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 커뮤니티에서 '이건 의도적 설계인가?'라는 질문
- 16 Dec, 2025
이건 의도한 건가요?
월요일 아침, 커뮤니티 폭발
출근했다. 커피 뽑기 전에 디스코드부터 켰다.
유저 커뮤니티가 난리다. 주말 사이 300개 댓글. “이거 버그냐 너프냐”, “의도한 설계 맞냐”, “기획자 나와”가 반복된다.
문제는 전사 캐릭터다. 특정 스킬 두 개를 연계하면 쿨타임이 0.5초 줄어든다. 이게 3번 반복되면 1.5초 단축. DPS가 15% 뛴다.
유저들은 두 진영으로 갈렸다.
“이거 컨셉이잖아. 숙련도 보상이라고” “버그 아니냐. 다른 캐릭은 안 되는데”
나는 안다. 둘 다 아니라는 걸.
이건 그냥… 생각 못 했다.

의도한 설계의 영역
기획서를 열었다. 전사 스킬 파트.
“스킬A: 쿨타임 8초, 대미지 150%” “스킬B: 쿨타임 12초, 버프 15초 지속”
연계 보너스는 적혀 있다. “같은 대상에게 5초 내 사용 시 크리티컬 확률 +10%”. 이건 의도했다.
하지만 쿨타임 감소는 없다.
프로그래머한테 물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아, 스킬 버프가 쿨타임 회복 속도에 영향 주게 설정돼 있어요. 전투 템포 올리려고 작년에 넣었던 시스템인데.”
작년. 내가 오기 전이다.
시스템은 의도했다. 전사 연계는 의도했다. 근데 둘이 만나면 이렇게 되는 건 몰랐다.
이게 게임이다. 레고처럼 쌓아올린 시스템이 예상 못 한 방식으로 얽힌다.
의도의 경계가 흐릿하다. “100% 의도”부터 “전혀 몰랐음”까지 스펙트럼이다.
버그와 피처의 경계
점심 먹으면서 QA팀이랑 얘기했다.
“이거 버그 등록할까요?”
“잠깐만.”
버그의 정의가 뭔가. 의도하지 않은 동작? 그럼 이건 버그다. 근데 게임을 망가뜨리나? 아직 모른다.
데이터를 뽑았다. 전사 유저 1200명. 이 연계 쓰는 사람 83명. 7%. 대부분은 모른다.
저 83명의 승률. 일반 전사 대비 4% 높다. 유의미하지만 압도적은 아니다.
“이거 고치면 난리 날 텐데.”
시니어 기획자가 말했다. “유저들이 찾아낸 ‘고급 기술’처럼 됐잖아. 삭제하면 ‘재미 빼간다’고 할 거야.”
맞다. 이미 공략 영상이 5개 올라왔다. “전사 고수들만 아는 연계 타이밍”, “이거 모르면 뉴비”. 조회수 합치면 15만.
버그를 고치는 게 맞나, 피처로 인정하는 게 맞나.
답이 없다.

유저가 발견한 플레이 방식
오후 3시. 긴급 회의.
PD가 물었다. “이거 냅둬도 돼?”
“지금 당장은 밸런스 괜찮습니다. 근데…”
“근데?”
“다른 캐릭터들도 똑같이 작동해요. 아직 안 알려졌을 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마법사는 스킬 3개 연계하면 쿨타임 2.5초 줄어든다. 암살자는 백스탭 연계로 3초. 계산해보니 전사보다 더 강하다.
“유저들이 아직 못 찾았네.”
“네. 전사가 제일 쉬워서 먼저 발견된 것뿐이에요.”
선택지가 생겼다.
- 시스템 자체를 삭제한다: 전사 유저 폭발, “재미 빼간다”
- 모든 캐릭터 밸런싱: 작업 2주, 다른 업무 밀림
- 냅둔다: 다른 캐릭터 조합 발견되면 메타 붕괴
PD가 말했다. “이거 원래 왜 넣었어?”
전임 기획자 자료를 찾았다. “전투 템포 개선. 숙련도 보상 체계.”
의도 자체는 좋았다. 근데 구현 과정에서 누구도 전체 연계를 시뮬레이션 안 했다.
우리는 개별 스킬을 본다. 유저는 조합을 본다.
커뮤니티 답변 작성
퇴근 전. 공식 답변을 써야 한다.
초안을 썼다.
“안녕하세요. 해당 현상은 의도된 시스템입니다만, 일부 밸런스 조정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웠다. 이렇게 쓰면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의도한 게 아니니까.
다시 썼다.
“해당 현상은 버그가 아닌 시스템 간 상호작용입니다. 다만 기획 단계에서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이것도 애매하다.
시니어가 어깨를 두드렸다. “솔직하게 써. 유저들 바보 아니야.”
최종 답변.
“전투 템포 시스템과 스킬 연계가 예상보다 강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의도한 시스템이지만 조합 효과는 미처 체크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데이터 분석 중이며, 급격한 변경보다는 전체 캐릭터 밸런스를 고려해 조정하겠습니다.”
올렸다.
10분 만에 댓글 50개.
“인정하네 ㅋㅋ” “솔직해서 좋다” “그래도 너프는 하지 마” “다른 캐릭도 강화해줘”
반응이 나쁘지 않다. 솔직함이 통했다.

의도와 발견 사이
저녁 8시. 혼자 남아서 정리했다.
게임 기획에는 세 가지 레이어가 있다.
의도한 것: 기획서에 적힌 것. “스킬A는 DPS 증가용.”
예상한 것: 기획서엔 없지만 머릿속에 있던 것. “이거랑 저거 같이 쓰면 좋겠지.”
발견되는 것: 유저들이 찾아내는 것. “A+B+C를 0.3초 간격으로 누르면…”
문제는 세 번째다.
우리는 스킬 100개를 만든다. 유저는 10만 가지 조합을 시도한다. 우리가 다 테스트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나온다. “이거 의도한 거예요?”
대답은 복잡하다.
시스템은 의도했다. 조합은 몰랐다. 근데 결과가 나쁘지 않으면? 그건 “해피 액시던트”다.
마인크래프트의 크리퍼. 버그로 태어나서 아이콘이 됐다. 다크소울의 패링. 원래는 보조 기능인데 플레이의 핵심이 됐다.
게임은 설계자와 플레이어가 같이 만든다.
우리는 재료를 준다. 유저는 요리를 한다. 때로는 우리가 상상 못 한 요리가 나온다.
다음 패치 준비
결론이 났다.
시스템은 유지. 대신 모든 캐릭터에 “숙련 보너스”로 공식화한다. 수치는 조정. 전사 15% → 10%, 마법사 잠재력 활성화 12%, 암살자 8%.
기획서를 다시 썼다. 이번엔 조합까지 문서화했다.
“2-스킬 연계 시 쿨타임 감소 0.3초” “3-스킬 연계 시 추가 0.5초” “최대 누적 1.5초”
이제 의도가 명확하다. 다음에 누가 물어보면 “네, 의도한 겁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버그를 피처로 승격시켰다.
패치노트 초안.
“숙련 시스템 공식화: 연계 플레이 보상 체계 도입”
“버그 수정”이 아니라 “신규 기능”이 됐다. 유저들은 너프라고 생각 안 할 것이다.
이게 게임 기획이다. 의도를 사후에 정의하기도 한다.
금요일 저녁, 패치 후
패치가 나갔다. 반응을 봤다.
“오 이거 정식 기능이었네” “다른 캐릭터도 되는 거 신기하다” “전사 약간 너프됐는데 괜찮음” “암살자 이거 ㅅㅌㅊ”
성공이다.
시니어가 맥주를 건넸다. “잘했어. 위기를 기회로.”
“운 좋았죠.”
“아니야. 대응을 잘한 거야. 숨기거나 무시했으면 더 커졌어.”
맞다. 이런 상황은 또 온다.
유저는 항상 우리보다 많다. 100명 기획자보다 100만 명 유저가 더 많이 발견한다.
“이거 의도한 거예요?”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때로는 “지금은 아니지만, 이제 의도입니다”가 답이다.
게임은 유기체다. 살아 움직이고 변한다. 기획자는 정원사다. 예상 못 한 방향으로 자란 나무를 다듬고, 때로는 그대로 둔다.
중요한 건 정직함이다. “몰랐습니다, 근데 괜찮습니다”가 “의도했습니다”보다 낫다.
퇴근했다. 이번 주도 무사히.
월요일에는 또 다른 “의도한 거냐” 질문이 올라올 것이다.
의도는 고정이 아니다. 발견과 협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