네"옵션 3: 보스 패턴 단순화 + 체력/데미지 조정개발 기간: 2주 아티스트 리소스 필요 예상 결과: 모두가 조금씩 불만족 커뮤니티 반응: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밸런스"PD가 물었다. "추천은?" "옵션 3이요. 완벽하진 않지만, 양쪽 다 '참을 만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어요." "완벽한 방법은 없어요?" "네. 없어요." 5초 침묵. "진행하세요." 커뮤니티는 여전히 싸운다 저녁 7시. 패치 노트 초안 올라왔다. "보스 패턴 일부 단순화 및 난이도 조정" 예상 반응 시뮬레이션 돌려봤다. (머릿속으로) 상위 유저: "왜 패턴까지 바꿔요? 그냥 원복하세요" 하위 유저: "이 정도로 되겠어요? 더 쉽게 해주세요" 중간층: "..." 댓글창은 전쟁터가 될 거다. 슬랙에 기획서 공유했다. "보스 패턴 수정안 - 3단계 페이즈를 2단계로 통합, 광역기 삭제, 돌진 패턴 예비 동작 0.3초 추가" 프로그래머한테 답장 왔다. "이거 2주 안에 되려나..." 아티스트한테도 왔다. "이펙트 다시 만들어야 해요?" 된다. 해야 하니까. 밸런싱은 정치다 밤 9시. 혼자 남아서 데이터 정리했다. 게임 밸런싱은 수학이 아니다. 정치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참을 만하게' 만드는 게 목표다. 상위 10%는 항상 더 어렵길 원한다. 하위 30%는 항상 더 쉽길 원한다. 중간 60%는 조용히 게임만 한다. 커뮤니티에서 목소리 큰 건 양 극단이다. 데이터에서 중요한 건 침묵하는 중간층이다. 지난 3년간 배운 것.완벽한 밸런스는 환상이다 모든 유저를 만족시킬 수 없다 데이터와 피드백, 둘 다 봐야 한다 빠른 대응이 완벽한 밸런스보다 낫다 유저는 '공정함'을 원한다. '쉬움'이 아니라.마지막이 제일 중요하다. "너무 어려워요" 뒤에 숨은 진짜 뜻. "내 노력으로 극복 가능하게 해주세요" "너무 쉬워요" 뒤에 숨은 진짜 뜻. "내 실력을 증명할 콘텐츠 주세요" 양쪽 다 맞다. 근데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방법은 없다. 내일은 또 다른 싸움 퇴근 전에 슬랙 마지막 확인. 개발팀: "패턴 수정 작업 내일부터 시작합니다" QA팀: "테스트 케이스 작성 중입니다" 커뮤니티팀: "유저 공지 문구 검토 부탁드려요" 내일도 싸울 준비 끝. 패치 나가면 또 난리 날 거다. "이게 해결책이에요?" "여전히 어려운데요" "이제 재미없어요" 그래도 데이터는 조금 나아질 거다. 클리어율 42%, 포기율 18%, 평균 시도 횟수 3.8회.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조금 덜 불만족할 거다. 그게 내 일이다. 모니터 껐다. 가방 챙겼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생각했다. 게임 밸런싱은 언제쯤 쉬워질까. 5년 차인데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10년 차가 돼도 모를 거다. 정답이 없는 문제는 풀 수가 없다. 그냥 '가장 나은 오답'을 찾을 뿐이다. 집 가는 지하철 안에서 커뮤니티 또 열었다. "다음 패치 때는 제발 제대로 해주세요" ...제대로가 뭔데. 결국 선택의 문제 새벽 1시. 집에서 경쟁사 게임 켰다. 던전 들어가 봤다. 죽었다. 다시 시작했다. 또 죽었다. 세 번째 시도에서 클리어했다. "아 이 정도면 적당한데." 그 순간 깨달았다. 나도 유저 입장에선 '내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걸. 기획자 입장에선 데이터 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결국 최종 결정은 '감'이다. 숫자는 현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떤 숫자가 '좋은 게임'인지는 못 알려준다. 클리어율 70%가 좋은 게임일까? 클리어율 30%가 좋은 게임일까? 둘 다 맞고, 둘 다 틀리다. 다크소울은 어렵지만 명작이다. 쿠키런은 쉽지만 명작이다. 결국 게임의 정체성 문제다. 우리 게임은 뭘 추구하는가. 도전인가, 접근성인가. 하드코어인가, 캐주얼인가. 그걸 정하면 난이도 방향이 나온다. 문제는 회사가 둘 다 원한다는 거다. "하드코어 유저도 잡고, 라이트 유저도 잡고" 불가능하다. 근데 해야 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 노트북 덮었다. 침대에 누웠다. 내일 회의에서 또 물어볼 거다. "그래서 정답이 뭐예요?" "정답은 없어요. 선택만 있을 뿐이에요." 그 말 하면 PD 표정 벌써 보인다. 잠들기 전에 마지막 생각. 게임 기획자가 제일 자주 듣는 말. "왜 이렇게 만들었어요?" 대답은 항상 같다. "그게 제일 나은 선택이었어요." 완벽하지 않다. 근데 그게 최선이었다. 양쪽의 진실 다음 날 아침. 출근해서 기획서 마무리했다. 난이도 조정 철학 우리는 모든 유저를 만족시킬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유저에게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다.하위 유저: 연습으로 극복 가능한 난이도 중간 유저: 적당한 도전과 성취감 상위 유저: 실력 차이를 증명할 콘텐츠세 그룹의 경험을 모두 존중하되, 게임의 정체성은 지킨다. 우리 게임은 '노력하면 보상받는' 게임이다.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이번 패치의 목표.전체 클리어율 45% 달성 포기율 20% 이하 유지 상위 유저 평균 클리어 시간 8분 (도전적 콘텐츠 유지) 하위 유저 3회 이내 클리어 가능 (학습 곡선 개선)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전보다 낫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PD한테 보냈다. 10분 뒤 답장. "진행하세요. 패치 후 데이터 모니터링 부탁합니다." 시작이다. 2주 후, 패치 당일 D-Day. 패치 오픈 오후 2시. 모니터 5개 켜놨다.실시간 플레이 데이터 커뮤니티 반응 CS 접수 현황 서버 로그 슬랙 단체방손에 땀났다. 2시 5분. 첫 클리어 나왔다. 상위 유저. 7분 42초. 2시 18분. 라이트 유저 첫 클리어. 시도 2회. 12분 35초. 좋은 신호다. 커뮤니티 새로고침. "오 이번엔 괜찮은데?" "패턴 단순해져서 좀 쉬워졌네요" "그래도 여전히 어렵긴 함 ㅋㅋ" 아직까지는 괜찮다. 2시 47분. 슬랙 알람. "클리어율 실시간 43.2%" 목표치 45%까지 1.8%p 차이. 오차범위 안이다. 3시 20분. 커뮤니티에 긴 글 올라왔다. "이번 패치 평가합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예전보단 낫네요. 하위 유저 입장에서 연습하면 깰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상위 유저 입장에선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챌린지 콘텐츠는 남아있고요. 기획팀 고생했습니다." 스크린샷 찍었다. 저장했다. 이런 글 귀하다. 5시. 오늘 데이터 1차 집계.전체 클리어율: 44.1% 포기율: 19.3% 평균 시도 횟수: 3.6회 상위 유저 평균 클리어 시간: 7분 52초 하위 유저 3회 이내 클리어: 68%목표 거의 달성. PD한테 보고 들어갔다. "수고했어요. 이번엔 잘 풀렸네요." "운이 좋았어요." "다음엔 또 어려울 거예요." "알아요." 끝나지 않는 전쟁 저녁 8시. 퇴근 준비하는데 슬랙 알람. "신규 던전 기획 회의 - 내일 오전 10시" 또 시작이다. 난이도 설정부터 싸울 거다. "이번엔 좀 어렵게" "아니 접근성 좋게" 그리고 나한테 물을 거다. "데이터상 적정 난이도가 어느 정도예요?" 답할 거다. "유저층에 따라 다릅니다." 그럼 또 물을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선택해야죠. 누구를 우선할 건지." 완벽한 대답은 아니다. 근데 정직한 대답이다. 가방 챙기면서 오늘 커뮤니티 마지막 확인. "쉽다" 30% "적당하다" 45% "어렵다" 25% 완벽한 분포는 아니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모두가 만족하는 게임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이 수긍하는 게임은 만들 수 있다. 그게 오늘 배운 거다. 엘리베이터 타면서 생각했다. 5년 차에 깨달은 진실. 게임 밸런싱은 싸움이 아니다. 협상이다. 유저와 협상하고, 팀과 협상하고, 데이터와 협상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협상. 나 자신과의 협상. "이 정도면 됐어." "완벽하진 않지만, 괜찮아." 완벽주의 내려놓는 게 제일 어렵다. 집 가는 지하철 안에서 또 생각했다. 10년 차 되면 이 고민 없어질까. 아니다. 더 심해질 거다. 경험이 쌓일수록 '정답 없음'이 더 확실해지니까. 그래도 괜찮다. 정답 없는 문제 푸는 게 내 일이니까.양쪽 다 맞는데 누구 편을 들까 고민하지 마. 둘 다 들어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 그게 시작이야.
- 16 Dec, 2025
유저 커뮤니티에서 '이건 의도적 설계인가?'라는 질문
이건 의도한 건가요? 월요일 아침, 커뮤니티 폭발 출근했다. 커피 뽑기 전에 디스코드부터 켰다. 유저 커뮤니티가 난리다. 주말 사이 300개 댓글. "이거 버그냐 너프냐", "의도한 설계 맞냐", "기획자 나와"가 반복된다. 문제는 전사 캐릭터다. 특정 스킬 두 개를 연계하면 쿨타임이 0.5초 줄어든다. 이게 3번 반복되면 1.5초 단축. DPS가 15% 뛴다. 유저들은 두 진영으로 갈렸다. "이거 컨셉이잖아. 숙련도 보상이라고" "버그 아니냐. 다른 캐릭은 안 되는데" 나는 안다. 둘 다 아니라는 걸. 이건 그냥... 생각 못 했다.의도한 설계의 영역 기획서를 열었다. 전사 스킬 파트. "스킬A: 쿨타임 8초, 대미지 150%" "스킬B: 쿨타임 12초, 버프 15초 지속" 연계 보너스는 적혀 있다. "같은 대상에게 5초 내 사용 시 크리티컬 확률 +10%". 이건 의도했다. 하지만 쿨타임 감소는 없다. 프로그래머한테 물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아, 스킬 버프가 쿨타임 회복 속도에 영향 주게 설정돼 있어요. 전투 템포 올리려고 작년에 넣었던 시스템인데." 작년. 내가 오기 전이다. 시스템은 의도했다. 전사 연계는 의도했다. 근데 둘이 만나면 이렇게 되는 건 몰랐다. 이게 게임이다. 레고처럼 쌓아올린 시스템이 예상 못 한 방식으로 얽힌다. 의도의 경계가 흐릿하다. "100% 의도"부터 "전혀 몰랐음"까지 스펙트럼이다. 버그와 피처의 경계 점심 먹으면서 QA팀이랑 얘기했다. "이거 버그 등록할까요?" "잠깐만." 버그의 정의가 뭔가. 의도하지 않은 동작? 그럼 이건 버그다. 근데 게임을 망가뜨리나? 아직 모른다. 데이터를 뽑았다. 전사 유저 1200명. 이 연계 쓰는 사람 83명. 7%. 대부분은 모른다. 저 83명의 승률. 일반 전사 대비 4% 높다. 유의미하지만 압도적은 아니다. "이거 고치면 난리 날 텐데." 시니어 기획자가 말했다. "유저들이 찾아낸 '고급 기술'처럼 됐잖아. 삭제하면 '재미 빼간다'고 할 거야." 맞다. 이미 공략 영상이 5개 올라왔다. "전사 고수들만 아는 연계 타이밍", "이거 모르면 뉴비". 조회수 합치면 15만. 버그를 고치는 게 맞나, 피처로 인정하는 게 맞나. 답이 없다.유저가 발견한 플레이 방식 오후 3시. 긴급 회의. PD가 물었다. "이거 냅둬도 돼?" "지금 당장은 밸런스 괜찮습니다. 근데..." "근데?" "다른 캐릭터들도 똑같이 작동해요. 아직 안 알려졌을 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마법사는 스킬 3개 연계하면 쿨타임 2.5초 줄어든다. 암살자는 백스탭 연계로 3초. 계산해보니 전사보다 더 강하다. "유저들이 아직 못 찾았네." "네. 전사가 제일 쉬워서 먼저 발견된 것뿐이에요." 선택지가 생겼다.시스템 자체를 삭제한다: 전사 유저 폭발, "재미 빼간다" 모든 캐릭터 밸런싱: 작업 2주, 다른 업무 밀림 냅둔다: 다른 캐릭터 조합 발견되면 메타 붕괴PD가 말했다. "이거 원래 왜 넣었어?" 전임 기획자 자료를 찾았다. "전투 템포 개선. 숙련도 보상 체계." 의도 자체는 좋았다. 근데 구현 과정에서 누구도 전체 연계를 시뮬레이션 안 했다. 우리는 개별 스킬을 본다. 유저는 조합을 본다. 커뮤니티 답변 작성 퇴근 전. 공식 답변을 써야 한다. 초안을 썼다. "안녕하세요. 해당 현상은 의도된 시스템입니다만, 일부 밸런스 조정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웠다. 이렇게 쓰면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의도한 게 아니니까. 다시 썼다. "해당 현상은 버그가 아닌 시스템 간 상호작용입니다. 다만 기획 단계에서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이것도 애매하다. 시니어가 어깨를 두드렸다. "솔직하게 써. 유저들 바보 아니야." 최종 답변. "전투 템포 시스템과 스킬 연계가 예상보다 강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의도한 시스템이지만 조합 효과는 미처 체크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데이터 분석 중이며, 급격한 변경보다는 전체 캐릭터 밸런스를 고려해 조정하겠습니다." 올렸다. 10분 만에 댓글 50개. "인정하네 ㅋㅋ" "솔직해서 좋다" "그래도 너프는 하지 마" "다른 캐릭도 강화해줘" 반응이 나쁘지 않다. 솔직함이 통했다.의도와 발견 사이 저녁 8시. 혼자 남아서 정리했다. 게임 기획에는 세 가지 레이어가 있다. 의도한 것: 기획서에 적힌 것. "스킬A는 DPS 증가용." 예상한 것: 기획서엔 없지만 머릿속에 있던 것. "이거랑 저거 같이 쓰면 좋겠지." 발견되는 것: 유저들이 찾아내는 것. "A+B+C를 0.3초 간격으로 누르면..." 문제는 세 번째다. 우리는 스킬 100개를 만든다. 유저는 10만 가지 조합을 시도한다. 우리가 다 테스트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나온다. "이거 의도한 거예요?" 대답은 복잡하다. 시스템은 의도했다. 조합은 몰랐다. 근데 결과가 나쁘지 않으면? 그건 "해피 액시던트"다. 마인크래프트의 크리퍼. 버그로 태어나서 아이콘이 됐다. 다크소울의 패링. 원래는 보조 기능인데 플레이의 핵심이 됐다. 게임은 설계자와 플레이어가 같이 만든다. 우리는 재료를 준다. 유저는 요리를 한다. 때로는 우리가 상상 못 한 요리가 나온다. 다음 패치 준비 결론이 났다. 시스템은 유지. 대신 모든 캐릭터에 "숙련 보너스"로 공식화한다. 수치는 조정. 전사 15% → 10%, 마법사 잠재력 활성화 12%, 암살자 8%. 기획서를 다시 썼다. 이번엔 조합까지 문서화했다. "2-스킬 연계 시 쿨타임 감소 0.3초" "3-스킬 연계 시 추가 0.5초" "최대 누적 1.5초" 이제 의도가 명확하다. 다음에 누가 물어보면 "네, 의도한 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버그를 피처로 승격시켰다. 패치노트 초안. "숙련 시스템 공식화: 연계 플레이 보상 체계 도입" "버그 수정"이 아니라 "신규 기능"이 됐다. 유저들은 너프라고 생각 안 할 것이다. 이게 게임 기획이다. 의도를 사후에 정의하기도 한다. 금요일 저녁, 패치 후 패치가 나갔다. 반응을 봤다. "오 이거 정식 기능이었네" "다른 캐릭터도 되는 거 신기하다" "전사 약간 너프됐는데 괜찮음" "암살자 이거 ㅅㅌㅊ" 성공이다. 시니어가 맥주를 건넸다. "잘했어. 위기를 기회로." "운 좋았죠." "아니야. 대응을 잘한 거야. 숨기거나 무시했으면 더 커졌어." 맞다. 이런 상황은 또 온다. 유저는 항상 우리보다 많다. 100명 기획자보다 100만 명 유저가 더 많이 발견한다. "이거 의도한 거예요?"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때로는 "지금은 아니지만, 이제 의도입니다"가 답이다. 게임은 유기체다. 살아 움직이고 변한다. 기획자는 정원사다. 예상 못 한 방향으로 자란 나무를 다듬고, 때로는 그대로 둔다. 중요한 건 정직함이다. "몰랐습니다, 근데 괜찮습니다"가 "의도했습니다"보다 낫다. 퇴근했다. 이번 주도 무사히. 월요일에는 또 다른 "의도한 거냐" 질문이 올라올 것이다.의도는 고정이 아니다. 발견과 협상한다.
- 15 Dec, 2025
Confluence에 썼던 기획서를 다시 읽으면서
Confluence에 썼던 기획서를 다시 읽으면서 6개월 전의 나 오늘 새 콘텐츠 기획서를 쓰다가 레퍼런스를 찾았다. Confluence를 뒤지니까 6개월 전 기획서가 나왔다. "무한의 탑 시스템 기획서 v1.0". 그때 처음 입사하고 메인으로 맡았던 프로젝트다. 클릭했다. 읽기 시작했다. 5분 만에 얼굴이 뜨거워졌다.뭘 이렇게 썼지 "플레이어는 도전 의식을 느낄 것이다." 근거가 없다. 왜 느끼는데. 무슨 데이터로. "난이도 곡선은 적절하게 설계한다." 적절의 기준이 뭔데. 숫자는 어디 있고. "보상은 플레이어의 기대치를 충족시킨다." 기대치를 어떻게 측정했는데. 설문이라도 했나. 전체가 이런 식이다. 추상적인 단어로 가득하다. "재미있게", "적절하게", "만족스럽게". 구체적인 건 하나도 없다. 표도 엉망이다. 층수별 난이도 테이블인데 1층부터 10층까지만 있다. 11층부터는 "추후 설계"라고 써놨다. 그럼 100층짜리 탑은 어떻게 만들 생각이었는지. 보상 밸런스는 더하다. "골드 1000~5000 지급". 범위가 5배 차이다. 기준이 뭔데. 그냥 감으로 쓴 거다. 당시 개발팀이 이걸 보고 뭐라고 했을지 상상이 간다. "이거 구현하려면 수치가 필요한데요." "아, 네. 제가 추가로 드릴게요." 결국 개발 중간에 기획서를 세 번 갈아엎었다. 그래도 방향은 맞았다 허술한 건 맞다. 하지만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기획 의도를 다시 읽었다. "플레이어가 매일 접속할 이유를 만든다. 단발성이 아닌 지속 콘텐츠로 설계한다. 난이도는 점진적으로 상승하되, 벽이 생기지 않게 한다." 지금 봐도 맞는 말이다. 실제로 무한의 탑은 게임에서 가장 플레이율이 높은 콘텐츠가 됐다. DAU의 82%가 매일 들어간다. 코어 루프도 괜찮았다. "입장 → 전투 → 보상 획득 → 성장 → 다음 층 도전" 이 구조 자체는 출시 후에도 안 바뀌었다. 지금도 똑같다. 문제는 디테일이었다. 숫자를 어떻게 잡을지, 보상을 어떻게 분배할지, 난이도를 어떻게 조절할지. 그게 다 빠져 있었다. 그래도 큰 그림은 맞았다. 그게 다행이다. 만약 방향 자체가 틀렸으면 지금쯤 폐기됐을 거다.숫자를 채워넣는 과정 기획서를 고치기 시작한 건 개발 2주 차였다. 프로그래머가 물었다. "1층 몬스터 체력이 얼마예요?" "아... 잠깐만요." 엑셀을 켰다. 플레이어 평균 공격력을 기준으로 역산했다. 10레벨 기준 공격력 150. 스킬 평균 배율 200%. 크리티컬 확률 15%. 계산기를 두드렸다. "3000입니다." "100층은요?" "...지금 계산할게요." 그날 밤 11시까지 남아서 엑셀 작업했다. 층수별 난이도 곡선을 그렸다. 지수 함수로 증가하되, 10층마다 보스를 넣어서 리듬을 만들었다. 보상 테이블도 다시 짰다. 골드, 경험치, 아이템 드랍률. 전부 플레이어 성장 속도에 맞춰서 계산했다. 3일 동안 숫자만 만졌다. 함수 100개 넘게 썼다. VLOOKUP, IF, INDEX MATCH, 난수 시뮬레이션. 결과물은 10페이지짜리 엑셀 파일이었다. 기획서에 표를 전부 붙였다. Confluence가 느려질 정도로. 개발팀에 공유했다. "이제 구현 가능합니다." 그때부터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테스트와 수정 빌드가 나왔다. QA가 시작됐다. 2일 만에 문제가 터졌다. "30층부터 난이도가 너무 높아요. 진행이 안 됩니다." 데이터를 확인했다. 클리어율이 30층에서 12%로 떨어졌다. 29층까지는 70% 이상이었는데. 문제를 찾았다. 30층 보스 체력이 너무 높았다. 공식에서 계수를 잘못 입력했다. 1.5를 넣어야 하는데 2.5를 넣었다. 수정했다. 다시 테스트했다. 이번엔 50층에서 문제가 생겼다. "보상이 너무 짜요. 노력 대비 효율이 안 나옵니다." 보상 테이블을 다시 봤다. 50층 보상이 40층이랑 거의 차이가 없었다. 증가율을 잘못 계산했다. 또 수정했다. 이런 식으로 3주 동안 계속 고쳤다. 숫자를 바꾸고, 테스트하고, 피드백 받고, 또 바꾸고. 버전이 v3.7까지 갔다. 출시 전날 밤 마지막 점검을 했다. 1층부터 100층까지 직접 플레이했다. 6시간 걸렸다. 밸런스는 맞았다. 난이도 곡선이 자연스러웠다. 보상도 적절했다. 새벽 4시에 퇴근했다.출시 후 3개월 런칭했다. 반응은 좋았다. "무한의 탑 개꿀잼" "매일 할 거 생겨서 좋음" "보상이 쏠쏠함" 유저 리텐션이 올라갔다. 1일 차 90%, 3일 차 75%, 7일 차 68%. 목표치를 넘었다. PD가 만족했다. "이거 잘 만들었어요. 다음 콘텐츠도 부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계속 나왔다. 출시 2주 차. 상위 유저들이 100층을 다 깼다. "이제 뭐 해요? 콘텐츠 끝났는데." 급하게 150층까지 확장했다. 기존 공식을 연장해서 숫자를 뽑았다. 2일 만에 기획서 쓰고 개발 들어갔다. 출시 1개월 차. 신규 유저가 30층에서 막혔다. "초반 난이도 너무 높음" "과금 유도하냐" 데이터를 봤다. 신규 유저 30층 클리어율 18%. 기존 유저는 85%인데. 문제를 찾았다. 신규 유저는 장비가 없다. 기존 유저 기준으로 밸런스를 잡았던 게 문제였다. 1~50층 난이도를 전부 하향했다. 긴급 패치로 나갔다. 출시 3개월 차. 보상 인플레이션이 시작됐다. 무한의 탑 보상이 너무 좋아서 다른 콘텐츠를 안 한다는 피드백이 왔다. 전체 밸런스를 다시 봤다. 무한의 탑만 너프 할 수는 없었다. 다른 콘텐츠 보상을 올려야 했다. 경제 밸런스 회의가 3번 열렸다. 결국 전체 재화 수급을 20% 상향 조정했다. 그때 깨달았다. 하나의 콘텐츠는 절대 독립적이지 않다. 전부 연결돼 있다. 지금 다시 쓴다면 오늘 읽은 6개월 전 기획서. 지금 다시 쓴다면 완전히 다르게 쓸 것 같다. 먼저 경쟁사 분석부터 한다. 비슷한 시스템이 있는 게임 5개를 뜯어본다. 난이도 곡선, 보상 구조, 플레이 타임을 전부 분석한다. 그다음 유저 페르소나를 정의한다. 신규, 중수, 고수로 나눈다. 각각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 정리한다. 숫자는 처음부터 다 채워 넣는다. 1층부터 150층까지. 난이도, 보상, 소요 시간. 엑셀 시뮬레이션을 100번 돌린다. 다른 콘텐츠와의 균형도 처음부터 고려한다. 무한의 탑이 전체 재화 수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정한다. 30%로 잡는다. 나머지 콘텐츠도 함께 조정한다. 리스크도 먼저 생각한다. 상위 유저가 너무 빨리 깨면? 신규 유저가 막히면? 보상 밸런스가 무너지면? 각 상황별 대응 방안을 미리 써놓는다. 그렇게 쓰면 기획서가 30페이지는 넘을 것 같다. 6개월 전에는 10페이지도 안 썼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 경험이 없었다. 뭘 고려해야 하는지 몰랐다. 숫자 감각도 없었다. 지금은 안다. 뭘 놓쳤는지, 뭘 더 봐야 하는지. 그래서 다음 기획서는 더 잘 쓸 수 있다. 허술해도 괜찮다 6개월 전 기획서는 허술하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었다. 그 기획서가 없었으면 무한의 탑도 없었다. 지금 DAU 82%가 플레이하는 콘텐츠도 없었다. 완벽한 기획서는 없다. 처음부터 모든 걸 예측할 수 없다. 유저 반응도, 밸런스 문제도, 다른 시스템과의 충돌도. 중요한 건 방향이다. 코어가 맞으면 나머지는 고칠 수 있다. 숫자는 계속 바뀐다. 밸런스는 계속 조정한다. 런칭 후에도, 3개월 후에도, 6개월 후에도. 기획서는 완성되는 게 아니다. 계속 업데이트된다. v1.0은 시작일 뿐이다. 지금 무한의 탑 기획서는 v8.3이다. 앞으로 v20까지 갈 수도 있다. 그게 게임 기획이다. Confluence 창을 닫았다. 새 기획서를 열었다. 이번엔 더 잘 쓸 수 있다. 6개월 전보다.허술한 기획서도 시작은 된다. 고치면 되니까.
- 13 Dec, 2025
신입 기획자가 '왜 이 수치에요?'라고 물을 때
오늘 신입이 물었다 "선배님, 이 공격력 수치는 왜 127이에요?" 엑셀 시트를 보고 있던 내가 손을 멈췄다. 127. 맞다. 내가 넣은 숫자다. 3일 전에. "음... 그게..." 대답이 안 나온다. 5년 차가 신입한테 수치 하나 설명 못하는 게 창피했다. 하지만 진짜로 설명하기 어렵다. 신입 기획자 이준호. 입사 3개월. 성실하다. 질문도 많이 한다. 근데 가끔 이런 질문이 제일 곤란하다. "시뮬 돌려보면서 조정한 거야." "네, 근데 왜 127인가요? 120도 아니고 130도 아니고요." 질문이 정확하다. 나도 궁금하다. 왜 127이었을까.밸런스는 과학이 아니다 게임 기획 5년 하면서 깨달은 거. 밸런싱은 과학이 아니라 요리다. 레시피는 있다. DPS 공식, 성장 곡선 그래프, 유저 플레이타임 분석. 다 있다. 근데 그걸로 게임이 재밌어지지 않는다. 소금 5g이랑 5.3g의 차이. 요리사는 안다. 혀로. 근데 설명은 못한다. 공격력 127. 시뮬 돌렸을 때 DPS가 142.7 나왔다. 목표는 140~145. 범위 안이다. 근데 120으로 하면 131.5. 애매하다. 130으로 하면 149.2. 넘친다. 그래서 127. 142.7. 딱이다. 근데 이걸 신입한테 어떻게 설명하냐. "DPS가 목표 범위 안에 들어가서요." "아, 그럼 128은요?" 128? 시뮬 안 돌려봤다. 돌려보면 비슷할 거다. 0.5 차이 날까. "...큰 차이는 없을 거야." "그럼 왜 127이에요?" 질문이 반복된다. 답은 없다. 진짜 답은 이거다. '그냥 127이 눈에 들어왔다.' 근데 이렇게 말하면 신입이 뭘 배우냐.데이터는 힌트일 뿐 회사에서 밸런싱 교육할 때 가르치는 거.유저 데이터 수집 목표 수치 설정 공식 대입 시뮬레이션 검증 테스트 플레이 반복맞다. 다 맞다. 근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실제로는 이렇다.유저 데이터 보는데 노이즈 많음 목표 수치는 PD 기분에 따라 바뀜 공식 대입했더니 게임 재미없음 시뮬은 완벽한데 실제론 이상함 테스트 플레이 10번 해도 모름데이터는 거짓말 안 한다. 근데 게임은 숫자가 아니다. 유저의 '체감'이다. 크리티컬 확률 5%. 데이터상으론 적당하다. 100번 치면 5번 터진다. 근데 유저는 "안 터진다"고 난리다. 20번 연속 안 터지면 확률이 고장 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부 로직을 바꾼다. 연속 10번 안 터지면 다음 타격은 무조건 크리티컬. 확률은 5% 그대로지만 체감은 다르다. 이걸 신입한테 설명했다. "그럼 선배님, 그건 거짓말 아니에요?" 거짓말? 아니다. 재미를 위한 장치다. 근데 설명하니까 거짓말 같긴 하다. "유저 경험을 고려한 거지." "네... 근데 확률 표기는 5%잖아요." 맞다. 5%다. 정확히는 5% + (연속 실패 보정). 근데 이걸 UI에 다 쓸 순 없다. 이준호가 뭔가 찝찝한 표정이었다. 나도 그랬다. 2년 차 때. 직관은 쌓이는 거다 점심 먹으면서 이준호가 또 물었다. "선배님은 어떻게 수치를 정해요? 공식 외에." 김치찌개를 먹다가 생각했다. 어떻게 정하지? "...게임 많이 해봐." "네? 그게 답이에요?" 답이다. 근데 답 같지 않다. RPG 밸런싱할 때 내가 참고하는 게임만 20개 넘는다. 디아블로, 로스트아크, 원신, 몬헌, 다크소울, 메이플... 다 해봤다. 무기 공격력, 레벨업 곡선, 보스 체력, 다 뜯어봤다. 그러다 보면 안다. '아, 이 정도면 딱이다' 같은 게 생긴다. 초반 무기 공격력 10~15. RPG 공식이다. 왜? 다들 그렇게 한다. 5면 너무 약하고, 20이면 너무 세다. 체감상. 레벨 10까지는 빠르게. 20까지는 보통. 30부터는 느리게. 왜? 유저가 그걸 원한다. 초반은 성장 체감, 중반은 여유, 후반은 도전. 이게 공식에 없다. 데이터에도 없다. 그냥 아는 거다. 게임 많이 하면. "신입 때는 이해 안 될 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네." 이준호 표정이 묘하다. 이해는 안 되지만 믿어보겠다는 얼굴. 5년 전 나도 저랬다. 선배가 "그냥 해봐, 알게 돼" 이러면 답답했다. 지금은 내가 그 선배다.설명할 수 없는 것들 기획서 쓸 때 제일 힘든 부분. '밸런스 근거' 항목. 개발팀은 근거를 원한다. 당연하다. 숫자 하나하나가 작업이니까. "공격력을 127로 설정한 이유는 DPS 목표치인 140을 충족하면서도 후반 밸런스 붕괴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럴듯하다. 근데 진짜 이유는 아니다. 진짜는 이거다. "127이 괜찮아 보였다." 근데 이렇게 쓸 순 없다. 밸런싱 회의 때마다 이런다. PD: "이 보스 체력, 너무 많지 않아?" 나: "시뮬상으론 3분 컷입니다." PD: "음... 그래도 많아 보여." 나: "...10% 줄여볼까요?" PD: "그래, 그게 나을 것 같아." 줄인다. 시뮬 다시 돌린다. 2분 40초. 별 차이 없다. 근데 '느낌'은 다르다. 이게 뭐냐. 과학이냐. 아니다. 감이다. 신입한테 이걸 어떻게 가르치냐. 방법이 없다. "이준호, 이 스테이지 밸런스 한번 잡아봐." "네! 어떤 기준으로요?" "음... 적당히." "...?" 적당히. 게임 기획자의 가장 많이 쓰는 단어. 그리고 가장 애매한 단어. 적당한 난이도. 적당한 보상. 적당한 플레이타임. 다 적당하다. 근데 적당함의 기준이 뭐냐. 없다. 그냥 해보면 안다. 숫자 너머의 게임 3년 차 때 큰 사고 쳤다. 신규 던전 밸런싱. 완벽했다. 시뮬도 돌렸다. 데이터도 맞췄다. 타 게임 벤치마킹도 했다. QA도 통과했다. 런칭했다. 유저 반응: "개노잼." 뭐가 문제인가. 숫자는 다 맞는데. DPS도 맞고, 클리어타임도 맞고, 보상도 적당하고. 근데 재미가 없다. 이유를 찾는 데 일주일 걸렸다. 답은 간단했다. '긴장감'이 없었다. 보스 패턴이 너무 예측 가능했다. 회피 타이밍이 너무 뻔했다. 숫자는 맞는데 플레이가 지루했다. 급하게 패턴 수정했다. 랜덤 요소 추가하고, 페이크 모션 넣고. 숫자는 안 건드렸다. 결과: "이제 할 만하네." 밸런싱이 뭔가. 숫자 맞추기가 아니다. 경험 디자인이다. 이준호한테 이 얘기 했다. "그럼 선배님, 숫자는 왜 조정해요?" "...숫자는 도구야. 경험을 만드는." "경험이요?" "응. 유저가 느끼는 거." 설명이 안 된다. 내 머릿속에선 명확한데 말로 하면 추상적이다. 게임은 숫자다. 근데 숫자가 전부는 아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하냐. 전수할 수 없는 것 신입 교육 담당 맡은 지 6개월. 이준호는 성장했다. 엑셀 다루는 건 나보다 빠르다. 공식도 잘 짠다. 근데 아직 뭔가 부족하다. 숫자는 맞는데 게임이 안 맞다. 기획서는 완벽한데 플레이하면 이상하다. "이준호, 이 밸런스 시트 다시 봐." "어디가 틀렸어요?" "틀린 건 없어. 근데 이상해." "...?" 이상함. 구체적으로 설명 못 한다. 그냥 이상하다. 레벨업 곡선 그래프. 수학적으로 완벽하다. 근데 플레이하면 레벨 15 구간이 지루하다. 왜? 모른다. 그냥 그렇다. 보스 체력. 계산상 3분 컷. 근데 체감상 5분 같다. 왜? 패턴이 루즈해서. 숫자 문제가 아니다. 보상 테이블. 기댓값 완벽하다. 근데 유저는 "보상 짜다"고 한다. 왜? 체감 가치가 낮아서. 숫자로 안 보이는 부분. 이준호한테 이걸 어떻게 가르치냐. "일단 많이 해봐. 시뮬만 믿지 말고." "네..." 답답한 대답. 나도 답답하다.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직관은 전수가 안 된다. 경험으로 쌓는 거다. 게임 1000시간 하면서, 밸런스 조정 100번 하면서, 유저 피드백 욕먹으면서. 선배가 나한테 그랬다. "3년 차 되면 알아." 맞았다. 3년 차에 알았다. 근데 어떻게 아는지는 모른다. 127의 의미 오늘 퇴근 전에 이준호가 다시 물었다. "선배님, 그래서 127은 왜 127이에요?" 아직도 궁금한가 보다. 나도 궁금하다. "...재밌어서." "네?" "127이 재밌어 보였어. 120은 뻔하고, 130은 너무 크고. 127은 좀 특이하잖아." "그게 이유예요?" "응. 그게 이유야." 거짓말은 아니다. 진짜로 127이 눈에 들어왔다. 왜? 모른다. 그냥 그랬다. 이준호 표정이 복잡하다. 이해 안 된다는 얼굴. "신입 때는 답답할 거야. 나도 그랬어." "...그럼 언제 알 수 있어요?" "글쎄. 너도 127 찾을 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맞다. 나도 2년 차 때 몰랐다. 밸런싱은 과학이면서 예술이다. 데이터면서 감각이다. 공식이면서 직관이다. 127은 그냥 127이다. 근거도 있고 없고.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중요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게임이 재밌으면 그게 답이다. 127이든 128이든. 근데 이걸 신입한테 어떻게 설명하냐. 방법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말한다. "일단 게임 많이 해봐." 그리고 내일도 127 같은 숫자를 찾는다. 이유 없이. 근거 없이. 그냥 괜찮아 보여서. 5년 차의 직관. 전수 불가. 경험으로만 쌓이는 것. 이준호도 언제가 알게 될 거다. 자기만의 127을.신입이 물을 때마다 5년 차도 답이 없다.
- 05 Dec, 2025
프로그래머와의 첫 구현 회의: 기획의도는 죽는다
프로그래머와의 첫 구현 회의: 기획의도는 죽는다 오전 10시, 희망에 찬 기획서 회의실 예약했다. 10시 30분. 프로그래머 두 명, 나. 어젯밤까지 쓴 기획서 준비됐다. "이번 스킬 시스템은 완벽해." 3주 동안 경쟁작 분석했다. 밸런스 시뮬레이션 100번 돌렸다. 유저 피드백 200개 정리했다. 엑셀 시트 15개. 기획의도는 명확했다. "스킬 조합의 재미." 최대 5개 스킬 동시 발동. 각 스킬마다 시너지 효과. 조합 가능 수 126가지. 프린트한 기획서 두께 1cm. 이거면 된다고 생각했다.10시 31분, 첫 질문 "형, 이거 실시간이에요?" 프로그래머 민수. 경력 7년차, 서버 개발. 항상 핵심을 찌른다. "네, 스킬 발동하면 즉시 판정이요." "동시 발동이 5개요?" "네." "그럼 서버에서 매번 조합 계산해야 되는데." 엑셀 시트 넘겼다. 조합별 시너지 테이블. 126가지 경우의 수. "이거 다 DB 조회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네요." 민수가 계산기 두드렸다. 동시접속 3000명 가정. 초당 스킬 사용 평균 5회. DB 조회 3000 x 5 x 5 = 75,000 쿼리. "서버 죽습니다." 회의 시작 1분 만에. 기획의도 1차 사망. 10시 45분, 대안 찾기 "그럼 캐싱하면 되지 않나요?" 클라이언트 개발 지훈이가 말했다. 경력 3년, 유니티 전문. "조합 테이블 전부 클라에 들고 있으면요." 민수가 고개 저었다. "126가지 조합인데, 스킬이 50개면 몇 개죠?" "계산 안 해봐도... 많죠." 지훈이가 덧붙였다. "그리고 밸런스 패치 때마다 클라 업데이트요?" "앱스토어 심사 2주 기다리고요." 아. 생각 못 했다. "실시간이 아니면 안 돼요?" 민수가 물었다. 기획의도는 '즉각 피드백'이었다. 스킬 누르면 바로 효과. 타격감, 폭발감, 쾌감. "...안 되는데." "그럼 조합 수 줄이셔야 돼요." 126가지에서 얼마로? "20개 정도면." 1/6로 줄이라고.11시 10분, 성능 이슈 20개로 줄였다. 스킬 조합 20가지.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형, 이펙트는요?" 지훈이가 물었다. "스킬마다 고유 이펙트 있고, 조합 시너지 이펙트 추가로요." 기획서 7페이지 펼쳤다. 조합별 이펙트 연출안. 화려하게 터지는 거. "이펙트 20개 동시 재생이요?" "응, 5개 스킬 + 시너지 이펙트들." 지훈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사양 폰 죽어요." "요즘 폰 성능 좋잖아요." "타겟 유저 50%는 3년 전 폰 써요." 아. 또 생각 못 했다. "파티클 수 줄이면 되지 않아요?" "줄이면 이펙트가 화려하지 않은데요." 기획의도는 '화려한 연출'이었다. 유튜브 숏츠에 올라갈 만한 거. 바이럴 날 만한 거. "프레임 30 아래로 떨어지면 유저들 난리 나요." 지훈이가 유저 리뷰 캡처 보여줬다. "최적화 똥겜" "갤럭시 S9에서 렉 걸림" "환불해주세요" 기획의도 2차 사망. 11시 40분, API 한계 "서버 부하 줄이려면 턴제로 가는 게." 민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턴제요?" "네, 실시간 말고 턴 기반 전투." 기획서 1페이지. "실시간 액션 RPG" "그럼 장르가 바뀌잖아요." "장르 안 바뀌고는 이 기획 못 살려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민수가 계속 설명했다. 현재 서버 아키텍처는 턴제 최적화. 실시간 동기화 구조 없음. 새로 만들려면 2달. 인력 3명 투입. "PD님이 허락 안 하실 텐데요." 일정은 이미 타이트했다. 런칭 4개월 남았다. 새 시스템 개발 시간 없다. "그럼 스킬 발동을 순차적으로 하면요?" 내가 물었다. "그럼 '동시 발동'이 아니잖아요." 기획서 3페이지. "최대 5개 스킬 동시 발동" "순차 발동이랑 동시 발동이랑 재미가 다른데." "형, 재미는 저도 알아요. 근데 못 만들어요." 민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API 한계예요. 지금 구조로는 안 돼요."12시 10분, 타협안 회의 1시간 40분. 점심시간 넘어갔다. 화이트보드 가득 적힌 제약사항들.서버: 동시 처리 불가 클라: 이펙트 최적화 필요 일정: 2달 이상 작업 불가 구조: 턴제 기반"그럼 이렇게 하면 어때요." 내가 화이트보드에 썼다.스킬 조합 10가지로 축소 동시 발동 → 0.5초 간격 순차 발동 이펙트 단순화, 저사양 모드 추가 조합 테이블 클라 캐싱"이 정도면 할 만해요?" 민수랑 지훈이가 고개 끄덕였다. "개발 기간은요?" "3주요." "테스트 포함해서요?" "...4주요." 일정표 다시 짰다. 다른 기능들 미루고. 이거 먼저 넣고. "OK, 그럼 이걸로 PD님한테." 회의 끝. 기획서는 반토막 났다. 15페이지에서 7페이지로. 126가지 조합에서 10가지로. 동시 발동에서 순차 발동으로. 처음 의도한 거랑 완전히 달라졌다. 오후 2시, 기획서 다시 쓰기 자리 돌아와서 엑셀 켰다. 조합 테이블 다시 짰다. 126가지에서 10가지 추리기. 가장 재밌을 거 같은 거. 가장 밸런스 잡힌 거. 3주 작업이 3시간으로. 기획의도는 뭐였나. "스킬 조합의 재미" 10가지도 재밌을까? 126가지만큼? 모르겠다. 만들어봐야 안다. 컨플루언스에 기획서 업데이트. 제목 수정. "스킬 동시 발동 시스템 v2.0 (구현 가능 버전)" 괄호 안 문구가 슬프다. 오후 4시, PD 보고 PD님 자리 찾아갔다. "시스템 기획 수정본이요." "많이 바뀌었네?" "네, 구현 검토하면서요." PD님이 기획서 훑었다. 10초 만에 핵심 파악. "조합 수 왜 줄었어?" "서버 부하 때문에요." "10개로 재미 나올까?" "...최선을 다해볼게요." PD님이 한숨 쉬었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거랑 만들 수 있는 거는 다르니까." "네." "유저들이 재밌어하면 그게 맞는 거야." "알겠습니다." 보고 끝. 돌아 나왔다. 복도에서 민수 마주쳤다. "형, PD님 뭐래요?" "오케이래." "다행이네. 근데 형 표정이 왜 그래요." "아니,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오후 6시, 혼자 생각 퇴근 전에 경쟁작 켰다. '킹덤 오브 레전드' 스킬 시스템 봤다. 조합 가능한 게 50가지 넘어 보였다. 실시간으로 터진다. 이펙트 화려하다. 프레임 드랍 없다. "얘네는 어떻게 한 거지?" 개발 기간 2년. 개발비 50억. 개발팀 80명. 우리는 4개월에 15명. 답 나왔다. 창 닫았다. 기획자의 숙명이다. 머릿속 완벽한 기획. 현실에선 반의반. "API 한계" "성능 이슈" "일정 부족" "인력 부족" 이 단어들 앞에서. 기획의도는 맥없이 죽는다. 그래도 만들어야 한다. 10가지 조합이라도. 순차 발동이라도. 단순한 이펙트라도. 유저가 재밌다고 하면. 그게 정답이다. 오후 8시, 퇴근길 회사 나섰다. 편의점 들렀다. 에너지 드링크 샀다. 집 가는 지하철. 핸드폰으로 엑셀 열었다. 10가지 조합 밸런스 체크. 옆자리 사람이 쳐다봤다. "저 사람 왜 지하철에서 엑셀을." 퇴근길에도 일한다. 기획자니까. 다음 정거장 도착 안내방송. 핸드폰 꺼졌다. 배터리 없다. 창밖 봤다. 어둡다. 내일 또 회의 있다. "UI 구현 검토 회의" 또 죽겠지. 기획의도.프로그래머가 "안 돼요"라고 하면, 기획자는 기획서를 다시 쓴다. 이게 현실이다.
- 04 Dec, 2025
유저 데이터를 보면: 계획은 이렇게 무너진다
유저 데이터를 보면: 계획은 이렇게 무너진다 월요일 아침, 데이터 앞에서 출근했다. 커피부터 뽑았다. 엑셀 파일 열었다. 지난주 금요일 업데이트 이후 유저 데이터다. 신규 스킬 3개 추가했다. 10레벨부터 사용 가능. 밸런스 완벽하게 잡았다고 생각했다. 스킬 사용률 컬럼을 봤다. 7%. 다시 봤다. 7%가 맞다. "뭐지?" 3개월 동안 기획했다. 수치 시뮬레이션 50번 넘게 돌렸다. 테스트 플레이도 했다. QA팀도 재밌다고 했다. 유저들이 환호할 줄 알았다. 7%다. 93%의 유저는 스킬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기획자의 착각 회의실로 갔다. PD한테 물었다. "스킬 사용률 보셨어요?" "봤어. 왜 이래?" "제가 그걸 알면 여기 안 왔죠." 데이터를 펼쳤다. 유저 레벨별 스킬 사용률이다.레벨 10~15: 3% 레벨 16~20: 8% 레벨 21~25: 12% 레벨 26~30: 18%레벨 30 넘어가면 좀 쓴다. 그것도 20%가 안 된다. "스킬 강하잖아요. DPS 계산해보면 기본 공격보다 30% 높은데." "그럼 유저가 멍청한 건가?" 아니다. 유저는 멍청하지 않다. 내가 멍청한 거다. 기획자는 착각한다. 내가 만든 시스템을 유저가 당연히 이해할 거라고. 튜토리얼 한 번 보면 다 알 거라고. 수치가 좋으면 당연히 쓸 거라고. 틀렸다. 유저는 게임을 플레이한다. 시스템을 공부하지 않는다. 숫자를 계산하지 않는다. 그냥 느낌으로 누른다. 익숙한 걸 누른다. 새로운 건 귀찮다. 나는 3개월 동안 스킬 밸런스를 고민했다. 유저는 3초 동안 '이거 뭐지?' 하고 넘어간다. 격차가 이렇게 크다. 데이터를 뜯어보니 점심 먹고 돌아왔다. 데이터를 더 파봤다. 로그를 봤다. 유저 플레이 패턴이다. 프레임 단위로 찍혀 있다. 10레벨 유저 100명을 무작위로 뽑았다. 패턴이 보였다. 대부분 유저는 스킬 창을 안 연다. 연다고 해도 1초 보고 닫는다. 스킬을 등록하는 유저는 20%다. 등록해도 안 쓴다. 퀵슬롯에 등록하는 유저는 5%다. "아." 문제를 찾았다. 스킬이 약해서가 아니다. 유저가 스킬을 발견하지 못한다. UI를 봤다. 스킬 창은 메뉴의 세 번째 탭이다. 캐릭터 정보 탭 안에 숨어 있다. 아이콘이 작다. 신규 알림도 없다. 튜토리얼을 봤다. 스킬 설명은 15단계 중 11번째다. 텍스트로 설명한다. "레벨 10이 되면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게 끝이다. 유저는 튜토리얼을 스킵한다. 11단계까지 안 본다. 봐도 기억 안 한다. 나는 유저가 게임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플레이할 거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예상 vs 현실 기획서를 꺼냈다. 3개월 전에 쓴 거다. "스킬 시스템 기획서 v2.3" 목표 항목을 봤다.레벨 10 유저의 60%가 스킬 사용 스킬 사용 시 전투 만족도 상승 과금 유저의 스킬 강화 유도예상이었다. 현실은 이렇다.레벨 10 유저의 3%가 스킬 사용 대부분 유저는 스킬이 있는지 모름 과금은 커녕 존재 자체를 인식 못함기획 의도를 읽었다. "유저들이 레벨 10이 되면 전투가 지루해집니다. 스킬 시스템으로 전투에 깊이를 더하고 성장 동기를 부여합니다." 맞는 말이다. 의도는 좋았다. 실행이 망했다. 나는 유저가 이렇게 플레이할 거라고 상상했다.레벨 10 달성 스킬 해금 알림 확인 스킬 창 열어서 확인 강한 스킬 선택해서 등록 전투에서 사용 "오 재밌네" 하고 계속 사용실제로는 이렇다.레벨 10 달성 다음 퀘스트 진행 끝스킬? 본 적도 없다. 나는 게임을 100시간 플레이한 사람의 시점으로 기획했다. 유저는 1시간 플레이한 사람의 시점으로 게임한다. 간극이 이렇게 크다. 왜 안 쓰는가 데이터를 더 파봤다. 스킬을 실제로 사용한 7%의 유저다. 얘네는 왜 썼을까. 로그를 분석했다.길드 가입자: 스킬 사용률 35% 커뮤니티 활동 유저: 스킬 사용률 28% 친구 3명 이상: 스킬 사용률 22% 혼자 플레이: 스킬 사용률 1%보인다. 스킬을 쓰는 유저는 누군가한테 들었다. "야 레벨 10 되면 스킬 써봐. 개쩐다." 게임이 알려준 게 아니다. 다른 유저가 알려줬다. 나는 게임 내 시스템으로 유저를 교육할 수 있다고 믿었다. 틀렸다. 유저는 게임을 믿지 않는다. 다른 유저를 믿는다. 튜토리얼은 스킵한다. 친구 말은 듣는다. 그럼 93%의 유저는? 친구가 없거나 커뮤니티 안 한다. 혼자 조용히 게임한다. 스킬이 있는지도 모른다. 더 파봤다. 스킬을 발견했지만 안 쓰는 유저들이다. 20%쯤 된다. 이유를 찾아봤다. 로그를 봤다. 스킬 창을 열었다. 5초 봤다. 닫았다. 안 썼다. 왜? 스킬 설명을 봤다. "적에게 150%의 피해를 주고 3초간 기절시킵니다. 쿨타임 12초. 마나 소모 45." 나는 이게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유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150%가 뭔데? 지금보다 강한 건가? 기절이 필요한가? 쿨타임 12초면 긴 건가? 마나 45면 많은 건가?" 비교 대상이 없다. 유저는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안 쓴다. 익숙한 게 편하다. 나는 숫자를 주면 유저가 계산할 거라고 생각했다. 유저는 계산 안 한다. 느낌으로 판단한다. 느낌이 안 오면 안 쓴다.긴급 회의 오후 3시. PD가 불렀다. "이거 어떻게 할 건데?" "UI 수정하고 튜토리얼 바꿔야 될 것 같아요." "시간 얼마나?" "2주요." "다음 주 업데이트 있는데." 알고 있다. 다음 주 업데이트는 신규 던전이다. 2개월 작업했다. 이것도 중요하다. "스킬 사용률 이대로 두면 신규 던전 밸런스 다 깨져요." 신규 던전은 스킬 사용 기준으로 난이도를 잡았다. 스킬 안 쓰면 클리어 불가능하다. 유저가 스킬을 안 쓰면 던전을 못 깬다. 리뷰 폭탄 맞는다. "그럼?" "던전 난이도 낮추고 스킬 튜토리얼 먼저 넣어야죠." PD가 한숨 쉬었다. "개발팀한테 얘기해봐." 개발팀장을 찾아갔다. 사정했다. "UI 수정 급하게 부탁드립니다." "뭐 또?" "스킬 아이콘 크게 하고 알림 팝업 넣어야 돼요." "다음 주 빌드 올라가는데?" 알고 있다. 미안하다. 기획을 잘못했다. "꼭 필요합니다." 개발팀장이 담배 피우러 갔다. 돌아와서 말했다. "이번 주 야근 각오해." 고맙다. 미안하다. 수정 작업 화요일. UI 수정안을 그렸다. 변경 사항:레벨 10 달성 시 스킬 강제 튜토리얼 스킬 아이콘 2배 크기 신규 스킬 빨간 점 표시 퀵슬롯 등록 가이드 첫 사용 시 데미지 비교 표시시안을 그렸다. 아티스트한테 넘겼다. 급하게 작업 부탁했다. 스킬 설명도 바꿨다. 기존: "적에게 150%의 피해를 주고 3초간 기절시킵니다." 수정: "일반 공격보다 2배 강합니다! 적을 기절시켜 안전하게 싸우세요." 숫자를 뺐다. 비교 표현을 넣었다. 유저는 "2배"를 이해한다. "150%"는 모른다. 개발팀이 구현했다. 목요일에 테스트 빌드 나왔다. QA팀이 돌렸다. 버그 3개 나왔다. 수정했다. 다시 테스트했다. 통과했다. 금요일 오전. 업데이트 준비 완료. 오후 2시. 배포했다. 데이터를 기다리며 주말이 지났다. 월요일 아침이다. 출근했다. 커피 뽑았다. 손이 떨렸다. 엑셀 열었다. 주말 데이터다. 스킬 사용률 컬럼을 봤다. 38%. 다시 봤다. 38%가 맞다. 레벨별로 봤다.레벨 10~15: 35% 레벨 16~20: 42% 레벨 21~25: 45%올랐다. 7%에서 38%다. 5배 이상 증가했다. 유저 리뷰를 봤다. "레벨 10 되니까 스킬 주네요. 개쩔어요." "튜토리얼이 친절해졌네. 전엔 몰랐는데." "스킬 쓰니까 전투가 재밌어요." PD한테 보고했다. "스킬 사용률 38%입니다." "잘했네." "목표가 60%였는데." "그래도 올랐잖아." 맞다. 올랐다. 5배 올랐다. 근데 목표의 절반이다. 나는 완벽한 밸런스를 만들었다. 유저는 발견하지 못했다. UI를 고쳤다. 유저가 사용했다. 깨달았다. 기획은 밸런스가 아니다. 발견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유저가 모르면 없는 거다. 숫자가 완벽해도 유저가 안 쓰면 의미 없다. 유저는 게임을 공부하지 않는다. 그냥 논다. 자연스럽게 발견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거다. 나는 3개월 동안 밸런스를 잡았다. 정작 중요한 건 "유저가 찾을 수 있는가"였다. 남은 문제 화요일. 추가 데이터를 봤다. 스킬 사용률은 38%에서 멈췄다. 더 안 올라간다. 나머지 62%는 왜 안 쓸까. 로그를 파봤다. 튜토리얼을 스킵한 유저들이다. 30%쯤 된다. 튜토리얼 자체를 안 봤다. 당연히 스킬도 모른다. 강제 튜토리얼인데 어떻게 스킵하나? 유저는 방법을 찾는다. 빠르게 클릭해서 넘긴다. 화면 안 보고 터치한다. 유저를 과소평가했다. 유저는 생각보다 게임을 안 본다. 나머지 32%는 튜토리얼을 봤다. 스킬도 안다. 그래도 안 쓴다. 왜? 유저 레벨을 봤다. 대부분 5~8레벨이다. 아직 10레벨이 안 됐다. 튜토리얼을 봤지만 스킬을 못 쓴다. 10레벨이 되면 잊어버린다. "아." 또 문제를 찾았다. 튜토리얼 타이밍이 틀렸다. 레벨 1에 스킬을 설명한다. 유저는 레벨 10에 쓴다. 9레벨의 간격이 있다. 유저는 잊어버린다. 수정안을 썼다. 튜토리얼을 레벨 10 달성 직후로 옮긴다. 바로 스킬을 쓰게 한다. PD한테 보고했다. "튜토리얼 타이밍 수정 필요합니다." "또?" "사용률 60% 만들려면 필요해요." 한숨 쉬었다. 승인했다. 개발 일정 잡았다. 다음 주 업데이트다. 또 야근이다. 배운 것들 수요일 저녁. 혼자 남아서 데이터를 봤다. 3개월 작업했다. 1주일 만에 갈아엎었다. 아직도 목표 달성 못 했다. 뭘 배웠나. 첫째, 유저는 숫자를 안 본다. 느낌으로 판단한다. "150% 데미지"보다 "2배 강함"이 낫다. 비교 대상을 명확하게 줘야 한다. 둘째, 유저는 게임을 공부 안 한다. 자연스럽게 발견되게 만들어야 한다. 숨겨진 시스템은 없는 시스템이다. 셋째, 튜토리얼은 타이밍이다. 너무 빠르면 잊어버린다. 필요한 순간에 알려줘야 한다. 넷째, 기획자의 예상은 틀린다. 항상 틀린다. 데이터로 검증해야 한다. 출시 전에 알 수 없다. 다섯째, 유저는 기획 의도를 모른다. 관심도 없다. 그냥 재밌으면 한다. 재미없으면 안 한다. 여섯째, 완벽한 밸런스보다 명확한 UI가 낫다. 발견되지 않는 밸런스는 의미 없다. 일곱째, 유저 간 소통이 게임보다 강하다. 친구 말을 듣는다. 게임 설명은 스킵한다. 여덟째, 혼자 플레이하는 유저가 대부분이다. 이들을 위한 가이드가 필요하다. 아홉째, 기획서는 가설이다. 출시는 실험이다. 데이터는 결과다. 틀리면 수정한다. 열째, 야근은 기본이다. 2주 후 스킬 사용률이 52%가 됐다. 목표 60%보다 낮지만 나쁘지 않다. 절반 넘는 유저가 쓴다. 신규 던전 클리어율도 괜찮다. 스킬 쓰는 유저는 90% 클리어한다. 안 쓰는 유저는 30%다. 리뷰는 좋아졌다. "전투가 재밌어졌어요." "스킬 짱이에요." 나쁜 리뷰도 있다. "스킬이 복잡해요." "설명이 부족해요." 맞다. 아직 부족하다. PD가 말했다. "다음 업데이트 때 스킬 2개 더 추가해." 또 시작이다. 기획서를 펼쳤다. 이번엔 다르게 해야 한다. 유저 관점으로 생각했다. 숫자가 아니라 느낌으로. 발견을 먼저 고민했다. 밸런스는 그다음이다. 기획서 첫 줄에 썼다. "유저는 이 스킬을 어떻게 발견하는가?" 이게 먼저다.계획은 항상 무너진다. 데이터 앞에서 겸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