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퍼런스 룸에서 숫자가 안 맞을 때: 누가 틀렸나

콘퍼런스 룸에서 숫자가 안 맞을 때: 누가 틀렸나

콘퍼런스 룸에서 숫자가 안 맞을 때: 누가 틀렸나

오전 10시, 회의실

회의실에 들어갔다. PD, 마케팅팀, 나.

“이번 패키지, 얼마나 팔릴까요?”

PD가 물었다. 마케팅팀이 자료를 켰다.

“월 매출 3억 예상합니다.”

나는 엑셀을 열었다. 어젯밤에 시뮬 돌린 거.

“플레이 타임 분석하면 2억 2천이 한계입니다.”

공기가 무거워졌다.

“근거가 뭔데요?”

“유저 1인당 플레이 타임이 일 2시간이고, 패키지 소진까지 14일 걸립니다. 재구매 주기 고려하면…”

PD가 끼어들었다.

“마케팅 데이터는요?”

“신규 유입 30% 증가 예상이고, 전환율 8%면…”

둘 다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숫자는 안 맞았다.

숫자가 다른 이유

회의가 끝났다. 내 자리로 돌아왔다.

엑셀을 다시 봤다. 내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 유저 플레이 타임: 일 평균 2시간 3분
  • 패키지 완료까지: 13.8일
  • 재구매율: 24%
  • 예상 매출: 2억 2400만원

PD 자료도 다시 봤다. 이것도 틀리지 않았다.

  • 신규 유입: 기존 대비 32% 증가
  • 전환율: 8.2%
  • 객단가: 15,000원
  • 예상 매출: 3억 100만원

문제는 이거였다. 우리가 다른 걸 보고 있었다.

나는 ‘기존 유저가 얼마나 살까’를 봤다. PD는 ‘신규 유저가 얼마나 들어올까’를 봤다.

둘 다 맞았다. 그런데 합치면 숫자가 이상했다.

누가 틀렸나

점심시간이었다. 프로그래머 민수가 물었다.

“회의 어땠어?”

“숫자 싸움.”

“누가 이겼어?”

“모르겠어. 둘 다 맞는 것 같은데 합치면 틀렸어.”

민수가 웃었다.

“그럼 둘 다 틀린 거 아냐?”

그 말이 맞았다.

문제는 변수였다. 내가 못 본 변수, PD가 못 본 변수.

내가 못 본 거:

  • 신규 유입이 기존 유저 행동을 바꿀 수 있다
  • 커뮤니티 분위기가 구매를 부추긴다
  • 이벤트 타이밍이 재구매를 앞당긴다

PD가 못 본 거:

  • 신규 유저는 패키지를 바로 안 산다
  • 플레이 타임이 짧으면 재구매가 늦어진다
  • 기존 유저 이탈이 신규 유입을 상쇄한다

오후 3시, 다시 회의

PD가 다시 불렀다.

“숫자 다시 봤어요?”

“네. 제 계산에 신규 유입 변수 넣으니까 2억 7천 나왔습니다.”

“저도 플레이 타임 고려하니까 2억 8천 나왔어요.”

가까워졌다. 2억 7500만원으로 정리했다.

“그럼 이걸로 갑시다.”

회의가 끝났다. 그런데 찝찝했다.

이게 맞나? 아니면 또 다른 변수가 있나?

2주 후, 패키지 출시

런칭 당일이었다. 모니터를 켰다.

매출 대시보드를 띄웠다. 1시간마다 새로고침했다.

  • 1일차: 8200만원
  • 2일차: 6700만원
  • 3일차: 5100만원

일주일 합계: 2억 9300만원.

우리 예상: 2억 7500만원.

틀렸다. 그런데 좋은 쪽으로 틀렸다.

PD가 슬랙에 썼다.

“숫자 잘 맞췄네요 ㅎㅎ”

아니었다. 우리가 못 본 변수가 또 있었다.

  • 경쟁작이 서버 터짐
  • 스트리머가 우리 게임 방송함
  • 커뮤니티에서 입소문 탐

운이 좋았다. 숫자가 맞은 게 아니라.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퇴근길이었다.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콘퍼런스 룸에서 숫자가 안 맞을 때, 누가 틀렸나?

정답은 ‘둘 다 틀렸고 둘 다 맞았다’.

게임은 변수가 너무 많다.

  • 유저 행동은 예측 불가
  • 커뮤니티는 통제 불가
  • 경쟁 상황은 변수
  • 시장 분위기는 랜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뿐이다.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본다. 최대한 많은 변수를 고려한다. 그리고 틀릴 준비를 한다.

PD도 마찬가지다. 마케팅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 같이 틀린다. 그리고 다 같이 맞춘다.

다음 패키지 회의

한 달 후, 또 회의실에 들어갔다.

“이번엔 얼마 예상하세요?”

PD가 물었다. 나는 엑셀을 켰다.

“3억 5천입니다. 근데 변수가 20개 정도 있습니다.”

“어떤 변수요?”

쭉 읽어줬다. 유저 이탈률, 경쟁작 스케줄, 커뮤니티 분위기, 시즌 종료 타이밍, 밸런스 패치 영향, 날씨…

PD가 웃었다.

“날씨요?”

“비 오는 날 접속자 12% 늘어납니다. 여름이라 변수에 넣었습니다.”

“미쳤네요.”

미친 게 아니다. 이게 게임 기획이다.

숫자는 항상 틀린다. 그래서 계속 본다.

회의가 끝났다. 자리로 돌아와서 엑셀을 다시 켰다.

변수를 하나 더 추가했다.

‘예상 밖의 변수: ±30%’

이게 제일 정확한 변수다.

밤 11시, 퇴근 전

모니터를 끄기 전에 슬랙을 봤다.

PD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회의 고생했어요. 근데 진짜 궁금한 게, 숫자가 안 맞을 때 스트레스 안 받아요?”

답장을 쳤다.

“받죠. 근데 숫자가 딱 맞으면 더 무섭습니다. 뭔가 놓친 것 같아서요.”

읽음 표시가 떴다. 답장이 왔다.

“그것도 그렇네요 ㅋㅋ”

컴퓨터를 껐다. 가방을 챙겼다.

콘퍼런스 룸에서 숫자가 안 맞는 건 일상이다.

누가 틀렸나? 우리 다 틀렸다.

그래서 다음에 또 맞춰본다.



숫자가 맞으면 의심하고, 틀리면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