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널 콘텐츠 패치가 망했을 때의 심정

시즈널 콘텐츠 패치가 망했을 때의 심정

3개월의 노가다가 72시간 만에

3개월이었다. 기획 회의만 8번. 밸런스 시뮬레이션 돌린 횟수 47번. 엑셀 시트 버전 23개. QA 이슈 283건 처리. 런칭 전날 새벽 4시까지 최종 점검.

시즌2 ‘겨울의 전쟁’ 콘텐츠. 신규 던전 5개, 보스 3체, 아이템 127종, 밸런스 패치 노트 A4 12페이지. PD가 말했다. “이번 시즌은 대박 난다.”

목요일 오전 10시 패치 오픈. 점심때까지 동접 7만. “잘 되는 건가?” 오후 2시, 커뮤니티 게시판 새로고침. 3시, 계속 새로고침. 4시, 손이 떨렸다.

“보상 쓰레기”, “난이도 ㅈ같음”, “3개월 준비한 게 이거?”, “접는다 ㅂㅂ”

금요일 아침 회의실. 데이터 분석팀이 ppt 켰다. 그래프가 전부 빨간색이었다.

숫자는 거짓말을 안 한다

“1일차 신규 콘텐츠 진입률 23%. 목표 대비 절반입니다.”

침묵.

“2일차 재진입률 8%. 작년 시즌1은 34%였습니다.”

더 긴 침묵.

“평균 플레이 타임 12분. 예상은 45분이었고요.”

PD가 노트북 덮었다. “원인 분석부터.”

원인? 알고 있었다. 다 알고 있었다. 보스 체력 1.8배 올린 거. 보상 확률 0.3% 낮춘 거. 난이도 곡선 후반에 몰아넣은 거. 시뮬레이션에선 괜찮았다. 숫자상으론 완벽했다.

유저는 숫자가 아니었다.

오후 내내 유저 피드백 정리했다. 커뮤니티 댓글 350개, 인게임 문의 127건, 유튜브 리뷰 영상 8개. 전부 봤다. 하나하나 엑셀에 정리하면서 속이 타들어갔다.

“보스 패턴 짜증”, “보상 안 나옴”, “시간 대비 효율 최악”, “과금 유도 심함”

마지막 거는 억울했다. 과금 안 해도 깨라고 밸런스 잡았는데. 3주 동안 무과금 테스트 플레이 직접 했는데. 근데 유저는 그렇게 느꼈다.

밤 10시, 팀장이 말했다. “긴급 패치 준비합니다. 월요일 오전까지.”

주말이 날아갔다.

72시간 안에 3개월을 뜯어고치기

토요일 아침 11시 출근. 사무실에 벌써 7명. 다 눈이 풀려 있었다.

긴급 패치 회의. 화이트보드 가득 포스트잇. 뭘 고칠 건가. 어디까지 고칠 건가. 어떻게 고칠 건가.

“보스 체력 30% 하향” “보상 확률 2배” “난이도 구간 재조정” “진입 조건 완화”

PD가 물었다. “이거 하면 살아나나?”

모르겠다. 솔직히 모르겠다. 근데 안 하면 확실히 죽는다.

오후 2시부터 숫자 만지기 시작했다. 보스 체력 테이블 127개 셀 수정. 드랍 테이블 83개 라인 조정. 경험치 곡선 다시 그리기. 시뮬레이션 돌리고, 검증하고, 또 돌리고.

프로그래머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이거 구현하려면 빌드 새로 뽑아야 하는데.”

“알아요. 근데 해야죠.”

저녁 8시, 치킨 시켰다. 먹으면서도 노트북 보고 있었다. 커뮤니티 반응 계속 체크. “패치 언제 하냐”, “이대로면 접는다”, “운영진 답 없음”

손이 떨렸다. 치킨이 목으로 안 넘어갔다.

밤 12시, 1차 검증 완료. 프로그래머랑 QA팀한테 넘겼다. “월요일 오전까지 부탁드립니다.”

”…네.”

다들 알고 있었다. 이거 실패하면 시즌 망한다. 시즌 망하면 분기 실적 박살. 보너스 없다. 어쩌면 구조조정.

일요일 오후 4시, QA 이슈 17건. 치명적인 건 3개. 또 고쳤다. 시뮬 다시 돌렸다. 숫자 다시 맞췄다.

저녁 9시, 최종 빌드. PD한테 보고.

“이거면 됩니까?”

”…해봅시다.”

월요일 새벽 6시 패치 공지 올렸다.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렸다. “이제야”, “늦었다”, “해보고 판단”

오전 10시 패치 완료. 손에 땀이 났다.

숫자가 조금씩 올라갈 때

월요일 오후 2시, 첫 데이터 나왔다.

신규 콘텐츠 진입률 34%. 목표 46%보단 낮지만 23%보단 높다. 재진입률 19%. 8%에서 두 배 넘게 올랐다. 평균 플레이 타임 28분. 아직 목표 45분엔 못 미치지만.

커뮤니티 반응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할 만함”, “보상이 체감된다”, “패치 빠르네”, “운영진 일 한다”

가슴이 뛰었다. 근데 아직 모른다. 하루 데이터론 모른다.

화요일, 수요일 데이터 계속 모니터링. 진입률 38%, 41%. 재진입률 23%, 26%. 플레이 타임 32분, 36분. 천천히 올랐다.

목요일 주간 회의. PD가 말했다.

“일단 고비는 넘겼습니다. 근데 초기 목표 달성은 실패. 매출 목표 대비 67%. 다음 시즌 준비할 때 이번 거 복기 필수입니다.”

실패였다. 숫자상으론 분명히 실패. 근데 최악은 면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시뮬레이션은 완벽했다. 숫자는 다 맞췄다. QA도 충분히 했다.

유저를 몰랐다. 유저가 뭘 재미있어하는지, 뭘 답답해하는지, 어느 지점에서 포기하는지. 데이터로 보고, 숫자로 계산했지만 그 뒤에 있는 사람은 못 봤다.

3개월 준비했지만 72시간 만에 무너졌다. 그리고 72시간 만에 다시 세웠다. 완벽하진 않지만 살아는 있다.

금요일 저녁 회식. 맥주 한 잔 마셨다. 팀장이 물었다.

“다음 시즌은 어떻게 할 거야?”

“모르겠어요. 근데 이번보단 나을 거 같아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번에 배웠으니까. 숫자만 믿으면 안 된다는 거. 유저는 엑셀 셀이 아니라는 거. 완벽한 기획서보다 빠른 대응이 중요하다는 거.

다음 주부터 시즌3 기획 시작이다. 또 3개월 준비한다. 또 불안하다. 또 실패할 수도 있다.

그래도 한다. 이게 내 일이니까.


3개월은 3일 만에 무너지고, 3일 만에 다시 세운다. 완벽은 없다. 다만 덜 실패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