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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Dec, 2025
10년 뒤에도 게임 기획을 할 수 있을까: 30대의 불안감
10년 뒤에도 게임 기획을 할 수 있을까: 30대의 불안감 새벽 3시, 엑셀을 닫지 못한다 오늘도 밸런스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경험치 획득량 5% 조정. 레벨업 구간 재설계. 보상 밸류 재계산. 숫자를 바꾸고, 수식을 고치고, 다시 돌린다. 5년째 이 짓을 하고 있다. 처음엔 재밌었다. "내가 만든 시스템으로 사람들이 게임을 한다"는 게 신기했다. 밤을 새워도 즐거웠다. 게임 출시하고 유저 반응 보는 날, 손 떨렸다. 지금은 그냥 숫자다. 엑셀 셀이다. 함수다. 어느 순간부터 이 생각이 든다. "10년 뒤에도 나 이러고 있을까?" 40살에도 밤 10시까지 회사에서 밸런스 잡고 있을까. 50살엔 뭐하지. 게임 기획 감독? PD? 아니면 그냥 나간 상태?주변을 봤다. 40대 기획자가 거의 없다. 회사에 딱 두 명. 둘 다 PD 아니면 본부장. 평 기획자로 남은 사람은 없다. 30대 중반 넘으면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퇴사한 선배한테 물어봤다. "형, 게임 기획 오래 할 수 있어요?" 대답이 명확했다. "너 PD 될 자신 있으면 남고, 아니면 나가." 그게 5개월 전이다. 그 선배는 지금 IT 기업에서 서비스 기획한다. 야근은 없다고 했다. 연봉은 비슷하다고. "게임보다 재미는 없는데, 살 만하다"고. 경력 5년, 번아웃은 언제부터였나 정확히 언제부턴지 모르겠다. 서서히 왔다. 3년차까지는 괜찮았다. 프로젝트마다 새로웠다. 전투 시스템, 성장 구조, 콘텐츠 설계. 배울 게 많았다. 실력이 느는 게 보였다. 4년차부터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거 저번 프로젝트에서 해봤는데." RPG 밸런스 공식은 다 비슷하다. 레벨 디자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게 없었다. 5년차인 지금. 반복이다. 기획서 쓰고, 개발팀한테 설명하고, QA 이슈 대응하고, 패치하고, 또 기획서 쓰고. 재미가 없다. 게임 만드는 게 재미없다니. 이게 맞나.더 문제는 체력이다. 5년 전엔 3일 밤샘도 했다. 지금은 밤 12시만 넘어가면 다음 날 못 쓴다. 손목은 항상 아프다. 허리도 안 좋다. 거북목은 기본. 병원 갔다. 의사가 말했다. "자세 교정하고 스트레칭 하세요." 웃겼다. 런칭 일주일 전에 스트레칭할 시간이 어딨어. 체력이 떨어지니까 효율도 떨어진다. 같은 일을 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집중력도 예전 같지 않다. 30살인데 벌써 이러면, 35살엔? 40살엔? 주변 동기들 봤다. 한 명은 프로그래머에서 백엔드 개발자로 이직했다. 연봉 7천. 야근 거의 없음. 한 명은 게임 그만두고 웹툰 PD 됐다. "게임보다 미래가 보인다"고. 나만 남았다. 게임 기획. 5년째. 숫자에 지친 사람의 고백 밸런스 기획자의 삶은 숫자다. 경험치 테이블. 레벨별 스탯 증가량. 몬스터 체력. 공격력. 방어력. 드랍률. 강화 확률. 재화 획득량. 과금 밸류. BM 설계. 하루종일 엑셀이다. VLOOKUP, INDEX-MATCH, 피벗 테이블. 함수 짜고, 시뮬레이션 돌리고, 그래프 그리고. 처음엔 퍼즐 푸는 느낌이었다. "이 숫자를 이렇게 조정하면 밸런스가 맞겠네!" 성취감 있었다. 지금은 노가다다. 창의적인 게 아니다. 그냥 정해진 공식에 숫자 넣는 거다. 유저들은 모른다. 이 숫자 하나 바꾸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지. "밸런스 똥겜" 댓글 본다. 아프다. 3주 동안 밤새워서 잡은 밸런스다. 근거도 있다. 데이터도 있다. 시뮬레이션도 100번 돌렸다. 그래도 욕먹는다. "기획자 뭐함?" 나 여기 있는데. PD는 말한다. "유저 반응 보고 조정하면 되지." 쉽게 말한다. 숫자 하나 바꾸면 전체 밸런스가 흔들린다. 경험치 10% 올리면 레벨업 속도 바뀌고, 콘텐츠 소비 속도 달라지고, 과금 유도 시점도 틀어진다. 근데 PD는 모른다. 그냥 "더 재밌게"래. 재미가 뭔데. 재미의 정의가 뭔데. 숫자로 어떻게 재미를 만드는데. 5년 했는데도 답이 없다. 10년 해도 답 없을 것 같다. 게임 업계의 현실: 나이 들면 어디로 가나 솔직히 말하자면, 게임 업계는 젊은 사람들 거다. 회사 보면 평균 연령 32살. 40대는 임원급 아니면 없다. 평 기획자, 평 프로그래머로 40대 본 적 없다. 왜일까. 생각해봤다. 첫째, 체력. 게임 업계는 야근이 기본이다. 런칭 전엔 밤 12시까지는 기본. 주말 출근도 많다. 40대 몸으로 이걸 버틸 수 있을까. 둘째, 트렌드. 게임은 빠르다. 2년 전 유행하던 장르가 지금은 망한다. 계속 배워야 한다. 새 엔진, 새 시스템, 새 BM. 40대가 20대만큼 빠르게 배울 수 있을까. 셋째, 연봉. 경력 10년 넘으면 연봉 7천~8천 넘어간다. 회사 입장에선 그 돈으로 신입 2명 뽑는 게 낫다. 실무는 신입도 한다. 그래서 다들 나간다. 30대 중반에. PD 못 되면 이직한다. 어디로? IT 기업, 스타트업, 컨설팅, 교육. 게임 기획 경험은 어디서든 쓸모 있다. 근데 게임은 못 만든다. 선배 한 명은 게임 회사 나와서 금융 앱 기획한다. "재미는 없는데 야근도 없어. 연봉은 비슷해. 나쁘지 않아." 또 다른 선배는 프리랜서 됐다. 게임 컨설팅. "프로젝트 단위로 일해. 자유로워. 돈은 들쭉날쭉." 한 명은 게임 학원 강사. "학생들 가르치는 게 나아. 밤샐 일 없어." 다들 게임을 떠났다. 게임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게임 때문에 나갔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언젠가. 번아웃의 징후들 요즘 월요일 아침이 제일 힘들다. 알람 울린다. 손이 안 간다. "5분만 더"가 30분 된다. 겨우 일어난다. 씻는데도 힘들다. 출근길. 지하철 타면서 생각한다. "오늘도 밸런스 시뮬 돌리겠네. 기획서 쓰겠네. 개발팀이랑 싸우겠네." 회사 도착. 자리에 앉는다. 노트북 켠다. Confluence 열린다. 하기 싫다. 점심시간. 밥 먹으면서 폰 본다. 게임 커뮤니티. 또 밸런스 욕. 보기 싫은데 본다. 직업병. 오후. 회의. 2시간. "이 시스템 더 재밌게 할 수 없을까요?" PD가 묻는다. 3번째 물어본다. 답은 같다. "시뮬레이션 돌려보겠습니다." 저녁 7시. 동료들 하나둘 퇴근한다. 나는 남는다. 내일까지 기획서 마감. 밤 10시. 겨우 끝났다. 저장. 전송. 퇴근. 집 도착. 씻고 침대에 눕는다. 폰 켠다. 경쟁사 게임 켠다. 분석해야지. 게임이 재미없다. 예전엔 재밌었는데. 이제는 시스템만 보인다. "아 이거 우리 게임이랑 비슷한데. 저 밸런스는 어떻게 잡았지." 일이다. 게임도 일이 됐다. 주말. 침대에서 하루 보낸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게임도 안 한다. 그냥 유튜브 본다. 멍 때린다. 친구가 연락 온다. "밥 먹자." "다음에." 거절한다. 사람 만나기 싫다. 이게 번아웃이다. 확실하다. 30대, 불안의 정체 정확히 뭐가 불안한지 정리해봤다. 첫째, 미래가 안 보인다. 5년 뒤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PD가 될 수 있을까? 자신 없다. PD는 정치다. 사람 관리다. 나는 숫자 파는 사람이다. PD 못 되면? 이직? 어디로? 게임 기획 경험만 10년이면 다른 데서 뭐할 수 있나. 나이는 40. 신입처럼 배울 수 있을까. 둘째, 체력이 한계다. 지금도 벅차다. 5년 뒤엔 더 힘들 거다. 게임 업계는 야근이 줄지 않는다. 계속 이렇게 일할 수 없다. 셋째, 성장이 멈췄다. 더 배울 게 없다. 밸런스 공식은 다 안다. 시스템 설계도 익숙하다. 이제는 반복이다. 5년 차나 7년 차나 하는 일 똑같다. 차이는 속도뿐. 넷째, 돈. 연봉 5200. 나쁘지 않다. 근데 올라갈까? PD 되면 7천8천. 안 되면 56천 구간에서 정체. 결혼하면? 애 낳으면? 집 사면? 이 돈으로 가능할까. 다섯째, 의미. 왜 이 일을 하나. 처음엔 명확했다. "게임 만들고 싶어서." 지금은? 그냥 월급받으려고. 게임 출시해도 뿌듯함이 없다. "끝났다"는 안도감만 있다. 이게 내가 원했던 삶인가. 동료들의 선택 작년에 같이 일했던 기획자가 퇴사했다. 경력 7년. 나보다 2년 선배. "형, 왜 나가요?" 물었다. "더 이상 못 버티겠어. 몸도 안 좋고, 미래도 안 보이고." 그 형은 지금 에듀테크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기획한다. 연봉은 조금 낮아졌다. 6000에서 5500으로. 대신 야근이 없다. 6시 퇴근. 주말은 무조건 쉰다. "후회 안 해요?" 물었다. "전혀. 진작 나갈걸." 다른 동기는 대기업 IT 계열사로 이직했다. 게임 서비스 기획. "게임 만드는 건 아니지만, 게임 관련 일이긴 해. 복지는 좋아." 또 다른 선배는 아예 업계를 떠났다. 카페 차렸다. "돈은 적게 벌어도 행복해. 내 시간이 생겼어." 다들 떠난다. 게임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게임이 싫어서 떠난다. 나도 떠날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근데 게임 말고 뭘 하지. 10년 가까이 게임만 했다.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없다. 이게 제일 무섭다. 떠나고 싶은데 갈 곳이 없다. 그래도 못 떠나는 이유 이상하게도 퇴사 메일은 안 쓴다. 왜일까. 생각해봤다. 하나, 아직 애정이 남았다. 게임이 싫어졌다고 했지만, 완전히 식진 않았다. 가끔 유저가 "이 시스템 재밌어요" 댓글 달면 기분 좋다. "이거 만든 사람 천재" 보면 웃는다. 내가 만든 시스템으로 누군가 즐거워한다. 이게 아직 의미 있다. 둘, 동료들. 같이 밤새우는 사람들. 프로그래머, 아티스트, 다른 기획자들. 이 사람들이랑 일하는 게 좋다. 퇴사하면 이 사람들 못 본다. 그게 아쉽다. 셋, 두려움. 새로운 곳 가서 적응할 자신이 없다. 게임 업계는 익숙하다. 언어도 통한다. 문화도 안다. 다른 업계는 모른다. 거기서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신입처럼 배워야 하나. 30살에? 넷, 미련. "조금만 더 버티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 PD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좋은 프로젝트 만날 수도 있다. 대박 게임 만들 수도 있다. 그럼 모든 게 해결된다. 연봉도, 커리어도, 의미도. 근데 확률이 얼마나 될까. 10%? 5%? 그래도 0%는 아니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10년 뒤의 나에게 솔직히 모르겠다. 10년 뒤에 나 뭐하고 있을까. 40살. 게임 기획자? PD? 아니면 다른 업계? 지금 선택에 따라 달라질 거다. 근데 뭘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 버틸까? 떠날까? 버티면: PD 될 수도 있다. 못 될 수도 있다. 체력은 더 떨어진다. 번아웃은 심해진다. 떠나면: 새로운 환경. 적은 야근. 다만 게임은 못 만든다. 게임 기획 커리어는 끝. 어느 쪽이 정답일까. 정답은 없다. 각자 선택이다. 나는 아직 못 정했다. 조금 더 버텨볼까 싶기도 하고, 지금 나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확실한 건, 이 상태로는 10년 못 간다는 거다. 뭔가 바꿔야 한다. 일하는 방식이든, 회사든, 아니면 직업 자체든.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그래도 오늘은 결론은 안 났다. 내일도 출근한다. 엑셀 켜고, 밸런스 시뮬 돌리고, 기획서 쓰고, 회의하고. 똑같은 하루.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안다는 거다. 이게 영원하지 않다는 걸. 언젠가 끝난다는 걸. 그게 5년 뒤든, 10년 뒤든. 게임 기획은 좋은 직업이다. 재밌다. 의미 있다. 근데 평생 직업은 아니다. 적어도 나한텐. 언젠가 떠날 거다. 준비해야 한다. 근데 오늘은 아니다. 내일도 아니다. 다음 주 월요일, 또 출근한다. 엑셀 켜고 숫자 만진다. 10년 뒤까지는 아니어도, 당분간은.10년은 아니어도, 내일은 출근한다. 그게 지금의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