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가 '이건 게임플레이와 맞지 않아'라고 할 때

아티스트가 '이건 게임플레이와 맞지 않아'라고 할 때

아티스트가 ‘이건 게임플레이와 맞지 않아’라고 할 때

오전 10시, 슬랙 알림

출근했다. 커피 뽑으려는데 슬랙에서 알림 세 개.

아트팀 민수 형이다. “어제 밸런스 패치 데이터 받았는데요, 이거 시각적으로 이상해요.”

무슨 소리야. 수치만 바꿨는데.

“공격 이펙트가 3히트에서 5히트로 늘어났잖아요. 그럼 이펙트도 다시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리소스로는 안 됩니다.”

아, 그거.

밸런스 잡으려고 공격 횟수 늘렸다. DPS는 같은데 타격감을 더 주려고. 유저들이 ‘때리는 맛’이 없다고 난리였거든.

근데 아티스트 입장에선 일이 두 배로 늘어난 거다.

“일단 회의실로 오세요.”

커피는 나중에.

회의실에서의 30분

민수 형이 태블릿으로 이펙트를 보여줬다.

“지금 3히트 이펙트는 이렇게 타격감을 강조했어요. 칼이 들어갔다 나오는 느낌. 근데 5히트로 늘리면 이게 다 흐려져요. 빠르게 치면 시각적으로 뭉개집니다.”

보니까 맞는 말이다.

공격 모션은 1.2초인데, 5번을 때리면 0.24초마다 한 번씩. 이펙트가 겹쳐서 화면이 번쩍번쩍할 거다.

“그럼 이펙트를 좀 더 간결하게 만들면 안 될까요?”

“그럼 타격감이 사라지죠. 애초에 이 캐릭터는 ‘묵직한 한 방’이 컨셉이었잖아요.”

맞다. 초기 기획서에 그렇게 썼다.

근데 밸런스는 망가졌다. 묵직한 한 방은 좋은데, DPS가 낮아서 아무도 안 쓴다. 픽률 2.3%. 밑바닥이다.

“형, 근데 지금 이 캐릭터 승률 41%예요. 버프 안 하면 유저들이 환불 요구합니다.”

“그럼 데미지를 올리면 되잖아요. 왜 히트 수를 늘려요?”

“데미지만 올리면 밸런스가 더 깨져요. 한 방이 너무 세지면 PVP에서 문제고.”

둘 다 할 말이 있다.

민수 형은 아트 디렉션을 지키고 싶은 거고, 나는 밸런스를 맞추고 싶은 거다.

30분 동안 말했다. 결론은 안 났다.

“일단 PD님한테 물어보겠습니다.”

최악의 선택지다. PD한테 올라가면 일정이 밀린다.

왜 이렇게 충돌하나

점심 먹으면서 생각했다.

아티스트와 기획자는 다른 걸 본다.

아티스트는 ‘일관성’을 본다. 캐릭터의 아이덴티티. 이펙트의 느낌. 화면의 조화. 이게 무너지면 게임이 못생겨진다.

기획자는 ‘수치’를 본다. 승률. 픽률. DPS. 유저 불만 접수 건수. 이게 무너지면 게임이 망한다.

둘 다 맞는 소리다.

근데 우선순위는 뭘까.

예쁜데 안 팔리는 게임? 못생겼는데 재밌는 게임?

답은 케바케다. 근데 회사는 ‘일단 팔리는 게임’을 원한다.

돈 못 벌면 아무리 예뻐도 의미 없다. 현실이 그렇다.

이게 게임 기획자의 비극이다. 항상 ‘게임플레이’를 우선해야 한다. 근데 그러다 보면 아티스트의 비전을 깬다.

“기획자가 게임을 망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오후 3시, PD 미팅

PD님이 물었다.

“둘 다 타협 안 돼요?”

“네.”

민수 形도 고개 끄덕였다.

PD님이 한숨 쉬었다.

“기획 쪽 의견은 뭔데요?”

“히트 수를 늘리되, 3히트는 유지하고 2히트는 약하게 추가합니다. DPS는 올리되 타격감은 유지. 이펙트도 두 개만 더 만들면 됩니다.”

“아트 쪽은요?”

“데미지만 20% 올리고, 대신 스킬 쿨타임을 줄입니다. 히트 수는 그대로. 아이덴티티 유지.”

PD님이 모니터를 봤다. 밸런스 시트를 열었다.

5분 동안 조용했다.

“기획 안으로 갑니다. 민수씨, 이펙트 2개만 더 만들어주세요. 일정은 이틀 드릴게요.”

“PD님, 근데 이렇게 하면…”

“알아요. 근데 지금 유저 불만이 더 급해요. 아트는 나중에 다시 조정하죠.”

민수 형 표정이 굳었다.

회의 끝났다.

복도에서 민수 형이 말했다.

“나중에 조정한다는 게, 결국 안 한다는 거 알죠?”

“형, 미안해요.”

“미안하면 됩니까. 이렇게 하면 이 캐릭터 아이덴티티가 다 무너지는데.”

할 말이 없었다.

왜 게임플레이가 이기나

저녁 먹으면서 또 생각했다.

게임은 ‘플레이’하는 매체다. 보는 게 아니다.

영화는 다르다. 시각적 완성도가 전부다. 못생긴 영화는 망한다.

근데 게임은? 못생겨도 재밌으면 된다.

마인크래프트 봐라. 그래픽 똥이다. 근데 역대급 흥행.

발로란트, 리그오브레전드. 그래픽이 최고는 아니다. 근데 게임성으로 먹고산다.

유저들은 ‘예쁜 게임’보다 ‘재밌는 게임’을 원한다.

재밌으면 못생긴 건 참는다. 근데 예쁘기만 하고 재미없으면? 바로 환불이다.

이게 현실이다.

아티스트는 이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당연하다. 본인들이 만든 게 깨지니까.

근데 기획자 입장에서는? 유저 데이터가 답이다.

픽률 2.3%, 승률 41%. 이건 ‘망한 캐릭터’다. 아무리 예뻐도 소용없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게임은 비즈니스다. 안 팔리면 끝이다.

밤 11시, 패치 노트 작성

퇴근 전에 패치 노트 초안 썼다.

“XX 캐릭터 공격 메커니즘 개선. 타격감 증가 및 DPS 조정.”

‘개선’이라는 단어를 썼다. ‘변경’이 아니라.

유저들한테는 긍정적으로 보이게.

근데 속으로는 찝찝하다.

민수 형이 공들인 이펙트가 이제 뭉개질 거다. 묵직한 한 방은 이제 빠른 연타가 된다.

캐릭터 아이덴티티? 밸런스 앞에서는 사치다.

슬랙에서 민수 형한테 메시지 보냈다.

“형, 이펙트 작업 힘들면 말해요. 일정 조율 다시 해볼게요.”

읽음 표시 떴다. 답은 안 왔다.

이게 반복되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기획자와 아티스트는 계속 부딪힌다.

“이 UI 너무 화려해서 게임플레이 방해해요.” → “그럼 디자인 의미가 없잖아요.”

“이 애니메이션 0.2초 줄여주세요.” → “그럼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요.”

“이 이펙트 색 바꿔주세요, 적 스킬이랑 헷갈려요.” → “컨셉 색인데요?”

매번 기획이 이긴다. 왜냐면 ‘게임플레이’가 우선이니까.

그러다 보면 아티스트는 지친다.

“어차피 내 의견은 안 받아들여지는데, 왜 회의를 해요?”

이 말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나도 아티스트의 비전을 존중한다. 근데 유저 데이터가 더 강하다.

승률 41%를 보면서 ‘그래도 예쁘니까 괜찮아’라고 할 수는 없다.

회사가 안 허락한다.

타협의 기술

그래도 방법은 있다.

완전히 포기하는 게 아니라, ‘절충안’을 찾는 거다.

오늘 케이스로 보면:

  • 기획 최초안: 5히트 (아트 완전 포기)
  • 아트 최초안: 3히트 유지 (밸런스 포기)
  • 절충안: 3히트 + 약한 2히트 (둘 다 조금씩 양보)

이렇게 하면 아티스트도 ‘완전히’ 깨진 건 아니다. 메인 타격감은 유지되니까.

기획자도 DPS는 올라가니까 밸런스는 맞출 수 있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근데 ‘최악’은 피한다.

이게 게임 개발이다. 완벽은 없다. 타협만 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했다. 민수 형이 이펙트 초안 보내줬다.

3히트는 그대로. 2히트는 얇고 빠르게.

“이 정도면 아이덴티티는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요.”

답장 보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거면 밸런스도 괜찮을 것 같아요.”

QA한테 빌드 넘겼다. 테스트 돌린다.

이번 주 금요일에 패치 나간다.

유저 반응 보고 또 조정할 거다. 숫자 게임은 끝이 없다.

민수 형이랑 또 싸울 수도 있다. 아마 싸울 거다.

근데 그게 게임 개발이다.

아티스트와 기획자는 영원히 충돌한다. 아름다움과 재미는 항상 줄다리기한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이기면? 게임이 망한다.

둘 다 조금씩 양보해야 게임이 산다.

이게 답인지는 모르겠다. 근데 지금까지는 이렇게 해왔다.


게임플레이가 이기는 게 아니다. 게임이 이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