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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 06 Dec, 2025
손목이 울고 있습니다: 게임 기획자의 직업병
손목이 울고 있습니다: 게임 기획자의 직업병 오늘도 손목은 비명을 지른다 아침 10시. 출근해서 마우스 잡는다. 손목이 쑤신다. 어제도 밤 10시까지 잡았던 그 마우스. 밤새 식지도 않았을 것 같다. 엑셀을 켠다. 밸런스 시트가 열린다. 숫자가 3000개쯤 된다. 하나하나 클릭해서 조정한다. 클릭, 드래그, 복사, 붙여넣기. 이게 내 일이다. 손목은 정직하다. 딱 2시간 지나면 신호를 보낸다. '이제 그만 좀 하자.' 무시한다. 일이 끝나야 쉴 수 있다. 일은 끝나지 않는다.오른손이 특히 심하다. 마우스 잡는 손. 5년간 쉬지 않고 일한 손. 손목터널증후군이라고 한다. 의사가 말했다. "직업을 바꾸시거나, 습관을 바꾸시거나." 직업을 바꿀 수 없다. 습관을 바꿀 수도 없다. 기획은 마우스로 하는 거다. 보호대를 샀다. 검은색 손목 보호대. 게임 기획자 10명 중 7명이 찬다. 우리의 훈장이다. 우리의 치욕이다. 의자가 내 몸을 기억한다 하루 10시간.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다. 점심시간 빼면 9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빼면 8시간 반. 그래도 10시간이 맞는 것 같다. 엉덩이가 의자 모양이 됐다. 허리는 C자다. 거북목은 기본이다. 어깨는 항상 굳어있다. 작년에 좋은 의자를 샀다. 80만원짜리. 회사가 50만원 지원해줬다. "직원 건강이 중요하니까요." 고맙다. 정말로. 의자는 좋다. 허리를 받쳐준다. 팔걸이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 목 받침도 있다. 그래도 아프다. 10시간을 앉아있으면 어떤 의자든 소용없다.점심 먹고 졸음이 온다. 커피를 마신다. 다시 앉는다. 오후 3시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한다. 30초. 다시 앉는다. 동료가 말한다. "형, 요즘 자세 더 구부정해진 것 같은데요?" 알고 있다. 거울 보면 알 수 있다. 모르는 척한다. "그래? 피곤해서 그런가." 정형외과에서 말했다. "허리 디스크 초기예요. 지금부터 관리 안 하면 30대 중반엔 위험합니다." 나는 지금 30살이다.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일주일에 3번. 퇴근하고 가라고 했다. 퇴근이 8시다. 병원은 7시에 문 닫는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건 안다 헬스장 등록했다. 3개월 끊었다. 20만원. 3번 갔다. 한 번에 6만 6천원 꼴이다. 비싼 샤워였다. 아침에 가려고 했다. 7시에 일어나야 한다. 못 일어났다. 어제 밤 12시에 잤다. 7시간도 못 잤다. 퇴근하고 가려고 했다. 8시 퇴근. 9시까지 갈 수 있다. 못 갔다. 야근이었다. 런칭 2주 전이다. 주말에 가려고 했다. 토요일 오전이면 된다. 못 갔다. 금요일 밤에 긴급 패치가 터졌다. 토요일 오후 2시에 일어났다. 몸이 안 움직였다.3개월이 지났다. 재등록 문자가 왔다. "회원님, 운동 효과 느끼셨죠? 재등록 하시면 10% 할인!" 안 느꼈다. 3번 갔다. 요가를 해볼까 생각했다. 유튜브 영상을 틀었다. "하루 10분이면 됩니다." 10분도 없다. 퇴근하면 9시다. 저녁 먹으면 10시다. 씻으면 11시다. 내일 밸런스 시트 봐야 한다. 걷기라도 하려고 했다. 출퇴근길에. 회사까지 2.5km. 걸으면 30분. 버스 타면 15분. 15분이 아깝다. 그 15분에 잠을 더 잔다. 동료 하나는 새벽 러닝을 한다. 5시 반에 일어나서 5km 뛴다. "형도 해봐요. 개운해요." 대단하다. 나는 못 한다. 런칭 끝나고 해볼까. 런칭은 3개월에 한 번씩 온다. 스트레칭 영상은 즐겨찾기에만 있다 유튜브 즐겨찾기에 영상이 12개 있다. 전부 스트레칭 영상이다. '거북목 해결', '손목터널증후군 완화', '허리디스크 예방'. 하나도 안 본다. 저장만 한다. '나중에 봐야지.' 나중은 오지 않는다. 저장한 게 6개월 전이다. 가끔 본다. 런칭 직후. 몸이 완전히 망가졌을 때. 영상을 틀고 따라한다. 5분. "아, 시원하다." 다음 날도 하려고 한다. 안 한다. 책상 옆에 폼롤러가 있다. 1년 전에 샀다. 쓴 횟수 10번 정도. 지금은 가방 거치대다. 회사에서 스트레칭 교육을 했다. 강사가 왔다. "여러분, 한 시간마다 일어나서 스트레칭 하세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안 한다. 점심시간에 산책하라고 했다. 회사 뒤에 공원이 있다. 10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다. 가본 적 없다. 점심 먹고 카페 가서 커피 마신다. 다시 일한다. 통증은 익숙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손목이 뻣뻣하다. 주먹을 쥐었다 펴는 데 30초 걸린다. 손가락이 굳어있다. 처음엔 무서웠다. '이거 큰일 나는 거 아닌가.' 병원 갔다. 약 받았다. 먹었다. 나았다. 다시 아팠다. 이제는 익숙하다. '오늘도 아프네.' 그냥 움직인다. 마우스를 잡는다. 일을 한다. 통증은 배경음악이 됐다. 허리도 그렇다. 오후 3시쯤 되면 쑤신다. '아, 또 이 시간이구나.' 자세를 바꾼다. 5분 버틴다. 다시 구부정해진다. 목도 그렇다. 고개를 돌리면 뚝뚝 소리가 난다. 20대 중반부터 났다. 이제 30살인데 소리가 더 커졌다. 동료들과 통증 자랑을 한다. "나 어제 손목 너무 아파서 마우스 왼손으로 잡았어." "나는 허리 때문에 서서 일했어." "나는 목 안 돌아가서 모니터를 옆으로 옮겼어." 웃으면서 한다. 웃기는 얘기가 아닌데 웃는다. 안 웃으면 슬프다. 진통제는 서랍에 항상 있다 책상 서랍을 연다. 진통제가 4통 있다. 타이레놀, 게보린, 이브, 펜잘.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오늘은 손목이 아프다. 타이레놀을 먹는다. 30분 뒤 덜 아프다. 일을 계속한다. 내일은 허리가 아프다. 게보린을 먹는다. 1시간 뒤 덜 아프다. 일을 계속한다. 모레는 목이 아프다. 이브를 먹는다. 효과가 약하다. 펜잔을 추가로 먹는다. 일을 계속한다. 의사가 말했다. "진통제는 증상만 가리는 거예요. 근본적인 치료가 필요해요." 알고 있다. 치료할 시간이 없다. 약사가 말했다. "이거 자주 드시면 위에 안 좋아요." 알고 있다. 위도 이미 안 좋다. 야근하면서 커피 너무 많이 마셨다. 한 달에 진통제 40알 먹는다. 하루 평균 1.3알. 괜찮은 건가. 아닌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30대가 두렵다 지금 30살이다. 5년 뒤면 35살이다. 이 상태로 5년 더 버틸 수 있을까. 선배가 있었다. 38살. 게임 기획 15년차. 손목 수술했다. 3개월 쉬었다. 복귀했다. 1년 뒤 퇴사했다. "더는 못 하겠더라." 다른 선배도 있었다. 40살. 허리디스크 수술했다. 6개월 쉬었다. 복귀 안 했다. 지금 프리랜서 컨설턴트 한다. 또 다른 선배는 35살에 목디스크 왔다. 지금도 일한다. 목에 보조기 차고. "돈 벌어야지 뭐." 슬프다. 내 미래가 보인다. 35살에 수술. 40살에 재수술. 45살에 은퇴. 아니면 평생 통증 안고 살기. 게임 기획이 좋다. 정말 좋다. 내가 만든 밸런스로 유저가 재밌어하면 뿌듯하다. 하지만 몸이 망가진다. 확실히 망가진다. 변명은 많다 "런칭 끝나면 운동할 거야." 런칭은 3개월마다 온다. 끝나고 나면 다음 런칭 준비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내면 쉴 거야."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는다. 끝나면 새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연차 써서 병원 갈 거야." 연차는 썼다. 집에서 잤다. 병원은 안 갔다. "주말에 꼭 스트레칭 할 거야." 주말엔 피곤하다. 평일에 쌓인 피로를 푼다. 스트레칭은 다음 주말로. "다음 달부터 헬스장 다닐 거야." 다음 달이 왔다. 또 다음 달로 미룬다. 변명이 습관이 됐다. 나 자신한테 거짓말하는 게 익숙하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안다. 바꾸는 게 어렵다. 회사는 신경 쓴다 (조금만) 회사가 간식을 준다. 과일, 빵, 요거트. 고맙다. 건강에 좋다. 손목은 안 나아진다. 회사가 안마의자를 뒀다. 3층 휴게실에. 점심시간에 쓸 수 있다. 줄이 길다. 5명 대기. 10분씩 쓴다. 내 차례 올 때까지 30분. 점심시간은 1시간. 밥 먹을 시간 없다. 회사가 스탠딩 책상을 줬다. 신청하면 바꿔준다. 3명 신청했다. 2명은 다시 일반 책상으로 바꿨다. "서 있으니까 다리 아파요." 회사가 재택근무를 준다. 주 1회. 화요일이나 목요일. 집에서 일한다. 더 오래 일한다. 출퇴근 시간만큼 더 일한다. 몸은 더 안 좋아진다. 회사는 노력한다. 인정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일의 양을 줄이는 게 답이다. 그건 안 된다. 회사는 성장해야 한다. 동료들도 다 아프다 팀 회식 자리. 술 마시면서 하는 얘기. "형, 손목 어때요?" "망했지 뭐." 5명 중 4명이 손목 보호대 찬다. 나머지 1명은 신입이다. 1년 뒤면 찰 거다. 프로그래머들도 똑같다. 아티스트들도 똑같다. QA팀도 똑같다. 게임 회사는 다 아프다. "우리 이러다 다 같이 망가지는 거 아니야?" 누군가 웃으면서 말한다. 다들 웃는다. 맞는 말이라 웃는다. 정형외과 추천 리스트가 있다. 사내 위키에. 손목, 허리, 목 파트별로 정리돼 있다. 병원 이름, 의사 이름, 대기 시간까지. 슬픈 위키다. "○○병원 괜찮았어요?" "거기 좋아요. 근데 예약 2주 걸려요." "그럼 급할 땐 어디 가요?" "응급실요." 이게 정상이 아닌 건 안다. 하지만 이게 우리 일상이다. 그래도 못 멈춘다 손목이 아프다. 허리가 아프다. 목이 아프다. 그래도 출근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한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야지.' 저녁 9시에 퇴근한다. 내일은 꼭 스트레칭하겠다고 다짐한다. 내일도 안 한다. 이번 주말엔 운동하겠다고 약속한다. 주말에 집에서 잔다. 왜 못 멈출까. 일이 좋아서? 반은 맞다. 습관이라서? 반은 맞다. 두려워서일 수도 있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다. 쉬면 대체될 것 같다. 그래서 쉬지 못한다. 30살에 이미 몸이 망가졌다. 40살엔 어떻게 될까. 50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해답은 없다 이 글을 쓰면서도 손목이 아프다. 키보드 치는데 쑤신다. 마우스 잡을 때마다 신호가 온다. 해답을 찾고 싶었다. 없다. 있다면 실천이다. 실천이 안 된다. "일을 줄여라." 못 줄인다. 줄이면 경쟁에서 밀린다. "운동을 해라." 시간이 없다. 만들어야 하는데 못 만든다. "병원에 가라." 간다. 약 받는다. 안 낫는다. 생활습관이 문제다. 결국 선택이다. 건강을 택하거나, 일을 택하거나. 나는 계속 일을 택한다. 그래서 계속 아프다. 30대 게임 기획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멋있지 않다. 슬프다. 하지만 진짜다.손목 보호대 끼고 엑셀 켰다. 오늘도 밸런스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