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 데이터를 보면: 계획은 이렇게 무너진다
- 04 Dec, 2025
유저 데이터를 보면: 계획은 이렇게 무너진다
월요일 아침, 데이터 앞에서
출근했다. 커피부터 뽑았다.
엑셀 파일 열었다. 지난주 금요일 업데이트 이후 유저 데이터다. 신규 스킬 3개 추가했다. 10레벨부터 사용 가능. 밸런스 완벽하게 잡았다고 생각했다.
스킬 사용률 컬럼을 봤다.
7%.
다시 봤다. 7%가 맞다.
“뭐지?”
3개월 동안 기획했다. 수치 시뮬레이션 50번 넘게 돌렸다. 테스트 플레이도 했다. QA팀도 재밌다고 했다. 유저들이 환호할 줄 알았다.
7%다.
93%의 유저는 스킬이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기획자의 착각
회의실로 갔다. PD한테 물었다.
“스킬 사용률 보셨어요?” “봤어. 왜 이래?” “제가 그걸 알면 여기 안 왔죠.”
데이터를 펼쳤다. 유저 레벨별 스킬 사용률이다.
- 레벨 10~15: 3%
- 레벨 16~20: 8%
- 레벨 21~25: 12%
- 레벨 26~30: 18%
레벨 30 넘어가면 좀 쓴다. 그것도 20%가 안 된다.
“스킬 강하잖아요. DPS 계산해보면 기본 공격보다 30% 높은데.” “그럼 유저가 멍청한 건가?”
아니다. 유저는 멍청하지 않다. 내가 멍청한 거다.
기획자는 착각한다. 내가 만든 시스템을 유저가 당연히 이해할 거라고. 튜토리얼 한 번 보면 다 알 거라고. 수치가 좋으면 당연히 쓸 거라고.
틀렸다.
유저는 게임을 플레이한다. 시스템을 공부하지 않는다. 숫자를 계산하지 않는다. 그냥 느낌으로 누른다. 익숙한 걸 누른다. 새로운 건 귀찮다.
나는 3개월 동안 스킬 밸런스를 고민했다. 유저는 3초 동안 ‘이거 뭐지?’ 하고 넘어간다.
격차가 이렇게 크다.
데이터를 뜯어보니
점심 먹고 돌아왔다. 데이터를 더 파봤다.
로그를 봤다. 유저 플레이 패턴이다. 프레임 단위로 찍혀 있다. 10레벨 유저 100명을 무작위로 뽑았다.
패턴이 보였다.
대부분 유저는 스킬 창을 안 연다. 연다고 해도 1초 보고 닫는다. 스킬을 등록하는 유저는 20%다. 등록해도 안 쓴다. 퀵슬롯에 등록하는 유저는 5%다.
“아.”
문제를 찾았다. 스킬이 약해서가 아니다. 유저가 스킬을 발견하지 못한다.
UI를 봤다. 스킬 창은 메뉴의 세 번째 탭이다. 캐릭터 정보 탭 안에 숨어 있다. 아이콘이 작다. 신규 알림도 없다.
튜토리얼을 봤다. 스킬 설명은 15단계 중 11번째다. 텍스트로 설명한다. “레벨 10이 되면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게 끝이다.
유저는 튜토리얼을 스킵한다. 11단계까지 안 본다. 봐도 기억 안 한다.
나는 유저가 게임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플레이할 거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예상 vs 현실
기획서를 꺼냈다. 3개월 전에 쓴 거다.
“스킬 시스템 기획서 v2.3”
목표 항목을 봤다.
- 레벨 10 유저의 60%가 스킬 사용
- 스킬 사용 시 전투 만족도 상승
- 과금 유저의 스킬 강화 유도
예상이었다. 현실은 이렇다.
- 레벨 10 유저의 3%가 스킬 사용
- 대부분 유저는 스킬이 있는지 모름
- 과금은 커녕 존재 자체를 인식 못함
기획 의도를 읽었다. “유저들이 레벨 10이 되면 전투가 지루해집니다. 스킬 시스템으로 전투에 깊이를 더하고 성장 동기를 부여합니다.”
맞는 말이다. 의도는 좋았다. 실행이 망했다.
나는 유저가 이렇게 플레이할 거라고 상상했다.
- 레벨 10 달성
- 스킬 해금 알림 확인
- 스킬 창 열어서 확인
- 강한 스킬 선택해서 등록
- 전투에서 사용
- “오 재밌네” 하고 계속 사용
실제로는 이렇다.
- 레벨 10 달성
- 다음 퀘스트 진행
- 끝
스킬? 본 적도 없다.
나는 게임을 100시간 플레이한 사람의 시점으로 기획했다. 유저는 1시간 플레이한 사람의 시점으로 게임한다.
간극이 이렇게 크다.
왜 안 쓰는가
데이터를 더 파봤다. 스킬을 실제로 사용한 7%의 유저다. 얘네는 왜 썼을까.
로그를 분석했다.
- 길드 가입자: 스킬 사용률 35%
- 커뮤니티 활동 유저: 스킬 사용률 28%
- 친구 3명 이상: 스킬 사용률 22%
- 혼자 플레이: 스킬 사용률 1%
보인다. 스킬을 쓰는 유저는 누군가한테 들었다. “야 레벨 10 되면 스킬 써봐. 개쩐다.”
게임이 알려준 게 아니다. 다른 유저가 알려줬다.
나는 게임 내 시스템으로 유저를 교육할 수 있다고 믿었다. 틀렸다. 유저는 게임을 믿지 않는다. 다른 유저를 믿는다.
튜토리얼은 스킵한다. 친구 말은 듣는다.
그럼 93%의 유저는? 친구가 없거나 커뮤니티 안 한다. 혼자 조용히 게임한다. 스킬이 있는지도 모른다.
더 파봤다. 스킬을 발견했지만 안 쓰는 유저들이다. 20%쯤 된다.
이유를 찾아봤다.
로그를 봤다. 스킬 창을 열었다. 5초 봤다. 닫았다. 안 썼다.
왜?
스킬 설명을 봤다.
“적에게 150%의 피해를 주고 3초간 기절시킵니다. 쿨타임 12초. 마나 소모 45.”
나는 이게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유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150%가 뭔데? 지금보다 강한 건가? 기절이 필요한가? 쿨타임 12초면 긴 건가? 마나 45면 많은 건가?”
비교 대상이 없다. 유저는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안 쓴다. 익숙한 게 편하다.
나는 숫자를 주면 유저가 계산할 거라고 생각했다. 유저는 계산 안 한다. 느낌으로 판단한다. 느낌이 안 오면 안 쓴다.

긴급 회의
오후 3시. PD가 불렀다.
“이거 어떻게 할 건데?” “UI 수정하고 튜토리얼 바꿔야 될 것 같아요.” “시간 얼마나?” “2주요.” “다음 주 업데이트 있는데.”
알고 있다. 다음 주 업데이트는 신규 던전이다. 2개월 작업했다. 이것도 중요하다.
“스킬 사용률 이대로 두면 신규 던전 밸런스 다 깨져요.”
신규 던전은 스킬 사용 기준으로 난이도를 잡았다. 스킬 안 쓰면 클리어 불가능하다. 유저가 스킬을 안 쓰면 던전을 못 깬다. 리뷰 폭탄 맞는다.
“그럼?” “던전 난이도 낮추고 스킬 튜토리얼 먼저 넣어야죠.”
PD가 한숨 쉬었다.
“개발팀한테 얘기해봐.”
개발팀장을 찾아갔다. 사정했다.
“UI 수정 급하게 부탁드립니다.” “뭐 또?” “스킬 아이콘 크게 하고 알림 팝업 넣어야 돼요.” “다음 주 빌드 올라가는데?”
알고 있다. 미안하다. 기획을 잘못했다.
“꼭 필요합니다.”
개발팀장이 담배 피우러 갔다. 돌아와서 말했다.
“이번 주 야근 각오해.”
고맙다. 미안하다.
수정 작업
화요일. UI 수정안을 그렸다.
변경 사항:
- 레벨 10 달성 시 스킬 강제 튜토리얼
- 스킬 아이콘 2배 크기
- 신규 스킬 빨간 점 표시
- 퀵슬롯 등록 가이드
- 첫 사용 시 데미지 비교 표시
시안을 그렸다. 아티스트한테 넘겼다. 급하게 작업 부탁했다.
스킬 설명도 바꿨다.
기존: “적에게 150%의 피해를 주고 3초간 기절시킵니다.”
수정: “일반 공격보다 2배 강합니다! 적을 기절시켜 안전하게 싸우세요.”
숫자를 뺐다. 비교 표현을 넣었다. 유저는 “2배”를 이해한다. “150%“는 모른다.
개발팀이 구현했다. 목요일에 테스트 빌드 나왔다.
QA팀이 돌렸다. 버그 3개 나왔다. 수정했다. 다시 테스트했다. 통과했다.
금요일 오전. 업데이트 준비 완료.
오후 2시. 배포했다.
데이터를 기다리며
주말이 지났다. 월요일 아침이다.
출근했다. 커피 뽑았다. 손이 떨렸다.
엑셀 열었다. 주말 데이터다.
스킬 사용률 컬럼을 봤다.
38%.
다시 봤다. 38%가 맞다.
레벨별로 봤다.
- 레벨 10~15: 35%
- 레벨 16~20: 42%
- 레벨 21~25: 45%
올랐다. 7%에서 38%다. 5배 이상 증가했다.
유저 리뷰를 봤다.
“레벨 10 되니까 스킬 주네요. 개쩔어요.” “튜토리얼이 친절해졌네. 전엔 몰랐는데.” “스킬 쓰니까 전투가 재밌어요.”
PD한테 보고했다.
“스킬 사용률 38%입니다.” “잘했네.” “목표가 60%였는데.” “그래도 올랐잖아.”
맞다. 올랐다. 5배 올랐다. 근데 목표의 절반이다.
나는 완벽한 밸런스를 만들었다. 유저는 발견하지 못했다. UI를 고쳤다. 유저가 사용했다.
깨달았다.
기획은 밸런스가 아니다. 발견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유저가 모르면 없는 거다. 숫자가 완벽해도 유저가 안 쓰면 의미 없다.
유저는 게임을 공부하지 않는다. 그냥 논다. 자연스럽게 발견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거다.
나는 3개월 동안 밸런스를 잡았다. 정작 중요한 건 “유저가 찾을 수 있는가”였다.
남은 문제
화요일. 추가 데이터를 봤다.
스킬 사용률은 38%에서 멈췄다. 더 안 올라간다.
나머지 62%는 왜 안 쓸까.
로그를 파봤다. 튜토리얼을 스킵한 유저들이다. 30%쯤 된다. 튜토리얼 자체를 안 봤다. 당연히 스킬도 모른다.
강제 튜토리얼인데 어떻게 스킵하나? 유저는 방법을 찾는다. 빠르게 클릭해서 넘긴다. 화면 안 보고 터치한다.
유저를 과소평가했다. 유저는 생각보다 게임을 안 본다.
나머지 32%는 튜토리얼을 봤다. 스킬도 안다. 그래도 안 쓴다.
왜?
유저 레벨을 봤다. 대부분 5~8레벨이다. 아직 10레벨이 안 됐다. 튜토리얼을 봤지만 스킬을 못 쓴다. 10레벨이 되면 잊어버린다.
“아.”
또 문제를 찾았다. 튜토리얼 타이밍이 틀렸다. 레벨 1에 스킬을 설명한다. 유저는 레벨 10에 쓴다. 9레벨의 간격이 있다. 유저는 잊어버린다.
수정안을 썼다. 튜토리얼을 레벨 10 달성 직후로 옮긴다. 바로 스킬을 쓰게 한다.
PD한테 보고했다.
“튜토리얼 타이밍 수정 필요합니다.” “또?” “사용률 60% 만들려면 필요해요.”
한숨 쉬었다. 승인했다.
개발 일정 잡았다. 다음 주 업데이트다. 또 야근이다.
배운 것들
수요일 저녁. 혼자 남아서 데이터를 봤다.
3개월 작업했다. 1주일 만에 갈아엎었다. 아직도 목표 달성 못 했다.
뭘 배웠나.
첫째, 유저는 숫자를 안 본다. 느낌으로 판단한다. “150% 데미지”보다 “2배 강함”이 낫다. 비교 대상을 명확하게 줘야 한다.
둘째, 유저는 게임을 공부 안 한다. 자연스럽게 발견되게 만들어야 한다. 숨겨진 시스템은 없는 시스템이다.
셋째, 튜토리얼은 타이밍이다. 너무 빠르면 잊어버린다. 필요한 순간에 알려줘야 한다.
넷째, 기획자의 예상은 틀린다. 항상 틀린다. 데이터로 검증해야 한다. 출시 전에 알 수 없다.
다섯째, 유저는 기획 의도를 모른다. 관심도 없다. 그냥 재밌으면 한다. 재미없으면 안 한다.
여섯째, 완벽한 밸런스보다 명확한 UI가 낫다. 발견되지 않는 밸런스는 의미 없다.
일곱째, 유저 간 소통이 게임보다 강하다. 친구 말을 듣는다. 게임 설명은 스킵한다.
여덟째, 혼자 플레이하는 유저가 대부분이다. 이들을 위한 가이드가 필요하다.
아홉째, 기획서는 가설이다. 출시는 실험이다. 데이터는 결과다. 틀리면 수정한다.
열째, 야근은 기본이다.
2주 후
스킬 사용률이 52%가 됐다.
목표 60%보다 낮지만 나쁘지 않다. 절반 넘는 유저가 쓴다.
신규 던전 클리어율도 괜찮다. 스킬 쓰는 유저는 90% 클리어한다. 안 쓰는 유저는 30%다.
리뷰는 좋아졌다. “전투가 재밌어졌어요.” “스킬 짱이에요.”
나쁜 리뷰도 있다. “스킬이 복잡해요.” “설명이 부족해요.”
맞다. 아직 부족하다.
PD가 말했다.
“다음 업데이트 때 스킬 2개 더 추가해.”
또 시작이다. 기획서를 펼쳤다. 이번엔 다르게 해야 한다.
유저 관점으로 생각했다. 숫자가 아니라 느낌으로. 발견을 먼저 고민했다. 밸런스는 그다음이다.
기획서 첫 줄에 썼다.
“유저는 이 스킬을 어떻게 발견하는가?”
이게 먼저다.
계획은 항상 무너진다. 데이터 앞에서 겸손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