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부산 내려가서 게임 하는 죄책감
- 27 Dec, 2025
부산행 KTX
명절 전날 밤 11시. 짐 쌌다. 노트북, 충전기, 보조배터리. 옷은 대충. 게임은 철저히.
KTX에서도 폰 켰다. 유저 데이터 확인. 명절 이벤트 시작 2시간 차. 참여율 62%. 나쁘지 않다.
옆자리 아저씨가 봤다. 게임하는 줄 알았을 거다. 사실 반은 맞다.

집 도착
“왔냐. 밥 먹어라.”
어머니가 준비한 음식. 3시간은 걸렸을 거다. 나는 30분 만에 먹었다. 그리고 폰 봤다.
“게임 좀 그만해라.”
일입니다, 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설명 길어진다. 그냥 미안하다고 했다.
방에 들어갔다. 노트북 켰다. 엑셀 시트 20개. 밸런스 데이터가 춤춘다. 이게 일이다. 근데 재밌다. 그게 문제다.
명절 오전
아침 9시. 일어났다. 늦게 잤다. 새벽 3시까지 유저 피드백 정리했다.
“명절인데 좀 쉬지.”
아버지 말씀. 맞다. 근데 게임은 명절도 모른다. 유저는 지금도 접속 중이다.
거실에서 폰 봤다. 경쟁사 신작 나왔다. 깔았다. 튜토리얼 돌렸다. 전투 시스템 괜찮네.
“게임만 하네.”
취미가 아닙니다. 일입니다. 또 속으로만 말했다.

점심 준비
부모님이 음식 준비하신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있다. 폰 든 채로.
도와드려야 한다. 안다. 근데 긴급 공지 올라왔다. 서버 불안정. QA팀장한테 메시지 왔다.
“점심 먹고 봐도 되지 않냐.”
어머니 말씀. 맞다. 근데 유저는 지금 불편하다. 우리 게임 지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5분만요. 그렇게 말하고 개발팀 단톡방 확인했다. 이미 조치 중이래. 다행이다.
그새 10분 지났다. 부모님은 거의 다 차리셨다. 나는 뭐 했나.
오후 시간
친척들 오셨다. 인사했다. 앉았다. 대화 시작됐다.
“요즘 뭐해?”
게임 회사 다닙니다. 기획자요.
“아, 게임 만드는 거?”
네. 맞습니다.
“그럼 하루 종일 게임하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설명 길어진다. 그냥 웃었다.
대화 끝났다. 다시 폰 봤다. 이벤트 매출 집계 나왔다. 목표 대비 120%. 좋다.
PD한테 카톡 왔다. “수고했어요. 명절 잘 보내세요.” 고맙다. 근데 나도 모니터링 중이다.
저녁 무렵
부모님이 설거지하신다. 이번엔 도왔다. 폰 안 봤다. 30분.
설거지 끝나고 방 들어갔다. 노트북 켰다. 다음 주 업데이트 기획서. 금요일까지다.
근데 명절이다. 쉬어야 한다. 알고 있다. 그래도 켰다. 일단 열어만 봤다.
한 줄 썼다. 두 줄 썼다. 시스템 구조도 그렸다. 한 시간 지났다.
문 열렸다. 어머니다.
“아직도 일해?”
게임 아니라 일이라는 걸 알아주신다. 고맙다. 근데 표정은 안 좋으시다.

밤 11시
거실에 나갔다. 부모님 주무신다. TV 꺼져 있다.
냉장고 열었다. 음료수 꺼냈다. 마시면서 폰 봤다. 또.
유저 게시판 확인. 칭찬 글 하나. “이번 이벤트 좋네요.” 기분 좋다.
욕 글 세 개. “밸런스 좆같네.” 기분 나쁘다. 근데 익숙하다.
방 돌아왔다. 침대에 누웠다. 천장 봤다.
부모님한테 제대로 얘기한 적 없다. 내가 뭐 하는지. 어떤 게임 만드는지. 얼마나 재밌는지.
아니, 얼마나 힘든지도.
그냥 “게임 회사 다녀요”로 끝났다. 그럼 “게임만 하네”로 돌아온다.
죄책감의 정체
문제는 이거다. 나도 모르겠다는 거.
폰 볼 때. 경쟁사 게임 할 때. 유저 데이터 볼 때. 기획서 쓸 때.
이게 일인가, 취미인가.
재밌어서 하는가, 해야 해서 하는가.
부모님 보기에는 똑같다. 폰 들고 화면 보는 거. 게임하는 거.
나도 헷갈린다. 지금 이거 일 때문에 보는 건가. 아니면 그냥 보고 싶어서 보는 건가.
경계가 없다. 출근해도 게임하고. 퇴근해도 게임하고. 명절에도 게임한다.
좋아하는 걸 일로 하면 행복하다고 했다. 반만 맞다.
좋아하는 걸 일로 하면 쉴 수가 없다.
다음날 아침
부산역 도착. KTX 탔다. 서울 올라간다.
어머니가 도시락 싸주셨다. 무거웠다. 맛있을 거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일 힘들지 마. 건강 챙겨.”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개찰구 들어갔다.
KTX 앉았다. 폰 켰다. 회사 단톡방 확인. 긴급 회의 있다. 내일 오전 10시.
도시락 열었다. 먹으면서 유저 데이터 봤다. 명절 기간 DAU 15% 증가.
맛있다. 데이터도, 도시락도.
창밖 봤다. 부산 멀어진다. 서울 가까워진다.
죄책감은 남았다. 명절 내내 부모님 앞에서 폰만 봤다.
근데 이게 내 일이다. 내 삶이다.
이해받고 싶다. 근데 설명하기 어렵다.
게임 기획자의 명절은 이렇다. 쉬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 중간 어딘가에서 죄책감 느끼며 폰 본다.
서울역
도착했다. 집 간다. 출근 준비한다.
내일부터 다시 회사다. 밸런스 시트 펴고, 유저 피드백 보고, 기획서 쓴다.
그때는 죄책감 없다. 당당하게 게임한다. 일이니까.
근데 또 명절 온다. 추석.
그때도 똑같을 거다. 부모님 앞에서 폰 보고, 일이라고 속으로 변명하고.
이게 게임 기획자의 삶이다.
덕업일치의 그림자.
명절 끝. 죄책감은 계속. 다음 업데이트 준비.
