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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Dec, 2025
0.1 수치 차이가 게임을 망친다: 밸런스 패치의 진실
공격력 100에서 99로: 소수점의 무게출근했다. 9시 45분. 피드백 채널을 열었다. 어제 저녁 8시에 올린 패치 이후 댓글이 1200개다. 공격력 100에서 99로 내린 거 맞다. 하지만 댓글을 읽으면 게임 전체가 망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밸런스 똥겜" "이 정도면 악의적 너프 아니냐?" "개발사 게임 이해를 못 하나?" 숫자는 작다. 정말 작다. 1%다. 하지만 이 1%가 전투의 결과를 바꾼다. 전투 길이가 1초 줄어든다. 그 1초가 타이밍을 바꾼다. 그 타이밍이 클릭을 바꾼다. 클릭이 모여서 게임이 된다. 나는 왜 99를 눌렀나. 100이 아니라.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도 말하지 않는다) 어제 데이터를 봤다. DPS 차트를 그렸다. 직업별 평균 데미지. 전사 클래스가 계산상 18% 높게 나왔다. 이론상으로는. 실제 필드에서 측정한 데이터다. 1000명 이상 플레이어. 던전 800번 이상. 변수는 최대한 통제했다.던전별 난이도 정규화 플레이 시간 3시간 이상 유저만 이번 시즌 처음 온 뉴비 제외 장비 격차 20% 이내데이터는 명확했다. 18%는 너무 크다. 밸런스 게임이 아니다. 그러면 얼마만큼 줄여야 하나. 이론상 공격력을 10% 깎으면 거의 같아진다. 100에서 90. 하지만 그건 너무 크다. 느껴진다. 유저가 느낀다. 내 캐릭터가 약해진 걸. 그래서 10은 너무 크다. 5는 어떤가. 95. 그럼 실제 게임에서는 얼마나 차이가 나나. 시뮬을 돌렸다. 엑셀에서. 이론상 DPS 차이 13%. 여전히 크다. 3은. 97. 다시 돌렸다. 11%. 여전히. 2는. 98. 9%. 9%는 좀 괜찮나. 아니다. 여전히 우월하다. 1은. 99. 8.2%. 8%면 괜찮다. 게임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밸런스를 맞춘다. 근거가 있는 숫자다.그런데 유저는 뭐라고 했나. "왜 1을 깎았어?" 라고 물어봤다. 그 "왜"에 답하려면 얘기가 길어진다. 근거를 제시한다는 것의 무게 회의실에 불렸다. 10시. PD가 물었다. "유저들이 왜 이렇게 난리야?" 내가 말했다. "DPS 분석 결과, 직업 간 상대 격차가 18% 있었고요. 표본은 3주간 1000명 이상, 800회 이상의 던전 플레이 데이터입니다. 난이도 정규화와 신규 유저 제외 처리를 했습니다." PD가 물었다. "그럼 왜 하필 99야? 90은 안 됐어?" 내가 말했다. "90으로 하면 DPS 이론상 차이가 8%까지 떨어지는데, 실제 체감 난이도 조정이 너무 커집니다. 신규 직업이라 유저들의 애정이 있는 상태라, 급격한 너프는 유저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99는 1%의 데미지 감소이지만 누적 효과로 DPS 격차를 8.2%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PD가 했다. "근데 유저들은 납득을 못 하네." 맞다. 그게 문제다. 숫자를 말한다고 납득하는 건 아니다. 특히 게임에서는. 느낌이 중요하다. 100에서 99로 깎았다는 건 "약해졌다"는 느낌이다. 그 느낌이 파괴적이다. 논리와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근거를 제시하는 것뿐이다.18% DPS 격차는 게임 설계상 오류다. 데이터 기반 조정이다. 임의가 아니다. 1%는 누적하면 게임을 바꾼다. 유저의 애정과 밸런스의 균형이다.하지만 "논리"는 게임에서 약하다. 게임은 감정이 먼저다. 감정이 먼저고, 나중에 논리가 따라온다. 역순이 아니라. 숫자 하나가 불러오는 체인 리액션 밤 11시. 커뮤니티 매니저가 톡을 쳤다. "밸런스 이슈 관련 글이 너무 많아서 상단 고정 게시판에 공지를 올려야 할 것 같아요. 뭐라고 말할까요?"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공격력 100 → 99. 1%의 감소. 이게 게임에서 뭘 의미하는가.전투 1분 30초가 1분 29초로 줄어든다. (평균) 그럼 플레이어는 1초를 덜 방어한다. 1초를 덜 방어하면 1회 공격을 덜 받을 확률이 올라간다. 받는 데미지가 줄어든다. 플레이어가 죽을 확률이 1.2% 내려간다. 던전 클리어 확률이 올라간다.역으로, 전사 직업이 너무 강했다는 뜻이다. 플레이어가 죽을 때까지의 시간이 더 짧았다. 그 "짧음"이 게임을 지배했다. 99로 만드는 건 그 지배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1%씩. 유저는 느낀다. 캐릭터가 약해졌다고. 맞다. 약해진 거 맞다. 하지만 "우월한 약함"에서 "적절한 약함"으로 바뀐 것뿐이다.그런데 숫자를 한 번 건드리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린다. 패치 노트를 썼다. 3시간. 왜 99인지 설명하려고. 데이터도 붙였다. 표는 5개. 그래프는 3개. 하지만 패치 노트는 한 줄로 읽힌다. "전사 공격력 100 → 99로 조정" 끝. 근거를 쌓는 일은 외로운 일이다 밤 1시. 여전히 댓글이 올라온다. "개발사 게임을 모르는 듯" "밸런스 감각이 없네" "한국 게임사는 다 똑같네" 나는 근거를 들고 있다. 1000명의 데이터. 3주간의 기록. 정규화된 변수들. 8.2%의 이론상 격차. 유저는 감정을 들고 있다. 캐릭터가 약해진 느낌. 내 캐릭터를 깎는 느낌. 개발사가 내 플레이를 무시하는 느낌. 누가 맞는 건가. 둘 다다. 게임은 숫자가 아니라 감정이 먼저 와야 한다. 그런데 감정만 있으면 게임이 무너진다. 밸런스 없이는 재미가 없다. 재미 없으면 게임이 아니다. 그래서 숫자가 필요하다. 숫자로 감정을 지탱하는 것. 하지만 그 숫자가 감정을 자극한다. 99는 나의 근거다. 100은 유저의 추억이다. 이 격차를 줄이는 건 숫자로 되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커뮤니케이션은 게임 기획 업무가 아니다. 그건 마케팅팀이 해야 한다. 그런데 마케팅팀은 "유저들이 이해를 못 하니까 기획팀이 더 좋게 설명해주세요"라고 한다. 결국 나한테 온다. 근거를 들고 있는 나한테. 오전 3시. 피드백 채널을 다시 열었다. 댓글 3500개다. 0.1의 무게를 다시 생각해본다 아침 6시. 퇴근하지 않은 상태로 새벽이 됐다. 커피를 마셨다. 네 번째다. 손목이 아프다. 마우스를 움직인 지 8시간. 목도 아프다. 화면을 본 지 8시간. 눈도 아프다. 숫자를 읽은 지 8시간. 그런데 여전히 99다. 내가 실수했나. 100으로 해야 했나. 아니다. 데이터가 말해준다. 18%는 너무 크다. 99는 맞다. 그런데 맞다는 게 뭔가. 게임은 객관적 게임이 아니다. 주관적 게임이다.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유저가 경험하는 게 게임이다. 유저가 "약해졌다"고 느끼면 약해진 게 맞다. 데이터상 8.2% 격차 감소가 아니라. 하지만 동시에, 18% 격차는 게임이 아니다. 그건 "선택지 없음"이다. 직업 선택이 자유가 아니다. 전사만 해야 한다. 그래서 너프를 해야 한다. 99는 그 "선택지 없음"을 "약간 선택지 있음"으로 바꾼 것이다. 여전히 전사가 강하지만, 이제 다른 직업도 가능하다. 게임이 된 것이다. 99가 맞다. 그런데 이 "맞다"를 설명하는 데 8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여전히 유저는 안 받아줄 거다. 이게 게임 기획의 현실이다. [IMAGE_4] 0.1은 미래다 아침 8시. 회사에 다시 들어갔다. 퇴근해서 2시간을 자고 다시 출근했다. 이번엔 다음 패치를 생각했다. 다음 달이다. 그 다음 달. 그리고 그 다음. 매 패치마다 0.1씩 조정한다. 99는 첫 번째다. 다음은 98.5일 수 있다. 그 다음은 98일 수도 있다. 또는 유저의 반응에 따라 99.5로 올라갈 수도 있다. 게임은 한 번의 결정이 아니다. 지속적인 조정이다. 그 조정의 최소 단위가 0.1이다. 아니, 0.01일 수도 있다. 내 직업은 그걸 반복하는 것이다. 데이터를 본다. 근거를 찾는다. 숫자를 조정한다. 유저의 반응을 본다. 다시 반복한다. 밤새 올라온 피드백을 본다. 댓글 5200개다. 그중 긍정 평가는 400개. 7%. 충분한가. 아니다. 최소 30%는 필요하다. 그럼 또 조정해야 한다. 99가 아니라 99.2여야 할까. 99.3이여야 할까. 다시 엑셀을 켜진 않았다. 대신 유저 댓글을 읽었다. "전사는 재미없어졌다" "다른 직업 해볼게" "밸런스 좋아졌다" "여전히 전사가 강한데?" 모순된 의견들이다. 하지만 모두 맞다. 전사는 여전히 강하고, 다른 직업도 이제 선택지가 되고, 재미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다. 그게 "밸런스가 좋아진" 상태다. 그런데 7%의 긍정 평가는 낮다. 아직 갈 길이 멀다.99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다음은 99.5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