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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

좋아하던 게임을 일로 분석하면: 마법이 풀린다

좋아하던 게임을 일로 분석하면: 마법이 풀린다

그 게임이 일이 되던 날어제 집에서 그 게임을 켰다. 10년 전 고등학생 때 미친 듯이 했던 RPG. 500시간 넘게 했던 것 같다. 추억 보정으로 다시 해볼까 싶었다. 캐릭터 선택 화면에서 손이 멈췄다. "이 캐릭터 초반 DPS가 낮아서 레벨링 구간이 지루한데." 로딩 화면이 뜨자마자 생각했다. "로딩 시간 8초. 요즘 기준으론 길다. 유저 이탈 포인트." 첫 마을에 도착했다. 예쁜 배경음악이 나온다. "이 음악 루프 타이밍 좋네. 48초 구간. BGM 기획 잘했다." 게임을 하는 게 아니었다. 분석하고 있었다. 끄고 나왔다. 30분도 못 했다.밸런스 시트로 보이는 세상이 병은 입사 2년 차부터 시작됐다. 게임을 켜면 숫자가 보인다. 재미가 아니라 수치가. RPG 하다가 몬스터 잡으면:경험치 120 / 내 레벨 15 = 8% 경험치 효율 나쁨 사냥터 밸런스 이상함액션 게임 하다가 보스전:패턴 3개 / 체력 3구간 패턴 변화 예측 가능 난이도 설계 평이함모바일 게임 접속하면:데일리 미션 7개 보상 받기까지 클릭 22번 UX 비효율적친구가 물었다. "왜 게임 안 하냐?" 대답 못 했다. "재밌게 못 하겠어"라고 하면 이상한 놈 된다. 진짜 이유는 다르다. 게임이 게임으로 안 보인다. 엑셀 시트로 보인다. 기획서로 보인다. 누군가의 노동으로 보인다. 마법이 풀렸다.존경하던 게임, 분해되던 순간작년에 회사에서 벤치마킹 과제를 받았다. 주제는 내가 중학생 때부터 했던 그 게임. 업계에서 레전드 취급받는 작품. 2주 동안 그 게임을 뜯었다.전투 시스템 분석 레벨 구간별 경험치 곡선 보상 스케줄 역설계 유저 동선 최적화 포인트 가챠 확률 추정보고서 30페이지 썼다. 팀장이 칭찬했다. 집에 와서 멍했다. 그 게임을 다신 못 할 것 같았다. 고등학생 때 밤새워 레이드 돌던 그 던전. 이제 알아버렸다. 보스 패턴이 3단계로 설계됐고, 체력 70%/40%에서 페이즈 전환되고, 광역기 타이밍이 12초 주기라는 걸. 모르고 싶었다. 게임이 얼마나 정교한 수학인지. 재미가 얼마나 계산된 결과물인지. 마법 같던 순간들이 전부 누군가의 엑셀 함수였다는 걸. 존경은 남았다. 하지만 동시에 즐거움은 사라졌다."이거 왜 이렇게 만들었지?" 퇴근 후 게임 커뮤니티 들어가면 유저들이 싸운다. "이 캐릭터 너무 약함. 기획자 뭐함?" "밸런스 똥망. 돈만 밝히네." 예전엔 나도 그랬다. 같이 욕했다. 지금은 다르다. 댓글 보면 자동으로 변역된다. "기획자 뭐함?" → "이 수치 결정한 사람의 의도가 궁금한데?" "밸런스 똥망" → "밸런스 패치 주기와 데이터 수집 기간의 한계" "돈만 밝히네" → "수익 지표 때문에 기획 의도가 변경됐구나" 유저 댓글 보면 답답하다. 설명하고 싶다. "아니 이건 말이야, 개발 일정이 2주밖에 안 남아서..." 하지만 말 안 한다. 변명처럼 들린다. 그냥 넘긴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도 5년 전엔 저랬지."재미의 정체를 알아버린 사람 친구가 신작 게임 추천했다. "이거 개재밌어. 너도 해봐." 3시간 했다. 재밌었다. 근데 동시에 다 보였다.튜토리얼 8분. 적절함. 첫 보상까지 4분. 도파민 타이밍 좋음. 가챠 연출 3초. 기대감 증폭 잘함. 과금 유도 레벨 15. 전형적인 설계.친구가 물었다. "어때? 재밌지?" "응. 재밌어." 거짓말은 아니다. 재밌긴 했다. 하지만 재미의 50%는 "기획 잘했네"였다. 나머지 50%만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예전엔 100%였는데. 마술 쇼를 보는데 트릭이 다 보이는 기분. 마술은 여전히 멋지다. 하지만 마법은 아니다.회사에서 만드는 게임도 마찬가지 역설적이게도 내가 만드는 게임은 즐길 수 있다. 우리 게임 베타 테스트할 때. 내가 설계한 전투 시스템. 6개월 밤새워 만든 밸런스. 유저들이 즐긴다. 커뮤니티에 공략이 올라온다. 팬아트가 나온다. 그때는 신기하다. 내가 만든 수치들이 누군가에겐 마법이 된다. 하지만 나는 못 즐긴다. 내 엑셀 시트를 보고 있는 것뿐이다. 동료 프로그래머가 물었다. "우리 게임 안 해봐?" "QA는 했지."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로 즐기면서." "..." 못 한다. 내 게임이 제일 못 한다. 코드 보이고, 기획서 보이고, 회의 내용 보이고, 타협한 부분 보이고, 못 넣은 기능 보이고, 아쉬운 밸런스 보인다. 마법사는 자기 마법에 안 걸린다.그래도 게임을 한다 요즘 인디 게임을 한다. 큰 회사 게임은 못 하겠다. 다 보여서. 인디는 조금 다르다. 조악하다. 밸런스 엉망이다. UI도 불편하다. 근데 그게 좋다. 완벽한 기획이 없다. 최적화된 수치가 없다. 그냥 만들고 싶은 걸 만든 흔적이 보인다. 어제 한 인디 게임. 전투 밸런스가 이상했다. 중반 난이도가 갑자기 튄다. 예전 같으면 "밸런스 설계 미스네"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지금은 다르게 본다. "1인 개발자가 끝까지 테스트 못 했구나." 짜증 안 난다. 오히려 응원하게 된다. 이 게임 만든 사람도 나처럼 게임 좋아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밤새워 코딩했을 것이다. 혼자 밸런스 잡느라 고생했을 것이다. 동료가 보인다. 경쟁자가 아니라.일과 사랑은 분리해야 한다던데 친구가 말했다.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으면 행복하대." 반은 맞다. 좋아하는 걸 일로 하니까 출근이 덜 괴롭다. 게임 기획 자체는 재밌다. 밸런스 맞을 때 쾌감 있다. 유저가 좋아하면 뿌듯하다. 하지만 반은 틀렸다. 좋아하던 게임을 잃어버렸다. 순수하게 즐기던 그 감정을 돌려받을 수 없다. 취미가 직업이 되면 취미가 사라진다. 새로운 취미를 찾아야 한다. 나는 아직 못 찾았다. 퇴근하고 뭐 하지? 게임? 그건 일이다. 영화? 스토리 구조 분석한다. 웹툰? 캐릭터 설계 뜯어본다. 직업병이다. 고칠 수 없다.마법이 풀린 세계에서 가끔 생각한다. 후회하냐고. 게임 기획자 안 했으면 아직도 게임을 마법처럼 즐겼을까? 모르겠다. 확실한 건,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마법이 풀린 세계는 덜 신비롭다. 하지만 더 명확하다. 재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안다. 왜 이 게임이 명작인지 이해한다. 어떤 게임이 왜 망했는지 알 수 있다. 순수한 즐거움은 잃었다. 대신 깊은 이해를 얻었다. 그게 나쁜 거래는 아니다. 다른 거래일 뿐. 어제 신입이 물었다. "선배님은 왜 게임 기획 하세요?" 잠깐 생각했다. "게임 자체는 못 즐겨도, 게임 만드는 건 여전히 재밌어서." 진심이었다.여전히 게임을 사랑한다 좋아하던 게임을 다시 즐길 수는 없다. 하지만 게임 자체를 싫어하게 된 건 아니다. 사랑하는 방식이 바뀐 것뿐이다. 플레이어에서 창작자로. 마법 보는 사람에서 마법 만드는 사람으로. 어제 우리 게임 유저 커뮤니티 봤다. 누가 공략글 올렸다. "이 보스 패턴 분석했습니다." 댓글 달렸다. "와 이거 알고 나니까 쉽네요. 감사합니다!" 미소 지었다. 내가 설계한 패턴이다. 12초 주기로 광역기 나가고, 체력 40%에서 페이즈 바뀌는. 그 유저는 모를 것이다. 그 패턴 만드는 데 3주 걸렸다는 걸. 7번 수정했다는 걸. QA에서 난이도 조정 8번 했다는 걸. 몰라도 된다. 그 유저에게 그건 여전히 마법이니까. 내가 만든 마법. 그걸로 충분하다.마법이 풀려도 괜찮다. 이제 내가 마법을 만드니까.

격주 목요일 데이터 분석: 숫자들이 말해주는 것

격주 목요일 데이터 분석: 숫자들이 말해주는 것

목요일 10시, 엑셀을 켠다 격주 목요일. 데이터 분석의 날이다. PD가 올린 대시보드 링크를 연다. 지난 2주 동안의 데이터가 정리되어 있다. DAU, RPU, 리텐션, 이탈율, ARPPU, 과금 전환율. 익숙한 숫자들. 커피 한 잔 뽑아서 마신다. 이 시간이 좋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숫자가 좋으면 기분 좋고, 나쁘면 우울하다. 단순하다.데이터를 엑셀로 다운받는다. 우리 회사 대시보드는 보기만 하는 용도다. 진짜 분석은 엑셀에서 한다. 피벗 테이블, VLOOKUP, IF 중첩. 내 무기들. 지난 2주 데이터를 정리한다. 일자별로, 유저 코호트별로, 과금 구간별로. 숫자가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DAU, 첫 번째 지표 DAU부터 본다. 일평균 활성 유저. 게임이 살아있는지 죽어가는지 제일 먼저 알려주는 숫자. 지난주 평균 DAU 12만 5천. 그 전주는 12만 8천이었다. 2.3% 감소. 심장이 조금 쫄깃해진다. 평일 DAU 그래프를 그려본다. 월요일이 제일 낮고, 목요일에 올라가고, 금요일에 정점. 주말은 조금 떨어진다. 패턴은 정상이다. 문제는 추세선이다. 지난달부터 완만하게 내려가고 있다. 월 5% 정도. 이 속도면 3개월 후에는... 계산하기 싫다. PD가 물어볼 게 뻔하다. "왜 떨어지는 거 같아요?" 나도 알고 싶다. 유저 이탈 원인을 찾아야 한다. 데이터를 더 파본다. 레벨 구간별 DAU 변화. 1~10레벨 유저는 늘었다. 신규 유입은 괜찮다는 뜻. 문제는 30~50레벨 구간. 지난달 대비 15% 감소했다. 중반 콘텐츠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메모한다. "중반 콘텐츠 점검 필요. 30~50 이탈 심각."리텐션, 진짜 중요한 숫자 다음은 리텐션. 신규 유저가 며칠이나 게임을 하는가. D1, D3, D7, D30. 각각 1일차, 3일차, 7일차, 30일차 잔존율. 우리 게임 평균:D1: 52% D3: 28% D7: 18% D30: 8%장르 평균과 비교한다. 모바일 RPG 기준으로 D1은 조금 낮고, D7은 괜찮은 편. 문제는 D3이다. 3일차에 절반이 떨어져 나간다. 코호트 분석을 돌린다. 이번 주 신규 유저 5천 명의 행동 패턴. 1일차에 평균 플레이 시간 45분. 2일차 28분. 3일차 12분. 플레이 타임이 급격히 떨어진다. 왜? 로그를 뒤진다. 2일차 유저들이 어디서 막히는지 확인한다. 던전 3-5에서 이탈이 많다. 난이도 스파이크가 있는 구간. 역시 밸런스 문제다. 기획서를 다시 본다. 3-5 던전 권장 전투력 1만 2천. 평균 유저 전투력은 1만. 2천 차이가 크다. 초반인데. 수치 조정이 필요하다. 메모한다. "3-5 던전 난이도 하향. 권장 전투력 1만으로 조정. D3 리텐션 개선 목표." RPU, 돈 버는 숫자 RPU를 본다. Revenue Per User. 유저 한 명당 매출. 지난 2주 평균 RPU: 4,200원. 목표는 5,000원이었다. 16% 부족하다. 다음 회의에서 나올 말이 뻔하다. "매출이 목표보다 낮은데, 뭘 해야 할까요?" 나한테 물어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과금 전환율을 본다. 전체 유저 중 돈을 쓴 비율. 3.2%. 100명 중 3명만 돈 쓴다. 업계 평균이 2~4%니까 나쁘진 않다. ARPPU를 계산한다. Average Revenue Per Paying User. 과금 유저 한 명당 평균 매출. RPU 4,200원 ÷ 전환율 3.2% = ARPPU 13만 1천원. 과금 유저는 평균 13만원을 쓴다. 많은 건가, 적은 건가.과금 구간별로 쪼갠다.1만원 이하: 1.8% 1~5만원: 0.9% 5~10만원: 0.3% 10만원 이상: 0.2%고래가 적다. 10만원 이상 쓰는 유저가 0.2%. 1천 명 중 2명. 근데 이 2명이 전체 매출의 40%를 만든다. 고래 이탈 방지가 중요하다. 고래 유저 로그를 확인한다. 최근 2주간 접속 패턴, 플레이 시간, 구매 내역. 이상 징후가 없는지 체크. 한 명이 눈에 띈다. 지난달까지 월 50만원씩 쓰던 유저. 이번 달은 5만원. 접속 시간도 하루 3시간에서 30분으로 줄었다. 이탈 직전이다. CS팀에 공유한다. "이 유저 케어 부탁드립니다. 고래 유저입니다." 매출은 결국 사람이다. 이탈율, 무서운 숫자 이탈율을 본다. 신규 유저가 언제 그만두는가. 레벨 구간별 이탈율:1~10레벨: 35% 11~20레벨: 22% 21~30레벨: 28% 31~40레벨: 18%21~30 구간 이탈율이 높다. 로그를 분석한다. 25레벨에서 이탈이 집중된다. 뭐가 있지? 기획서를 확인한다. 25레벨에 길드 시스템이 열린다. 길드 가입을 강제하진 않지만, 이후 콘텐츠가 길드 기반이다. 솔로 유저가 벽을 느낀다. 커뮤니티를 찾아본다. 유저 피드백. "25렙부터 길드 없으면 진행 불가능" "혼자 하고 싶은데 강제로 길드 가입하래요" "길드 안 하면 보상 못 받음" 역시. 소셜 콘텐츠 진입 장벽이 문제다. 메모한다. "25레벨 솔로 유저 경험 개선. 길드 비가입자도 진행 가능한 대체 콘텐츠 필요." 이탈 사유는 복합적이다. 난이도, 콘텐츠 부족, 강제성, 보상 밸런스.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 데이터는 문제를 알려준다. 해결은 기획자 몫이다. PvP 밸런스, 숫자의 전쟁 PvP 데이터를 본다. 승률 분포, 덱 사용률, 캐릭터 픽률. 제일 골치 아픈 부분이다. S등급 캐릭터 '레나' 픽률: 78%. 거의 모든 유저가 쓴다. 승률은 62%. OP다. 너프가 필요하다. 근데 레나는 한정 과금 캐릭터다. 돈 주고 뽑은 유저들이 많다. 너프하면 난리 난다. 지난번에 경험했다. '발키리' 너프했을 때 게시판이 불탔다. "환불하세요", "사기", "믿고 뽑았는데". 매출도 일주일간 30% 떨어졌다. 그래도 해야 한다. 밸런스가 무너지면 PvP를 안 한다. PvP 안 하면 게임 수명이 짧아진다. 너프 수치를 계산한다. 레나 스킬 '섬광베기' 공격력 배율 250% → 200%. 승률 시뮬레이션 돌린다. 엑셀로 만든 간이 전투 시뮬레이터. 예상 승률: 54%. 적정 수준이다. 기획서 작성한다. "레나 밸런스 조정안. 섬광베기 공격력 20% 하향. 사유: PvP 픽률 및 승률 과다." 내일 회의에서 설득해야 한다. PD는 매출 걱정할 거고, 마케팅팀은 반발할 거고, 개발팀은 "또요?"라고 할 거다. 근데 데이터는 거짓말 안 한다. 신규 콘텐츠 반응, 숫자로 평가받는다 2주 전에 업데이트한 '무한의 탑' 콘텐츠. 기획에 3주 걸렸다. 유저 반응을 본다. 참여율: 23%. 목표는 40%였다. 절반도 안 된다. 클리어율을 본다. 10층까지 클리어한 유저: 8%. 50층까지: 0.3%. 너무 어렵다는 뜻이다. 평균 도전 횟수: 2.1회. 두 번 하다가 포기한다. 보상 수령률: 15%. 콘텐츠는 했는데 보상을 안 받는다. UI 문제일 수도 있다. 커뮤니티 반응을 확인한다. "무한의 탑 너무 어려움" "보상이 별로라 안 함" "10층부터 막힘" 예상한 반응이다. QA 때도 느꼈다. 어렵다고. 근데 PD가 "어려워야 도전 의욕 생긴다"고 했다. 결과는 이렇다. 메모한다. "무한의 탑 난이도 전면 하향. 1~20층 20% 하향, 보상 상향 30%. 참여율 40% 목표." 3주 기획한 콘텐츠가 2주 만에 수정된다. 흔한 일이다. 숫자 뒤의 사람들 데이터를 보다 보면 잊는다. 숫자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DAU 12만 5천은 12만 5천 명의 유저다. 퇴근 후 지하철에서 게임하는 직장인. 학교 끝나고 PC방에서 하는 학생. 밤새 랭킹 올리는 고래 유저. 다 사람이다. 로그를 보면 보인다. 매일 새벽 2시에 접속하는 유저. 야근하는 사람인가. 밤샘하는 학생인가. 하루에 30분만 하는 유저. 시간 없는 직장인이겠지. 주말마다 10시간씩 하는 유저. 게임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각자의 이유로 우리 게임을 한다. 재밌어서, 시간 때우려고, 친구가 하니까, 스트레스 풀려고. 이유는 다양하다. 근데 우리는 그걸 숫자로 본다. 리텐션, 이탈율, RPU. 어쩔 수 없다. 12만 명을 일일이 이해할 순 없다. 숫자로 패턴을 보고, 문제를 찾고, 개선한다. 그게 내 일이다. 오후 3시, 보고 자료 작성 데이터 분석 끝. 이제 보고 자료를 만든다. PPT를 연다. 슬라이드 1: 요약DAU 2.3% 감소, 중반 콘텐츠 이탈 심각 RPU 목표 대비 16% 부족, 고래 유저 케어 필요 PvP 밸런스 조정 필요, 레나 너프 제안슬라이드 2: DAU 분석그래프, 수치, 원인 분석 개선 방안: 30~50 레벨 콘텐츠 강화슬라이드 3: 리텐션 분석D3 리텐션 개선 필요 3-5 던전 난이도 하향 제안10페이지 분량. 그래프, 표, 분석, 제안. 내일 회의 자료다. PD는 이 자료 보고 의사결정한다. 뭘 고칠지, 뭘 만들지, 어디에 리소스를 쓸지. 데이터 분석이 중요한 이유다. 감으로 하면 틀린다. 숫자로 하면 정확하다. 완벽하진 않아도 방향은 맞다. 숫자가 주는 위안 데이터 분석은 스트레스다. 나쁜 숫자 보면 우울하고, 좋은 숫자 보면 불안하다. "다음엔 떨어지면 어쩌지." 근데 위안도 된다.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감정, 정치, 눈치 없다.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유저들이 불만이 많아요" → 데이터로 확인한다. 이탈율 증가했나? 플레이 타임 줄었나? "이 캐릭터 약한 거 같아요" → 데이터로 확인한다. 승률 낮나? 픽률 낮나? "이번 이벤트 반응 좋았어요" → 데이터로 확인한다. 참여율 높나? 매출 올랐나? 추측이 아니라 사실. 기획자가 숫자를 믿는 이유다. 물론 숫자가 전부는 아니다. 유저 감정, 브랜드 이미지, 장기 전략. 숫자로 안 보이는 것도 많다. 근데 적어도 숫자는 출발점이다. 여기서 시작한다. 퇴근길, 경쟁사 데이터 퇴근한다. 지하철에서 폰을 꺼낸다. 경쟁사 게임 순위를 확인한다. 구글 플레이 매출 순위. 우리 게임: 47위. 지난주는 42위였다. 5계단 떨어졌다. 경쟁사 신작이 20위 안에 3개. 시장이 좁아진다. 살아남으려면 계속 개선해야 한다. DAU 올리고, RPU 올리고, 리텐션 올리고. 끝없는 싸움이다. 숫자와의 전쟁. 근데 이게 내 일이다. 격주 목요일마다 데이터를 보고,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제안한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뿌듯하고. 숫자들이 말해준다. 게임이 잘되고 있는지, 망하고 있는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냉정하지만 정직하다. 그래서 계속한다.내일 회의에서 레나 너프 설득해야 한다. 데이터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